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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현의 문학산책] 평창의 이효석, 메밀꽃에서 올림픽까지

최만섭 2017. 2. 16. 08:24

[박해현의 문학산책] 평창의 이효석, 메밀꽃에서 올림픽까지

입력 : 2017.02.16 03:13

올해 탄생 110주년 맞은 이효석
올림픽 치르는 평창과 함께 작품 세계도 새롭게 조명받아
'메밀꽃…'에 토속 이미지 심고 '벽공무한'에 세계주의 담은 그는 국제 정세에 밝은 세계인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올해는 소설가 이효석(1907~1942)의 탄생 110주년이 된다. 이효석 문학재단이 최근 '이효석 전집'(전 6권)을 서울대 출판문화원에서 냈다. 1959년에 나온 전집을 보완하고 미수록 작품도 되살려 전면 개정해서 펴낸 정본(定本)이다. 이상옥 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를 비롯한 편집위원회가 2012년 결성돼 시, 소설, 평론, 수필, 번역에 걸쳐 이효석이 남긴 텍스트는 빼놓지 않고 수록했다. 이효석이 일본어로 쓴 소설도 전부 우리말로 번역했다. 오는 23일 이효석 탄생일을 맞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이효석은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났다. 그가 고향을 무대로 삼아서 쓴 단편 '메밀꽃 필 무렵'이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1936년 조선일보사가 발행한 종합잡지 '조광(朝光)'에 실린 작품이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즘생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왼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혀 하앴었다.'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달빛밟기'를 누구보다 앞서서 아름답게 묘사한 대목으로 이름이 높다. 달빛 아래 메밀꽃을 소금에 비유한 결정(結晶) 이미지가 눈부시다. '즘생 같은 달의 숨소리'처럼 감각적인 상상력을 동원함으로써 보통 소설이 지키는 산문의 틀을 뛰어넘어 시학(詩學)의 환상을 빚어내기도 했다. 이효석은 리얼리즘이 지배해온 한국 소설사에서 보기 드문 서정 소설의 작가였다. 그는 1938년 4월 7~9일 자 조선일보에 연재한 평론 '현대적 단편 소설의 상모(相貌)'를 통해 "소설의 목표는 다만 진실의 전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진실의 표현을 수단으로 궁극에 있어서는 미의식을 환기시켜 시의 경지에 도달함이 소설의 최고 표지(標識)요 이상인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효석이 그로 인해 '시인 같은 소설가'로 여겨지다 보니, 지금껏 유약한 심미주의자로 통용될 수밖에 없었다. '메밀꽃 필 무렵'이 가장 널리 읽히다 보니, 토속성이 짙은 소설을 주로 쓴 작가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독법은 이효석 문학의 일부에 매몰돼 전체를 보지 못한 것이다. 이효석은 경성제대 영문과를 나온 당대의 엘리트였다. 정신적으로 '구라파(歐羅巴)'를 지향한 모더니스트였다. 동시에 된장 내 나는 고향 의식도 잃지 않은 조선인이었다. 더 나아가서 일본을 넘어서는 서구 문화의 보편성을 체화하면서 국제 정세에도 밝은 세계인이었다.

[박해현의 문학산책] 평창의 이효석, 메밀꽃에서 올림픽까지
/이철원 기자
지난 10년 사이 국문학계에선 이효석이 일제 말기의 문학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꼽혀왔다. 그런 연구자 중에 소설가이자 평론가이기도 한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의 이효석 연구가 눈길을 끌었다. 그는 1940년 전후 이효석이 중국 하얼빈을 무대로 삼은 소설에 주목했다. 하얼빈은 러시아가 남하정책을 펼치며 건설한 도시였지만, 일본이 중국을 침략해 만주국을 세우면서 하얼빈도 지배하게 됐다. 하얼빈은 러시아인뿐 아니라 유럽 각지에서 온 이주민들이 동양인들과 뒤섞여 북적거린 국제도시였다. 이효석은 하얼빈을 두 차례 여행하면서 새로운 '혼종(混種) 문화'를 접했다. 그의 장편 '벽공무한(碧空無限)'은 하얼빈에서 만난 조선인 남자와 러시아 여자의 사랑을 다루면서, 제2차 세계대전에 휘말린 문명의 위기와 전쟁을 초래한 독일 파시즘과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비판 의식을 에둘러 담았다. 방민호 교수는 논문 '이효석과 하얼빈'을 통해 "이 소설 주인공의 '구라파주의'는 동양과 구라파라는 이질적 문화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성을 기반으로 삼는 새로운 차원의 세계주의를 의미한다"고 풀이했다. 이효석은 '국경 없는 이상주의자'였던 셈이다. 방 교수는 이런 측면에서 이효석의 고향인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것을 계기로 이효석 문학을 국제적으로 재조명하는 문화예술제가 열리길 바란다.

이효석은 1940년 젊은 아내를 병으로 잃곤 어린 자식들(1남 2녀)을 홀로 키웠다. 그러나 그 자신도 1942년 결핵성 뇌막염에 걸려 서른다섯 살에 세상을 떴다. 그는 타계하기 넉 달 전에 자전적 단편 소설 '일요일'을 발표했다. 어미를 잃고도 슬픔을 참아내는 아이들을 눈물겹게 바라보는 대목이 있다. '조용한 밤 적막 속에 어린것들의 재깍거리는 소리만이 동화 속에서나 우러나오는 듯 영롱하게 울리는 것이었다'며 아비가 원고지를 꺼내 글을 쓰고자 하면서 끝나는 소설이다. 그 자녀들이 꿋꿋하게 자
라 사재를 출연해 '이효석 문학재단'을 설립했고, 이번에 알찬 이효석 전집까지 냈다. 국문학계와 문단의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이효석은 단편 '낙엽기'에서 '가난한 재료로 될 수 있는 대로의 풍성한 꿈을 꿈이 이 시절에 맡겨진 과제다. 생활의 재주다"라고 했다. 짧았지만 뜨거웠던 아비의 삶을 기려온 자녀들 덕분에 오늘날 한국 문학이 풍성한 꿈을 꾸게 됐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2/15/20170215034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