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10.04 02:09 | 수정 : 2016.10.04 08:51
['made in Korea' 신화가 저문다] [제3부] 우물안 工大 교육
기업들 "工大선 뭘 가르치나"… 수천만원씩 투자해 재교육
- 미적분 등 기본 개념도 이해못해
전기공학과 나와도 회로 못읽어… 업무 지시하면 "그런거 안배웠다"
- 기업인들 "대학, 변화가 없다"
48% "인재 가뭄은 대학 책임", 53% "트렌드 변화 반영 못해"
프린터 제조업체 대표인 최근수(60)씨는 얼마 전부터 신입사원 선발 때 전공 시험을 보기 시작했다. 학점 높고 토익 성적 좋은 학생을 뽑아도 정작 전공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도대체 공대에서는 뭘 가르치는지 모르겠다"며 "적어도 연구·개발에 필요한 기본 개념·기술은 대학에서 책임져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산업 현장에서 "당장 쓸 인재가 없다"는 아우성이 나오고 있다. 연구 역량을 갖춘 인력을 선발해 기술 개발에 투입하고 싶지만 마땅한 사람을 찾기 힘들다는 게 기업인들의 말이다. 대기업은 신입사원을 뽑아놓고 결국 한 명당 수천만원을 투자해 재교육한다. 구인난에 자금 여력도 없는 중견·중소기업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직원을 채용한다. 한 중견기업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석·박사급은 그나마 낫지만, 학부만 졸업하고 입사한 사람들은 실무 능력이 사실상 제로(0) 상태에서 들어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공 지식 떨어지는 공대생
산업 현장에서는 이공계 출신 인력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전문성 부족'을 꼽았다. 본지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산기협)와 국내 중소·중견기업·대기업 250여곳의 임원급 최고기술책임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명 중 7명(72.4%)이 '맡은 업무 분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답했다. 전공자라고 뽑아도 업무 이해도가 떨어져 발 빠르게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전공에 대한 기초 소양이 부족하다'(31.2%)는 점도 지적했다. 중소기업 대표 A씨는 "미적분도 제대로 이해 못 하고 공학적 개념도 탄탄하지 않으면서 수박 겉 핥기식의 각종 융합 교육만 맛본 졸업생들이 수두룩하다"며 "업무 지시를 하면 '그런 거 안 배웠다'고 잡아떼는데 채용을 무를 수도 없고 답답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기업인들은 '이공계 인재 가뭄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학 교육에 있다'(48.4%)고 입을 모았다. 그중에서도 '대학이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트렌드를 반영한 교육을 하지 못한다'(53.2%)고 답한 기업인이 가장 많았다. 상당수 대학이 매년 같은 시험 문제를 출제하고, 산업 현장의 기술 변화에는 눈감은 채 매학기 똑같은 강의만 반복한다는 것이다. 학생은 기출문제 답안지인 족보를 달달 외워 답안지를 채우고, 대학은 실습과 연구에 쓸 실험 도구나 최신 기계 보급에는 지갑을 닫으니 공대생들이 4년 내내 철 지난 이론만 배우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이야기다. 산기협 관계자는 "한 대기업에 방문했다가 커다란 캐드실(室)이 따로 있기에 용도를 물었더니 '신입사원들이 6개월간 배우는 교육실'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한 IT 업체 대표는 "컴퓨터공학과 졸업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코딩(coding·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해보라고 했더니 제대로 한 학생이 거의 없었다"며 "코딩도 할 줄 모르는 공대 졸업생이 입사하면 기업들은 황당할 뿐"이라고 말했다.
◇산학 협력 교육도 지지부진
기업들은 공대 교수들이 기업 현장에 관심이 없는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기업 현장에 적합한 인재를 키워내는 것은 결국 공대 교수들의 몫인데, 교수들이 기업을 잘 모르니 제대로 된 교육이 안 된다는 것이다. 강성모 KAIST 총장은 "공대는 산업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현장의 약점을 알고 도와줄 부분이 무엇인가를 파악해야 하는데, 교수들이 적극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학생들을 기업 현장에 보내 대학의 실습 교육을 보완하는 산학 협력 교육 역시 지지부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