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배치

[데스크에서] 중국의 관변학자

최만섭 2016. 8. 20. 05:55

[데스크에서] 중국의 관변학자

입력 : 2016.08.20 03:03

안용현 정치부 차장
안용현 정치부 차장
지난 1월 6일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했을 때다. 운(?) 좋게도 2주일 전쯤 인터뷰 약속을 잡았던 중국 외교부 산하 연구소의 고급(高級) 연구원 A씨를 그날 만났다. 북한 핵실험처럼 민감한 사건이 터지면 중국의 외교·안보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학자들을 곧바로 인터뷰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중국 당국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입조심을 하기 때문이다. 당시 A씨는 두 번이나 약속을 미뤘던 탓에 차마 더 미루지 못하고 한국 기자를 만난 것 같다. 그는 "중국의 인내심이 한계에 왔다. 원유 차단을 제외하고 모든 대북(對北) 제재 카드를 쓸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일(1월 7일) 중국 외교부 회의에 들어간다. 한국 정부가 중국에 원하는 게 뭐냐?"고 묻기도 했다. 북한과 김정은을 자유롭게 비난했다. 그러나 막상 7일 중국 외교부 회의 이후 중국 관영 매체와 학자들이 쏟아낸 핵실험 관련 발언은 약속이나 한 듯 똑같았다. '핵실험은 비판한다. 그러나 북한이 혼란해지면 안 된다. 핵실험의 책임은 미국에 있다'는 논조였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문제를 논의하겠다며 방중한 더불어민주당 의원 6명이 지난 9일 만난 중국 학자 중에는 왕쥔성(王俊生·37) 사회과학원 연구원이 있다. 나름 한반도 문제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지난 5월쯤 '박근혜 정치경제학'이란 제목의 책을 썼다. 중국 학자가 한국 현직 대통령의 정치·외교·안보 정책을 심층적으로 분석한 책을 내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는 책에서 '현재 한·중 관계를 총체적으로 보면 수교 이후 최고의 시기를 맞고 있다'고 적었다. 특히 당선 직후 미국보다 중국에 먼저 특사를 보내고, 일본보다 중국을 먼저 국빈 방문한 박 대통령의 대중(對中) 외교를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사드 배치가 발표되자 그의 한국 외교·안보에 대한 평가는 순식간에 180도 바뀌었다. 왕 연구원은 관영 매체에 '사드로 가장 피해 보는 것은 한국이 될 것' '사드 배치는 한국의 능력으로는 놀 수 없는 게임' 등 우리를 맹비난하는 글을 잇달아 게재했다. '박근혜 정치경제학'에 쓴 내용을 완전히 잊은 듯했다. 그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지금 친한파(親韓派)라는 중국 학자 가운데 '한국의 사드 배치를 이해한다'고 말하는 인사를 찾기 어려운 게 중국 학계의 현실이다.

베이징 외신 기자들은 '그린 라이트(야구에서 감독 사인 없이 도루할 수 있는 권리)'를 받은 학자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중국 지도부의 결정을 거스르는 발언을 절대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중국 지도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 큰 영향력을 발휘할 지위에 있지도 않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에게 직접 조언할 정도의 중국 학자라면 외국 정치인이나 기자는 만나지 않을 것이다.

중국 학자들과 사드 논의를 했다는 더민주 의원들은 중국의 이런 학계 현실을 조금이라도 알고 갔을까. 귀국 후 행보를 보면 그랬을 것 같지 않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