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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밥상엔… '유전자 가위'로 만든 두부·샐러드

최만섭 2017. 1. 19. 07:57

21세기 밥상엔… '유전자 가위'로 만든 두부·샐러드

  • 박건형 기자
  • 입력 : 2017.01.19 03:01

    - 식탁 오르는 '유전자 편집 식물'
    유전자 조작 작물과는 다르게 특정한 유전물질 자르고 결합… 색깔 안 변하는 감자 등 가능

    뉴욕선 '유전자 가위' 만찬 열려

    미국 뉴욕의 고급 레스토랑 '알레인 두카세'에서는 지난해 10월부터 교수·배우·금융가 등 유명인들이 참여하는 만찬이 비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두부·팬케이크·샐러드 등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음식들이지만, 주재료인 콩과 감자는 몇년 전까지만 해도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식물이다. 콩은 기름으로 만들었을 때 유해한 트랜스 지방이 생기지 않고, 감자는 껍질을 벗겨도 오랫동안 색깔이 변하지 않는다. 유전공학 기술인 '유전자 가위'로 콩에서는 트랜스 지방을 만드는 유전자를, 감자에서는 색깔을 바꾸는 유전자를 잘라냈기 때문이다. 만찬의 주최자이자 유전공학 회사 셀레틱스의 최고경영자(CEO)인 안드레 쇼리카는 "유전자 편집으로 탄생한 식물들은 유전자 조작 작물(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과는 다르다"면서 "21세기 인류의 주식(主食)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하는 식물 만들 수 있는 유전자 가위

    유전자 가위가 실험실을 벗어나 인류의 농장과 식탁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유전자 가위는 잘라내고 싶은 특정한 유전자(DNA)에만 결합하는 유전 물질(RNA·ribo nucleic acid)과 효소를 결합한 형태이다. RNA의 종류를 다양하게 만들면 어떤 유전자도 잘라낼 수 있다. 무엇보다 기술이 간단하다. 생명공학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만 있다면 불과 한두 달 만에 완벽하게 기술을 배울 수 있다. 2014년 확산되기 시작한 이후 불과 3년 만에 생명공학의 주류가 됐다.

    유명 배우 닐 패트릭 해리스(윗줄 가운데)를 비롯한 유명인들이 미국 뉴욕의 레스토랑‘알레인 두카세’에서 유전자 편집 식물로 만든 음식으로 만찬을 즐기고 있다.
    ▲ 유명 배우 닐 패트릭 해리스(윗줄 가운데)를 비롯한 유명인들이 미국 뉴욕의 레스토랑‘알레인 두카세’에서 유전자 편집 식물로 만든 음식으로 만찬을 즐기고 있다. /셀렉티스
    식용 식물의 발달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9일 "정부 허가를 받은 유전자 편집 작물들이 이미 곳곳에서 자라고 있으며 먹고 있는 사람도 있다"면서 "많은 사람이 몇년 뒤면 유전자 편집으로 만들어진 차세대 음식들을 먹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미 콩과 감자뿐 아니라 기존보다 훨씬 오래 사는 양송이버섯, 알갱이가 무르지 않는 옥수수 등이 개발됐다. 셀레틱스의 경우 내년부터 이 식물들을 대량생산할 계획이다.

    유전자 편집이 각광받는 것은 유전자 조작 농산물(GMO)과 달리 안전성 논란이 없기 때문이다. GMO는 박테리아를 이용해 식물의 유전자에 원하는 형질을 집어넣는다. 이 과정에서 박테리아의 유전자가 식물에 남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자연에서 일어날 수 없는 과정인 만큼 위험이 내포돼 있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부작용이나 문제가 보고된 적은 없지만 유럽 등에서는 국가적으로 재배를 금하는 곳도 많다. 반면 유전자 편집은 원래 있는 유전자를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이런 논란에서 자유롭다. 또 정확히 원하는 유전자만 골라서 잘라낼 수 있기 때문에 각 유전자의 역할만 알면 원하는 형질의 식물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미국·영국·중국 등은 GMO와 달리 유전자 편집 작물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제를 하지 않고 있다.

    한국도 세계적 경쟁력 갖춰

    한국도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고 있다.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교정연구단장(서울대 화학부 교수)은 2015년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상추의 유전자를 편집하는 데 성공했다. 상추의 성장 속도를 결정하는 식물 호르몬관련 유전자를 편집해 병충해나 가뭄 등에 대한 내성을 갖게 만든 것이다. 김진수 단장은 "상추 이외에 담배·벼의 유전자 편집에 이미 성공했다"면서 "효소의 종류를 다양하게 개발하고 정밀도를 더 높이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전자 편집은 식물뿐 아니라 동물도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다. 김진수 교수는 윤희준 중국 옌볜대 교수 연구팀과 공동으로 일반 돼지보다 근육량이 월등히 많은 '수퍼 돼지'를 만들었다.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근육이 일정 수준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하는 유전자인 '마이오스타틴'을 잘라낸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낸 돼지는 단백질 함량이 높고 지방은 적다. 류밍준 중국 신장축목과학원 교수팀은 지난해 6월 얼룩무늬나 커피색 등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색깔을 가진 양 5마리를 만들어냈다.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털 색깔을 결정짓는 유전자 'ASIP'를 다양하게 바꿔본 결과이다. 염색을 하지 않고도 다양한 색상의 양모(羊毛)를 얻어낼 수 있는 기술이다.

    김진수 교수는 "한국은 유전자 편집 기술력은 뛰어나지만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고 상용화에 나설 기업도 부족하다"면서 "유전자 편집 식물을 GMO와 같이 취급하는 규제도 완화해야 중국·미국 등과 경쟁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