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밥 딜런 -2016년 노벨문학상

기타와 詩에 미친 '삐딱한 딴따라'… 문학의 중심에 섰다

최만섭 2016. 10. 14. 07:01

기타와 詩에 미친 '삐딱한 딴따라'… 문학의 중심에 섰다

  • 강정 시인·밴드 '무명성' 보컬

입력 : 2016.10.14 03:00

[시인 강정이 본 노벨문학상 밥 딜런]

예명, 아일랜드 시인서 따와… 작품은 美서 영문학 교재로 쓰여
가수와 노벨문학상의 낯선 연결… '음유시인'에 대한 공증이 될 것

강정 시인·밴드 '무명성' 보컬
강정 시인·밴드 '무명성' 보컬
미국 가수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어떤 이들에겐 놀랍고 당혹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가수'와 '노벨 문학상'은 그리 자연스럽지도 합당하지도 않은 연결로 (아직까지는) 보인다. 흔히 그를 '음유시인'이라 일컫기는 하지만, 그건 다만 한 가수의 독자성을 수식하기 위한 공허한 '계관'일 뿐, 그게 모종의 문학적 가치에 대한 '공증'으로 여겨질 공산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희박하다. 그의 작품이 미국 대학의 영문학 교재로 쓰이고, 질 들뢰즈가 "딜런처럼 갑자기 광대의 가면을 쓰고, 각 세부가 조율되어 있으면서도 즉흥적인 연주를 하는 기법"으로 강의하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하더라도 여전히 남의 나라 풍문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그는 50년 넘는 세월 동안 음악 활동을 하고 있는 소위 '살아 있는 로큰롤 신화' 중 한 명이다. 하지만 그에겐 비틀스나 엘비스 프레슬리에 비하면 전 세계적인 넘버원 히트곡도 빈약할뿐더러, 폭넓은 대중적 지지를 얻지도 못했다. 과장 조금 보태, 수만 곡에 달한다는 그의 노래 중 한반도의 장삼이사들에게 익숙한 노래는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나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 등 몇 곡 안 된다. 그나마도 에릭 클랩턴이나 건스앤로지스 등의 다른 가수 버전이 더 잘 알려진 편이다. 1970년대에 양병집이라는 한국 가수가 그의 노래를 번안해 부르기도 했지만(그 번안곡들을 고(故) 김광석이 '다시 부르기'도 했다), 그 노래들의 원작자가 밥 딜런이라는 사실을 요즘 와서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본업(?)인 노래가 그러할진대, 단 한 번도 이 땅에서 문학적 관점으로 공론화된 적 없는 그의 '시'를 우리는 과연 어떻게, 뒤늦게나마, 받아들이게 될까.

밥 딜런이 지난 1984년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다.
밥 딜런이 지난 1984년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13일“위대한 미국의 노래 전통 속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낸”딜런을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한다고 밝혔다. /Getty Images 이매진스
밥 딜런이 소년 시절부터 랭보 시의 애독자였다는 사실 정도는 여기에 밝혀두어야겠다. 그의 예명이 웨일스 출신 시인 딜런 토머스에게서 따온 것이라는 사실 또한 (밥 딜런의 본명은 로버트 앨런 지머먼이다) 이번 노벨상 수상에 의구심을 가질 만한 사람들에겐 그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조금이나마 교정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1950~1960년대 당시 미국 젊은이들이 으레 그랬듯 그 또한 기성세대에 대한 환멸과 그로 인한 반골의식으로 되바라진(?) 청년 시절을 보냈다. 그의 주식(主食)은 기타와 시였고, 말런 브랜도와 제임스 딘 등의 반항적 캐릭터를 롤모델 삼은 '삐딱한 딴따라'로 세상에 첫 이름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 '딴따라'는 초현실주의와 비트문학, 반전의식과 청교도 정신 등을 휘트먼풍의 예언자적 울림으로 풍성하게 버무린 노래를, 이상한 스타일의 발성법으로 읊조려대며 세계 젊은이들의 뜨거운 우상이 되었다. 기타의 신이라 불리는 지미 헨드릭스는 "저렇게 멋대로 음정 박자 무시하고 노래할 수 있는 건 대단한 용기"라 칭송하면서 딜런의 괴상한(?) 창법을 자신에게 이식했을 정도였다.

밥 딜런 연보
그 이후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밥 딜런은 단순히 가수의 생애라고 하기엔 그 극적 밀도가 심상치 않은 몇 차례의 '표변'을 일삼는다. 세상과의 불화, 불가해한 정념과 그것들과의 투쟁으로 나타나는 섬뜩한 문장들이 그 배후를 흐릿한 신비의 커튼으로 줄곧 둘러치게 되는데, 그의 그런 족적은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문학세계사)과 마이크 마퀴스가 쓴 평전에 잘 드러나 있다. 토드 헤인스가 연출한 영화 '아임 낫 데어'를 참조하는 것도 괜찮다. 굳이 직접 얘기하지 않고 다른 텍스트를 열거하는 까닭은 기왕 이번 기회에 그에 대한 새로운 각도의 관심이 돋아난다면 직접 찾아 훑어보시라는 뜻이다. 밥 딜런은 어쨌거나 우리에겐 다시 처음부터 읽히는 텍스트가 된 셈이니까.

그런데 그의 수상 소식을 듣고 퍼뜩 떠오르는 한국인이 한 명 있다. 흔히 '한국의 밥 딜런'이라 세칭되는 가수 한대수다.
그 또한 비트문학과 P 셸리 등의 영국 낭만주의 시인들의 세례를 거친, 독자적인 '음유시인'의 이름값에 처지는 이가 아니다. 밥 딜런의 수상 소식을 듣고 엉뚱하게도 나는 그가 김수영문학상이나 대산문학상 같은 걸 수상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가수'와 '노벨문학상' 사이의 (아직은) 낯선 연결이 불러일으킨, 그럴듯하지만 요원한 망상이라고나 일단은 자위하겠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