교육제도

[태평로] 大卒이라는 이름의 환상

최만섭 2017. 3. 10. 06:45

[태평로] 大卒이라는 이름의 환상

입력 : 2017.03.10 03:14

한현우 주말뉴스부장
한현우 주말뉴스부장
빌 게이츠는 '하버드 사상 가장 성공한 중퇴자'로 불린다. 그 별명을 받을 사람이 하나 더 있다. 역시 하버드를 다니다 그만둔 마크 저커버그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해 현재 세계 최고 부자(재산 약 99조원)가 된 게이츠는 10년 전 하버드 중퇴 32년 만에 졸업장을 받았다. 하버드대는 2007년 졸업식 연설자로 그를 초청하면서 법학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아마도 그가 1학년 때 로스쿨 준비 과목들을 수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페이스북 창업자 저커버그는 세계 5위 부자(재산 약 64조원)다. 그 역시 올해 5월 하버드 졸업식 연설자로 초청받았다. 하버드대가 8일 공개한 동영상에는 게이츠와 저커버그가 소파에 나란히 앉아 대화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저커버그가 "방금 하버드에서 졸업식 연설을 해달라고 연락받았어요"라며 "그런데 그 사람들 우리가 졸업 못 한 것 알고 있겠죠?" 한다. 게이츠가 "그럼. 거기서 연설하면 학위를 준다고. 그게 아주 끝내줘. 이력서에다가 '대졸'이라고 쓸 수 있거든" 하고 말하며 웃는다.

2007년 하버드 졸업식에서 사회자는 게이츠를 이렇게 소개했다. "퍼스널 컴퓨터 혁명을 이뤄낸 사람,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 한 명, 타임지가 꼽은 '올해의 인물 100명'에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연속으로 선정된 사람… 생각해 보세요, 이분이 학교를 2년 더 다녔더라면 얼마나 더 큰 인물이 됐을지. '빌 게이츠 박사'를 소개합니다." 하버드 2학년을 마치고 중퇴한 게이츠는 이렇게 인사말을 했다. "이 말을 하려고 30년 넘게 기다렸습니다. '아빠, 제가 말했잖아요. 언젠가는 학교에 돌아가서 꼭 학위를 받을 거라고요.'"

빌 게이츠와 마크 저커버그는 왜 2년만 더 다니면 딸 수 있었던 '하버드 졸업장'을 포기했을까. 그들에게 대학은 자신의 진로를 찾는 곳이었을 뿐, 진로를 보장해주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진로를 찾은 그들에게 학위는 종이쪽지였을 따름이다.

한국 실업자 가운데 대졸자 비율은 45.1%로 절반에 가깝다. 이 비율은 2000년 23.5%에서 거의 두 배로 늘었다. 20여 년 전만 해도 '대졸(大卒)'이란 타이틀은 상당히 괜찮은 미래를 보장해줬다. 그러나 이제 한국에서 '대졸'은 거의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못한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대졸자'를 우대하는 척한다. 만약 빌 게이츠가 한국에서 대학을 다녔다면 끝끝내 졸업장을 받았을 것이다.

명문대를 졸업한 부모는 자기 자식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러지 못한 부모는 자식이라도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모두 아이가 걸음마 뗄 때부터 '대졸'을 염두에 두고 밀어붙인다. 그게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온 시간과 돈을 들여 아이를 '대졸자'로 만들어가는 것이 한국 사회다. 그 '대졸자'가 취직 못 하고
놀고 있으면 사회를 탓한다. 그 사회를 우리 모두가 그렇게 만든 것인데도 말이다.

모두가 공부를 잘할 수는 없기 때문에, 모두가 대졸을 목표로 공부할 이유가 없다. 더 많은 전문대와 고졸 출신 부자와 스타가 나와야 한다. 이 나라의 교육과 경제정책도 그런 방향으로 수정할 때가 됐다. '대졸'이란 이름은 이제 환상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09/201703090348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