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밥 딜런 -2016년 노벨문학상

자유롭게 구르는 돌… 밥 딜런은 늘 과거를 버리고 떠났다

최만섭 2016. 10. 15. 07:01

자유롭게 구르는 돌… 밥 딜런은 늘 과거를 버리고 떠났다

  • 김동식 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

입력 : 2016.10.15 03:00

밥 딜런이 직접 쓴 유일한 책

포크 음악·반전평화운동 등 늘 자신과 결별하고 새 길 찾아
엘리엇·안톤 체호프·멜빌 등 독서와 감수성에 기댄 노랫말

'바람만이 아는 대답'
바람만이 아는 대답 | 밥 딜런 지음 | 양은모 옮김 | 문학세계 | 320쪽 | 1만1000원

칠팔 년 전의 일이었을 것이다. 알고 지내던 출판 편집자 사무실에서 사진과 가사가 포함된 밥 딜런 책을 발견했다. 평화를 노래한 음유시인이자 포크록의 전설적인 뮤지션인 밥 딜런 책인 만큼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출판 편집자가 들려준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림도 그리고 시도 쓰는데, 미국 교과서에 그의 노랫말이 수록되었고, 꾸준하게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고. '구르는 돌처럼'(like a rolling stone) 등 그의 노랫말에 담긴 문학성을 고려할 때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음악인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노벨상을 둘러싼 유머라고 여기며 가볍게 넘겼다.

그 후로 매년 가을 노벨상 시절이 다가오면, 혹시 올해 노벨 문학상을 밥 딜런이 받는 것은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공상을 하며 혼자 재미있어 하곤 했다. 그런데 설마 하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2016년 가을 스웨덴 한림원은 밥 딜런을 수상자로 선정했다. 신선하면서도 즐거운 충격이었다. 밥 딜런이 과연 시인인가 하는 문제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문학자라는 지위를 인정받고 나서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래로 불리었고 음반으로 발매되었다는 이유로 문학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밥 딜런과 스웨덴 한림원이 문학을 둘러싼 관습적 인식들을 되짚어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가 구석에 꽂혀 있던 밥 딜런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꺼내들었다.

1965년 뉴욕, 밥 딜런은 스물다섯의 겨울을 관통 중이었다.
1965년 뉴욕, 밥 딜런은 스물다섯의 겨울을 관통 중이었다. 미네소타의 촌스럽던 유태인 청년은 이제 예술을 욕망하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나는 먼 길을 왔고 가야 할 먼 길을 막 출발했다.” /Richard Avedon Foundation
"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봐야 진정한 인생을 알게 될까

흰 비둘기는 얼마나 많은 바다 위를 날아야 백사장에 편히 쉴 수 있을까

전쟁의 포화가 얼마나 많이 휩쓸고 나서야 영원한 평화가 찾아오게 될까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어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밥 딜런 노래와 가사는 길을 걷는 사람의 읊조림이다. 그는 언제나 길 위에 있고 그 길을 따라 끊임없이 옮겨다니며 조용한 목소리로 세상에 말을 건넨다. 그의 노랫말에서 단어를 가져온다면, 구르는 돌이 만드는 길과 소리와 자유로움을 저절로 떠올리게 된다. 구르는 돌이 나뭇잎을 스칠 때, 도시의 페이브먼트를 지날 때, 전쟁의 폐허 더미와 부딪칠 때의 소리들. 평범한 듯 보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의 노랫말은, 세계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과 문학 작품에 대한 광범한 독서에 기반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시인 딜런 토머스를 좋아해서 로버트 지머먼에서 밥 딜런으로 개명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터이고, 자서전에서는 에즈라 파운드, T. S. 엘리엇, 허먼 멜빌 등 그가 접했던 작가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에 근거해서 앨범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으며, 가장 적합한 가사를 얻기 위해서 뉴욕 공공도서관에 틀어박혀 신문을 미친 듯이 읽어가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밥 딜런과 관련된 두 가지의 장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하나는 1965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전기기타를 메고 나왔던 밥 딜런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반전과 평화를 노래하는 가수였던 밥 딜런이 사회 참여 대열에서 이탈했을 때의 모습이다. 전기기타는 포크 순수주의를 배반하는 상징이었고, 존 바에즈는 대중의 대변인이 되라며 밥 딜런을 비판하는 노래를 발표한 바 있다. 포크 음악에 대한 애정이 거짓이었고 반전평화운동은 진정성이 결여된 행동이었던 것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자서전에서 그는 세상의 오해에 대해 별다른 변명을 내놓지 않는다. "포크 뮤직 무대는 아담이 에덴동산을 떠나야 했던 것처럼 내가 떠나야 하는 파라다이스"였으며, "나는 어떤 주의나 누구의 대변인이 아니고 음악가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을 따름이다. 포크 음악과 반전평화운동 모두 그가 걸어왔던 길이고, 애정을 가지고 스스로 만든 자신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러한 자신의 모습이 구속이나 억압이 되어 돌아오게 된다면, 어쿠스틱 기타만 써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정이 구속이 되고 자유를 노래해야 한다는 요구가 역설적이게도 억압이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김동식 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
김동식 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
밥 딜런의 선택은 바람과 같은 자유로움이었다. 그는 과거의 자신과 결별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움직여 나갔다. "길 바깥은 위험했고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몰랐지만 아무튼 나는 그 길을 따라갔다. (…)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세계는 신이 주관하지도 않았지만 악마가 주관하는 것도 아니었다."

밥 딜런은 자유롭게 굴러다니는 돌이었고, 언제나 길 위에 있었고, 길을 따라 끊임없이 움직였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지금도 그는 구두끈을 고쳐 매고 있지 않을까. 오늘 밤에는 '구르는 돌처럼'(like a rolling stone)을 크게 틀고 가사를 훔쳐보며 나지막하게 따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