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맹활약하는 배우는 정치인… 친절하고 서민적으로 演技 변신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부조리극, 불신과 거품으로 진심 안 보여
총선은 국민이 심사하는 오디션… 빈 수레만 요란하면 탈락 1순위
![박돈규 여론독자부 차장 사진](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604/11/2016041102740_0.jpg)
"날씨가 흐릴 때는 밝게 연기하고 화창한 날에는 어둡게 연기하라"는 말이 있다. 일본 전통극 노(能)가 전하는 최고 연기술 중 하나다. "배우는 극장 밖과 정반대로 가야 관객이 이야기에 더 빠져들 수 있다"는 논리다.
요즘 눈에 띄는 배우는 극장이 아니라 시장통과 건널목에 있다. 4년마다 돌아와 엽기 드라마를 펼치는 정치인들이다. 이들의 연기술은 사뭇 다르다. 일단 국회 안과 밖을 차별화해 정반대로 가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길에서 만날 때 겸손하고 친절하고 따뜻하다. 웃으며 먼저 손을 내밀고 머리 조아리고 때로는 업어주기까지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천으로 보복하고 '옥새' 들고 튀고 비례대표 명단을 뒤집던 그들이 맞나 싶다.
총선은 오디션과 닮았다. 국회라는 무대에 오를 사람을 국민이 심사한다. 우리가 'K팝스타'의 양현석·유희열·박진영이 되어 국회의원 후보를 품평하는 셈이다. 후보들은 너나없이 죽기 살기로 임한다. 우선 떨어뜨릴 사람을 가려내다 보면 마지막에 승자가 남을 것이다.
국민을 책임지겠다는 그들의 말과 행동을 보며 정치라는 진부하고 우스꽝스러운 극장을 경험한다. 선심성 공약으로 경쟁하고 '반성+사과+구걸' 3종 세트도 빼놓지 않는다. 4년 전에도 그랬다. 뽑아주었더니 '역대 최악 국회'라는 오물만 뿌려놓지 않았나. 다 떨어뜨릴 수는 없으니 괴롭다. 심사 자체가 부조리한 상황이다.
서울 산울림소극장에 가면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를 볼 수 있다. 부랑자 에스트라공(박상종)이 구두를 벗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장면으로 출발하는 이 연극에서 고도는 끝내 등장하지 않는다. 끝없는 기다림, 되감기(rewind)라도 누른 듯 반복되는 대사로 꽉 찬 부조리극이다. 배우 박상종에게 구두 벗는 장면을 어떻게 연기하는지 물었더니 "한 손으로는 벗기려고 하고 다른 손으로는 안 벗겨지게 붙잡아야 해서 체력 소모가 엄청나다. 그 연기 자체가 부조리"라고 했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604/11/2016041102740_1.jpg)
그 바람 소리를 다른 말로 바꾸면 진심이다. 정치판에서는 왜 이토록 진심을 보기 어려울까. 대학 시절 언어학 시간에 배운 '원조진짜순참기름집'의 사연이 떠오른다. 그냥 참기름집이라고 하면 안 믿으니까 '순'을 붙인 게 시작이다. 다시 외면하니 '진짜'를 덧대고, 또 위기가 닥치자 '원조' 타령이다. 불신이 말[言]에 거품을 부르고 값어치 하락을 자초하는 악순환이다. 포장하고 화장하고 성형할수록 더 믿기 어려워진다. 정치판의 불신과 거품은 정치인들 잘못이 크지만 유권자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누군가 그냥 후보 말고 '원조진짜순후보'를 표방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되고 말았다.
연기론 교양서적에는 '오버액션(overaction)'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배우가 동작은 큰데 실어 나르는 감정이 작을 때 듣게 되는 말이다. 좋은 연기는 들뜨고 과장된 오버액션과는 정반대다. 억누르고 절제해서 밀도가 훨씬 높다. 결과적으로 관객은 훨씬 큰 감정을 전달받게 된다.
정치인의 오버액션은 눈에서 진물이 나게 보아왔다. 빈 수레 위에서 연기하니 더 요란하다. 누가 목청을 돋우는지 눈 크게 뜨고 귀 활짝 열고 가늠해야 한다. 동작은 크고 시끄러운데 공약은 허황되거나 변변찮은 후보라면 탈락 1순위다. 그들이 가슴에 금배지를 다는 순간 얼마나 빨리 뻣뻣해지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이번엔 심사위원으로서 그들에게 복수할 차례다.
남의 고통을 보고 기쁨을 느낄 때가 있다. 타이거 우즈는 골프에서 큰 성공을 거뒀고 아름다운 아내와 더불어 완벽해 보이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혼외정사에 중독된 인간이었다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