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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도쿄의 본심

최만섭 2016. 12. 12. 09:21

[특파원 리포트] 도쿄의 본심

입력 : 2016.12.12 03:14

김수혜 도쿄 특파원
김수혜 도쿄 특파원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가결 직후 일본 우익 논객 사쿠라이 요시코(71)씨가 한국 출신 평론가 오선화(60)씨와 잡지 대담을 했다. 사쿠라이씨는 아베 신조 총리를 지지하고 받쳐주는 대표적인 논객이다. 아베 정권을 외곽에서 밀어주는 정치단체 '일본회의'의 중심인물이기도 하다. 오씨는 육군 부사관으로 복무하다 일본에 건너가 혐한 베스트셀러를 여러 권 쓴 뒤 다쿠쇼쿠(拓殖) 대학이라는 사립대학의 교수가 됐다. 식민지 파견 인력을 키우기 위해 1900년 문 연 학교로, 학교 이름 '다쿠쇼쿠'도 동양척식회사 할 때 그 '척식'이다.

이날 대담에서 사쿠라이씨는 "한국 대통령은 권력을 이용해 사복을 채우다 비참한 말로를 맞는다"면서 "이것도 민족성과 관계 있냐"고 했다. 오씨는 "그래서 한국 사람도 한국을 싫어한다"며 "한국은 앞으로 위안부와 징용 문제에서 더욱 일본을 공격할 테니, 일본은 한국에 상관하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두 사람은 지금 상황을 구한말에 겹쳐서 봤다. "민비(閔妃)가 청나라, 러시아, 일본 사이를 오락가락하다 조선이 망했다" "박 대통령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다가 중국 경제가 나빠지자 일본에 와서 위안부 합의를 하더라"는 얘기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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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부지 앞에서 열린 제1260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서 6일 별세한 위안부 피해자 박숙이 할머니를 위해 묵념하고 있다. 박 할머니가 별세하면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238명) 중 생존자는 39명으로 줄었다. /연합뉴스
이런 주장은 사실 불쾌할 뿐 새롭지 않다. 두 사람은 이런 얘기를 쭉 해서 떴다. 옳고 그름을 떠나 논리가 조악하고 틀린 팩트가 많다. 일일이 논박할 가치가 없다. 그런데도 길게 전하는 이유는, 이런 대담에 귀 기울이는 일본인이 적지 않단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다. 앞으로 우리 움직임에 따라 일본 안에서 커질 목소리가 바로 이 목소리다.

지금 일본은 우리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쿠라이씨 대담 같은 우익 잡지와 인터넷 매체 기사는 논외로 하고, 5대 일간지와 교도·지지·로이터 통신과 NHK 정규 뉴스가 한국 대통령에 대해 쏟아낸 기사만 10월 이후 2400건이 넘는다. 일본의 관심은 탄핵 가결 당일 절정을 찍었다. 그날 일본 국회에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승인 투표가 진행됐는데, TBS·후지TV·일본TV 같은 일본 민방이 하나같이 일본 국회를 제쳐놓고 같은 시각 서울 국회의사당 탄핵 투표를 동시통역으로 생중계했다.

이들의 관심이 다 악의적이진 않다. 되레 뼈아프게 새겨들어야 할 대목도 많다. 아사히신문은 "최순실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2014년부터 나왔는데도, 대통령의 막강한 권력이 진상 규명을 막았다"면서 "그런데도 당장의 대선에 쫓겨 통치 시스템을 개혁할 전망이 안 보인다"고 썼다. 우리 문제를 우리보다 더 냉정하게 파헤친 문장이다. 한편 마이니치신문은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도 자각해야 한다"고 썼다.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이 물음표 상태가 되면, 동북아 전체가 불안해진다.

하지만 이들이 가진 관심의 핵심은 역시 '위안부 합의'에 있다. '한국이 합의를 지킬 것인가' 하는 질문이 넘쳐나는 한국 기사의 배후에 어른거린다. 지키건 깨건, 우리는 우리 행동을 큰 틀에서 보고 말을 아껴야 한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탄핵 가결 당일 "위안부 합의 같은 박근혜 정권의 대표적인 실정에 대해 즉각 중단을 요청한다"고 했다. 그 말이 이튿날 일본 매체에 빠짐없이 다 났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11/201612110140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