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3.03 03:17
'촛불'과 '태극기' 맞서지만
"원치 않는 판결엔 불복할 것" 헌재 결정 무시 태도는 똑같아
법 위에 군림하려는 위정자를 법의 지배 아래 둬야 민주주의
광장의 시민도 헌재 존중해야
나라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 겨울은 끝나가지만 봄은 오지 않았다. 임박한 탄핵 심판을 겨냥한 촛불과 맞불의 대립이 갈수록 거세지는 중이다. 날카롭게 맞선 촛불과 맞불이 서로를 비난하지만 의미심장한 공통점이 발견된다. 자신들의 바람에 어긋나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올 땐 결단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불퇴전의 결기가 가득하다. 헌재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기각하면 '혁명이 불가피하다'고 촛불은 외친다.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면 '아스팔트가 피로 물든다'고 맞불은 맞받아친다.
하지만 촛불이든 맞불이든 헌재 결정에 불복하겠다는 태도는 정당화될 수 없다. 저항권의 이름 아래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헌재 결정을 뒤엎겠다는 일각의 주장은 헌정 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헌재 심판에 따라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자명하다. 헌재가 절대적으로 옳은 판단을 내리는 신성불가침 존재여서가 결코 아니다. 법치국가인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헌법기관이 헌법재판소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통합의 형성과 유지 및 법질서의 창설과 유지'를 맡은 헌법을 수호하는 뼈대가 헌재이기 때문이다.
헌재가 흔들리면 법치도 흔들린다. 법치가 흔들리면 시민적 자유가 파괴되고 대한민국이 흔들리게 된다. 헌법재판소를 최초로 신설한 6공화국 자체가 오랜 군사 권위주의 체제를 혁파한 87년 시민 항쟁의 산물이다. 우리 스스로가 피와 땀으로 일군 산업혁명과 민주혁명의 성과를 형상화한 정치제도가 오늘의 헌정 질서인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있는 전 세계 96국 가운데서도 우리나라 헌재는 모범적 기구로 잘 기능해 왔다. 헌재 결정을 거부하는 건 우리 자신의 역사적 성취를 부정하는 자가당착이나 마찬가지다.
형평과 정의를 구현하는 법(law)이 아니라 통치를 위한 실정법(legislation)이 득세하는 사회에선 권력자일수록 법을 지키지 않는다. 법 기술자들이 법률 지식을 악용해 호가호위(狐假虎威)하기 일쑤다. 법이 정의를 구현한다는 공감대가 부족하면 법의 정당성에 대한 시민의 믿음도 약화된다. 통치자와 지배층이 법을 무시하는 나라에선 법원과 검찰을 비롯한 국가 기구의 신뢰도가 바닥을 친다. 경찰지구대가 취객 난동 현장이 되고 비상 출동한 119대원이 얻어맞는 게 일상이 된다.
탄핵 사태는 총체적 위기임과 동시에 통렬한 자기 성찰의 계기이기도 하다. 권력자부터 법을 준수해야 법치주의가 실현되지만 시민적 자유도 곧 법 '안'의 자유임을 깨닫게 만든다. 헌재를 민주 헌정 질서의 수호자로 만든 주체는 우리 자신이다. 탄핵 과정에서 우리는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조차 법의 아래에 있음을 증명했다. 희대의 국정 농단 사태를 헌법 절차에 따라 풀어가는 능력을 실천했다. 이렇듯 한국 민주주의는 경탄할 만한 정치적 회복 탄력성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박 대통령이 탄핵당해야 한다고 확신하지만 헌재가 탄핵을 기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