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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라 기도

최만섭 2017. 2. 3. 08:42

  • 아비라 기도
최종 업데이트일 2012.03.12

      성철 스님이 당대(唐代)의 총림(叢林) 수행법을 응용해 만든 기도법. 1967년 해인사 백련암에서 처음 시작됐다. 108배 예불 참회, 장궤합장 비로자나법신진언 염송, 능엄주 독송 등의 한 묶음 한 시간을 1회로 친다. 통상 3박4일간 24회를 드린다. 진언 ‘옴 아비라훔캄 스바하’는 성철 스님이 산스크리트어(범어)에서 직접 음역했다. ‘옴’은 범음(梵音)의 으뜸 글자, ‘아비라훔캄’은 비로자나불(佛)의 청정(淸淨) 법신(法身), ‘스바하’는 ‘원만한 성취’의 뜻으로 진언의 마지막에 붙이는 범음이다. 생전의 성철 스님은 “아비라 기도의 참뜻은 진언의 문자적 해석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다해 열심히 염송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인생에 태클 들어올 때마다 '아비라 기도'가 지탱해줬죠"

입력 : 2017.02.03 03:04

[해인사 백련암 '아비라 기도' 풍경]

1960년대부터 성철 스님이 신도들에게 지도해 온 기도법

방석에서 쪽잠 자며 450명 참가… 108배로 시작해 진언 외워
1년에 네 번… 3박 4일간 강행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설 연휴 직후인 지난 31일 오후 경남 합천 해인사 산 내 암자인 백련암에 오르자 장중한 '합창' 소리가 객을 먼저 맞는다. 이날 서울의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10도. 해발 750m 고지에 있는 백련암 추위도 매서웠다. 그러나 고심원, 적광전, 관음전, 정념당 등 전각 안에 들어서면 이내 카메라 렌즈에 김이 하얗게 서렸다. 성철(性徹·1912~1993) 스님이 입적한 지 24년째 그 가르침을 좇는 신도들의 '아비라 기도'는 맹추위를 녹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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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백련암에서 아비라 기도 중인 신도들. 바깥엔 영하의 칼바람이 불어도 실내에는 이슬이 맺힐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기도의 전 과정을 신도들이 자율적으로 진행한다. /김한수 기자
성철 스님은 생전에 "스님들에게 부탁하는 기도는 '삯꾼 기도'다. 신도 스스로 기도하라"며 '아비라 기도'를 당부했다. 1960년대 초 대구 파계사 성전암 시절부터 이 기도를 권했고, 1967년 해인총림 방장으로 취임하면서 백련암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년에 네 번 동안거와 하안거 시작과 마지막에 맞춰 3박4일간 진행되는 기도엔 매번 400~500명씩 참가한다. 1월 31일부터 2월 3일 오전까지 이어지는 올해 기도 참가자는 450여명. 80대 노(老)보살부터 엄마 따라온 여덟 살 어린이까지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도 백련암을 찾았다.

아비라 기도는 108배(12분)로 시작해 장궤합장한 채로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를 외면서 30분, 이어서 산스크리트어로 대불정능엄신주(大佛頂楞嚴神呪)를 독송하는 것이 한 사이클, 1품(品)이다. 한 품에 1시간씩, 3박4일 동안 모두 24품을 마치게 된다. 새벽 2시 반 기상해 새벽·오전·저녁 세 차례 예불과 식사 시간을 빼곤 계속 기도와 휴식의 반복이다.

기도 기간 동안 참가자들에겐 가로 60㎝, 세로 90㎝짜리 좌복(방석)이 기도처이고 잠자리다. 저녁 8시쯤 일과를 마치면 그대로 방석 위에서 새우잠, 칼잠을 잔다. 화장실도 재래식이고, 식사도 반찬과 밥, 국을 쟁반과 들통에 담아와 방바닥에 놓고 여럿이 둘러앉아 먹는다. 참가자들은 그런 불편을 자청한 사람들이다.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순간은 장궤합장. 몸을 'L'자형으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30분간 진언을 염송하는 동안 체중은 양 무릎으로 내려꽂힌다. 법신성 보살(64)은 "20분쯤 지나면 무릎에 고춧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이 아프다"고 했다. 성철 스님은 고통이 극한에 이를 때쯤 나타나 신도들 사이를 한 바퀴 돌며 격려했다고 한다. 과연 장궤합장한 지 15분쯤 지나자 진언 소리가 잦아드는 기색이었다. 그때 방 한쪽에서 큰 소리로 "옴 아비라 훔!"을 외치는 소리가 울렸고 대중은 다시 힘을 내 우렁차게 진언을 외쳤다. 부상한 동료를 부축하는 전장의 전우(戰友)가 떠올랐다. 백련암 감원(監院·암자의 어른) 원택 스님은 지난 31일 저녁 법문을 통해 "성철 스님은 항상 '백련암에선 3000배와 아비라 기도, 능엄주가 끊이지 않도록 하라'고 하셨다"며 "스님 떠나시고 24년이 되도록 흩어지지 않고 스스로 기도하는 신도님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틀째인 1일 오전 청소 시간에 만난 참가자들은 성취감을 맛보고 있었다. 베이징대 유학 중 방학을 맞아 아버지와 함께 처음 참가한 권장옥(19)씨는 "아버지가 '아비라 기도를 하고 나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고 권해서 참가했다"고 말했다. 30여년 전 성철 스님이 계실 때부터 참가했다는 70대의 법호윤 보살은 "처음엔 '남을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이 도저히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고 했다. "기도하다 보면 자연히 내 아들, 내 남편 생각이 떠오르곤 했지요. 그런데 한 10년 꾸준히 기도하다 보니 어느새 남을 위하는 것이 결국은 나를 위한 것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 이후로는 저 개인을 위한 기도는 하지 않습니다. 사회와 나라를 위해 기도하지요." 서울에서 온 한 70대 노보살은 "인생에 태클이 들어올 땐 주저하거나 물러서지 않고 아비라 기도를 더 밀어붙였고 삶을 지탱할 수 있었다"며 "기도를 하다 보면 저 절로 '집안의 부처님'을 모시게 되고, 이웃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봉사하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