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넘게 살고 있는 시골 마을… 그 어귀엔 활짝 열린 구멍가게
논밭일 마치고 잠시 쉬다가는 마을의 놀이터이자 사랑방
이 세상에 꼭 있어야 할 좋은 것들은 얼마나 많은가
![원재길 시인·소설가](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605/03/2016050303370_0.jpg)
이 세상엔 처음부터 없었더라면 좋을 것이 적지 않다. 어지러운 간판이 그렇고, 더러운 입, 흘겨보기, 로드 킬, 아무렇게나 담배꽁초 퉁기기가 그렇다. 그런가 하면 있어서 좋은 것도 많다. 봄소식과 꽃집, 일 잘하고 너그러운 시장님, 덕담 같은 것들이다.
이런 것들 가운데 지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우리 마을 어귀에 있는 구멍가게다. 우리 가족이 강원도 원주의 이곳 산마을로 들어온 지 열두 해가 넘었다. 그동안 이 가게는 날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문을 열었다. 가게 아주머니는 마을 여자들이 봄가을에 가는 여행을 모두 걸렀고, 이장 선거 때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지 않고 가게를 지켰다. 개미 한 마리 나다니지 않는 찜통더위에도 가게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엄동설한에 폭설이 무릎 높이로 내려도 가게 난로 굴뚝은 연기를 퐁퐁 뿜어냈다.
이 가게에서 가장 잘 팔리는 품목은 과자와 아이스크림 같은 주전부리였다. 라면과 음료수도 인기 품목 상위권에 들었고, 목장갑과 화장지와 부탄가스도 크게 유행을 타지 않았다. 이런, 막걸리를 빼먹을 뻔했다. 막걸리가 얼마나 많이 팔리던지, 가게 안쪽 김치 냉장고엔 언제 뚜껑을 열어도 막걸리가 가득 들어 있었다. 바닥에도 늘 막걸리 수십 병이 놓여 있었다. 지금껏 이 가게에서 막걸리를 적잖이 마셨다. 어떤 날 친구와 함께 가게 문이 닫힌 뒤까지 불 꺼진 평상에서 막걸리를 마신 적이 있다.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진지하게 주고받았는데 그 모습을 누가 본 모양이었다. 그 뒤로 한동안 우스갯소리에 가까운 소문이 나돌았다. 깜깜한 밤에 사내 둘이 가게 앞에 앉아 속닥거리며 연애를 하더라는 소문이었다.
이런 것들 가운데 지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우리 마을 어귀에 있는 구멍가게다. 우리 가족이 강원도 원주의 이곳 산마을로 들어온 지 열두 해가 넘었다. 그동안 이 가게는 날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문을 열었다. 가게 아주머니는 마을 여자들이 봄가을에 가는 여행을 모두 걸렀고, 이장 선거 때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지 않고 가게를 지켰다. 개미 한 마리 나다니지 않는 찜통더위에도 가게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엄동설한에 폭설이 무릎 높이로 내려도 가게 난로 굴뚝은 연기를 퐁퐁 뿜어냈다.
이 가게에서 가장 잘 팔리는 품목은 과자와 아이스크림 같은 주전부리였다. 라면과 음료수도 인기 품목 상위권에 들었고, 목장갑과 화장지와 부탄가스도 크게 유행을 타지 않았다. 이런, 막걸리를 빼먹을 뻔했다. 막걸리가 얼마나 많이 팔리던지, 가게 안쪽 김치 냉장고엔 언제 뚜껑을 열어도 막걸리가 가득 들어 있었다. 바닥에도 늘 막걸리 수십 병이 놓여 있었다. 지금껏 이 가게에서 막걸리를 적잖이 마셨다. 어떤 날 친구와 함께 가게 문이 닫힌 뒤까지 불 꺼진 평상에서 막걸리를 마신 적이 있다.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진지하게 주고받았는데 그 모습을 누가 본 모양이었다. 그 뒤로 한동안 우스갯소리에 가까운 소문이 나돌았다. 깜깜한 밤에 사내 둘이 가게 앞에 앉아 속닥거리며 연애를 하더라는 소문이었다.
![[ESSAY] 구멍가게가 있어 참 좋다](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605/03/2016050303370_1.jpg)
갈수록 시골에 사람이 줄어들어 문제라고 그러는데, 가게에서 저녁 한때를 보내노라면 그 말이 진짜인지 의심하게 된다. 몇 시간 사이에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가게를 다녀간다. 꼭 그날 저녁때 사지 않아도 되고, 꼭 지금 먹지 않아도 될 물건을 사는 이가 많다. 나이 지긋한 분들이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고 가게 앞 의자에 줄지어 앉는다. 어떤 이는 두 발을 번갈아 흔들며 어린아이처럼 맛있게 과자를 먹는다. 이를테면 이들에게 가게는 그날 논밭 일을 마치고 저녁바람을 쐬며 쉬었다 가는 놀이터이자 사랑방이다. 이따금 평상에서 술을 마시던 이들이 목소리를 높여 다투면, 아주머니 한 분이 입에 물었던 아이스크림을 쏙 빼며 외친다. 싸우지들 말어. 그 좋은 술을 마시면서 왜들 그려? 그러면 금세 다투는 소리가 사라진다. 저마다 먹는 음식 종류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어린이가 어른을 야단치는 격이다.
이 가게는 마을 사람들이 자주 들르는 곳이기에 그날그날 마을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알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 마을 이장은 아무리 바빠도 저녁때 한 번은 가게에 들른다. 늘 목마름과 배고픔을 달래주는 주막이면서 택배 물건을 대신 부쳐주는 택배 중개소, 이장과 반장들이 동네 문제를 푸는 회의장인 이 가게가 이따금 처음부터 없었더라면 좋았겠다고 여기게 만드는 곳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언제던가 밖에서 일을 보고 급한 원고를 마무리하러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가게를 막 지나치려는데 평상에서 마을 친구 하나가 뛰쳐나와 두 팔을 벌리며 내 차를 막아섰다. 한잔 마시고 가. 안 돼, 집에 일이 있어. 집에 일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그래? 안 된다니까. 정말 이럴래? 결국 차에서 내려 술잔을 받는 바람에 이튿날 잡지사에서 걸려온 전화로 싫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날 꼭 받아야 할 물건을 택배사 직원이 한밤에 가게에 맡겨놓고 갔을 때도 그랬고, 가게에서 나에 관한 엉뚱한 말이 만들어져 널리 퍼져 나갔을 때도 가게를 원망했다. 그러나 이 가게만큼 우리 마을에서 중요한 집이 없기에 이런 원망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 가게는 마을 사람들이 자주 들르는 곳이기에 그날그날 마을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알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 마을 이장은 아무리 바빠도 저녁때 한 번은 가게에 들른다. 늘 목마름과 배고픔을 달래주는 주막이면서 택배 물건을 대신 부쳐주는 택배 중개소, 이장과 반장들이 동네 문제를 푸는 회의장인 이 가게가 이따금 처음부터 없었더라면 좋았겠다고 여기게 만드는 곳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언제던가 밖에서 일을 보고 급한 원고를 마무리하러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가게를 막 지나치려는데 평상에서 마을 친구 하나가 뛰쳐나와 두 팔을 벌리며 내 차를 막아섰다. 한잔 마시고 가. 안 돼, 집에 일이 있어. 집에 일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그래? 안 된다니까. 정말 이럴래? 결국 차에서 내려 술잔을 받는 바람에 이튿날 잡지사에서 걸려온 전화로 싫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날 꼭 받아야 할 물건을 택배사 직원이 한밤에 가게에 맡겨놓고 갔을 때도 그랬고, 가게에서 나에 관한 엉뚱한 말이 만들어져 널리 퍼져 나갔을 때도 가게를 원망했다. 그러나 이 가게만큼 우리 마을에서 중요한 집이 없기에 이런 원망은 오래가지 못했다.
올 초에 가게가 문을 닫았다. 주인아주머니가 무릎이 좋지 않아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아들 집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