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제도

과거 풍족함은 잊고 신혼살림 차리듯 시작한 노년… 이제 남편만 마음 잡으면 됩니다

최만섭 2017. 3. 9. 09:38

과거 풍족함은 잊고 신혼살림 차리듯 시작한 노년… 이제 남편만 마음 잡으면 됩니다

이혼, 파산, 송사, 실직…. 그 무엇도 겪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 모든 것을 다 피해갈 수는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이지요. 그리고 어차피 한 번은 겪어내야 한다면, 한 살이라도 젊은 나이에 겪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인생의 궤도를 수정해서, 새로운 삶의 가치를 체득하려면, 정신의 유연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행복의 제1 조건은 변화무쌍한 현실에 대한 유연한 적응력이 아닐까요? 하긴 그것이 꼭 몸의 나이에 비례하는 것은 또 아니겠지만요.   홍 여사 드림


환갑을 맞은 해에, 저는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자식들 근처에 살겠다는 게 그 이유였지요. 하지만 그것은 밖으로 드러낸 이유일 뿐, 속마음은 하루빨리 그곳을 뜨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는 사람 없는 곳에 가서 조용히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무슨 남부끄러운 짓을 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나름 성공한 토박이로, 지역의 잘나가는 사업가의 아내로 남들 부러움을 받으며 살았었죠. 아이들 셋도 착하게 키워서 시집 장가보냈고, 우리 두 부부 먹고살기에 넉넉한 노후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년에 이르러, 뜻밖의 횡액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사업을 키워보자는 후배의 유혹에 넘어간 남편이 무리한 투자를 하면서, 큰 빚을 지게 되었지요. 어쩔 수 없이 사업과 가산을 대폭 정리하게 되었고, 저희 부부의 처지는 급전직하하고 말았습니다. 불과 일이년 사이에 그런 일을 겪고 보니 사람을 만나기가 싫었습니다. 더구나 내가 잘나갈 때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다시 어울리기가 힘들었습니다. 동정을 받는 것도 싫었고, 호기심 어린 시선에 노출되는 것도 싫었습니다. 못난 소리지만 그때는 그렇게 제 마음이 힘겨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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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원 기자


저는 인간관계를 차츰 줄여나갔습니다. 자꾸 부르고 찾던 지인들도 나중엔 연락을 삼가더군요. 그러다 어느 시점에, 저희 부부는 모든 사업과 자산을 정리해서 그 지역을 떠난 겁니다. 자식들이 터를 잡고 사는 다른 도시로요. 꼭 자존심 때문은 아닙니다. 생활 규모를 줄이려면, 노는 물부터 바꿔야 한다는 게 제가 얻은 결론이기도 했습니다.

어쨌거나 이사를 한 뒤로는,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지요. 과거의 풍족함은 잊고, 그야말로 노년의 조촐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마치 신혼살림 차리듯 자그마한 아파트에 터를 잡았습니다. 이젠 어울리지도 않는 세간, 입을 일도 없을 옷들을 다 정리했고, 타던 차도 없앴습니다. 애들 어릴 때의 추억이 담긴 상자들만 차곡차곡 쌓아둔 채, 우리는 모든 삶의 거품을 빼버렸습니다. 그런데 참 희한하더군요. 그 과정이 별로 고통스럽지 않았습니다. 과거를 돌아보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한 번쯤 근사하게 살아봤으니 나는 운이 좋았던 거야. 그리고 저는 미래를 생각하며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자식들 근처에서 손자 손녀 재롱을 보며, 남편과 제2의 신혼살림을 해보자. 가난해도 행복한 신혼부부처럼.

사실 가난이라는 말을 쓰기도 저는 죄스럽습니다. 살 집이 있고, 매달 생활비 정도는 걱정 않는 노인은 가난한 게 아니죠. 게다가 자식들이 이리저리 찔러주는 용돈도 있습니다. 돈 달라는 자식이 없는 것만 해도 어딥니까?

저는 주위를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생활고를 겪는 노인이 그렇게 많은 줄은 미처 몰랐었습니다. 그들에 비하면 저는 아직 가진 게 많은 여자였어요. 지갑은 얇아졌어도, 제 곁에는 남편이 돌아와 있었습니다. 같이 밥 먹고, 같이 조조 영화 보고, 같이 저녁 산책을 할 수 있다는 게 좋았습니다. 이만하면 우리 괜찮은 노후 아니야? 저는 남편에게 그렇게 묻곤 했죠.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알 수가 없습니다. 제가 우울함을 극복하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동안 남편의 마음은 거꾸로 치닫더군요. 처음엔 저보다 긍정적이고 굳세더니 지금은 현실을 견딜 수 없어 합니다. 말수가 적어지고, 짜증이 늘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딴생각 중인 것처럼 멍해지더군요.

어쩌면 남편은 '재기'를 꿈꾸며 처음의 충격을 견뎠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재기가 어렵다는 판단이 들면서, 더 큰 절망에 빠진 듯합니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일까요? 일을 하던 사람이라 그런 걸까요? 현재의 소박한 행복은 보지 못하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초조감을 느끼는 모양입니다.

급기야 남편은 저에게 속에서 터져나오는 비명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는 못 살겠다고요.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안 먹고 안 쓰며 비참하게 살아야 하느냐고요. 이런 결말을 보자고 평생을 앞만 보고 달려온 게 아니랍니다.

그러면 제가 달래죠. 우리가 왜 안 먹고 안 쓰냐. 덜 먹고 덜 쓰지. 다른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어렵다. 자꾸 예전 생각 하지 말고 서로를 바라보자고요.

하지만 남편은 제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진심인지, 빈말인지, 어깃장에 가까운 소리를 늘어놓습니다. 남은 돈 실컷 다 쓰고 그 돈 떨어지면 삶을 끝내겠답니다. 노숙자가 되든, 절간에 들어가든 할 테니 당신은 딸집으로 밀고 들어가랍니다. 시집간 딸까지 못 살게 하려느냐고 물으면, 말을 바꿉니다. 그럼 자식들에게 1억씩 내놓으라고 하랍니다. 자기는 없어져줄 테니.

설마 진담이랴 했습니다. 듣기 괴로웠지만, 들어주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말은, 말로 끝나지를 않았습니다. 저에게 상의도 없이 차를 다시 산 것을 시작으로 돈을 물 쓰듯 쓰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알던 친구들 만나고 다니며, 술을 사고 밥을 삽니다. 본인 말로는 다시 일을 해보려는 거라는데, 제 느낌으로는 그저 예전 기분에 취해보는 것뿐입니다.

이런 식으로 나가다간 얼마 안 가 바닥이 날 겁니다. 하지만 통장의 잔액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이 남편의 정신 상태입니다. 그렇게 판단력이 좋던 남편이 왜 저럴까요? 일만 좋아했지 돈 쓸 줄도 모르던 사람이 왜 이렇게 돈 돈 할까요? 다 써 버리고 길바닥에 쓰러질지언정, 이렇게는 못 산다는 말이 얼마나 철없는 소리인지 모르는 걸까요? 우리 인생이라고 우리 마음대로 할 수는 없지요. 자식들이 애를 태우고, 속이 썩는 것을요.

남편에게 행복의 새 맛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노인네 둘이 같이 비벼먹는 밥 한 그릇이 얼마나 맛나고 고마운 것인지 알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 맛을 알아야 우리도 좋은 부모, 괜찮은 노인으로 생을 아름답게 마감할 수 있기에…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