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BUSINESS 용어

'콜포비아(전화 공포증)'

최만섭 2016. 10. 21. 12:04

[2030 프리즘] SNS 메신저 시대에 멸종된 것들

입력 : 2016.10.21 03:11

최수현 문화부 기자
최수현 문화부 기자
A교수는 요즘 연구실 안에 있을 때 문을 잠가놓는다. 노크 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다짜고짜 용건을 말하는 학생들 때문이다. 이야기를 다 듣고서 "그런데 누구세요?"라고 물어보면 그제야 학생이라고 답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제목 없는 이메일을 보내 '저 이번 학기 결석 몇 번 했나요?' '지난 강의 내용은 게시판에 올라오는 거죠?'라고 묻는 학생들은 인사말도 없고, 자기가 누군지도 밝히지 않는다. '누구누구 올림' 같은 끝인사도 사라진 지 오래다.

A교수는 "말하는 사람 이름이 자동으로 뜨고 형식적인 인사는 생략하는 SNS· 메신저 대화에 요즘 젊은이들이 워낙 익숙하다 보니 자기 이름이나 소속을 밝히는 기본적인 대화 예절조차 모르더라"고 했다. 참다못해 '이메일 에티켓'을 문서로 정리해 학생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다. 그는 "그래도 이메일 보내는 학생은 동방예의지국에 사는 편"이라고 했다. 휴대폰 번호는 또 어떻게 알아냈는지 학생들이 밤이고 새벽이고 가리지 않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 '오늘 저 출석 체크하셨나요?' 같은 걸 묻는다.

문자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전화받기를 꺼려 '콜포비아(전화 공포증)'라는 말까지 생겨난 세상이다. 버튼 몇 번만 누르면 피자 배달이나 콜택시는 물론이고 원하는 헤어스타일 사진을 눌러 미용실 예약까지 할 수 있게 됐으니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전화 소통법 컨설팅업이 생긴 걸 보면 외국 상황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캐나다의 전화 소통 컨설턴트 메리 J 콥스는 "많은 사람이 적절한 단어를 적절한 순서로 적절한 시간 안에 말하는 데 자신 없어 한다"고 진단한다.

[2030 프리즘] SNS 메신저 시대에 멸종된 것들
기술이 발전하고 시대가 바뀌면서 사람끼리 소통하는 방식도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하지만 달라진 소통 방식에 황당함과 불쾌함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 삐삐를 거쳐 휴대폰이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절에도 '전화만 하지 말고 직접 만나 이야기하자'고 촉구하는 캠페인이 있었다.

SNS나 모바일 메신저로 문자를 주고받는 소통 방식은 말을 허공에 던져놓는 것과 같다. 내가 보낸 메시지에 상대가 어떤 즉각적인 반응이나 감정을 일으켜도 내게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쉽고 정확하고 편리한 수단이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 가 편할 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던져버릴 뿐, 정작 나 자신은 메신저 뒤로 숨는 것 같아 비겁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두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처럼, 대화를 나눈다고 하면서 실은 각자 독백을 늘어놓는 건 아닐까. 내 말만 하는 SNS식 소통법 탓에 '사람 사이 대화엔 늘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기본 중의 기본조차 잊고 산다.
자세히보기 CLICK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