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익법인도 사업 줄여… 누가 '천사의 날개' 꺾나
입력 : 2016.04.04 03:43 | 수정 : 2016.04.04 03:44
['40년 규제' 묶인 공익법인] [上]
- 공익법인 11년만에 처음으로 감소
채권투자 땐 관청에 '각서' 제출해야
이자수입으론 사무실 운영도 힘들어… 활동중단 '깡통법인' 대거 나올 수도
충남 서산시의 서산인재육성재단은 지난해 장학생 수를 80명에서 60명으로 25% 줄였다. 5년 전만 해도 연간 2억원을 넘던 재단의 이자 수입이 지난해 1억1000만원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재단은 장학금뿐 아니라 각종 경비를 줄이는 긴축 운영에 들어갔다. 이 재단 관계자는 "연간 수입의 70% 이상은 재단 설립 취지에 맞춰 장학 사업에 써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재단 운영비로 3000만원밖에 쓸 수 없는 상황"이라며 "직원 한 명 봉급 주고, 사무실 한 칸 임차료 내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무실 운영도 힘든 공익 재단 속출
공익 법인에 몰아친 초(超)저금리 쇼크는 재단 유지마저 어렵게 만들고 있다. 사업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이자 수입이 급감하자 공익 활동 자체를 중단한 곳도 나오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 2002년(1만987개)부터 2013년(2만9849개)까지 매년 증가세를 보였던 공익 법인 수가 2014년에는 전년도보다 117개가 줄어 11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 황창순 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012년에 금리가 처음으로 2%대로 떨어진 여파가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라며 "이자난에 허덕이다가 문을 닫는 공익 법인 수가 앞으로 폭증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 2008년에 재산 10억원으로 전북 김제 심산장학재단을 세운 이교성(77) 이사장은 정기예금으로 나오는 이자 수익이 급감하자 올해 초 23억원에 달하는 부동산 건물을 추가로 출연했다. 이교성 이사장은 "돈 몇십만원이 없어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학생들을 생각해 장학금 지급을 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기존 장학 사업을 계속하려면 아직도 수십억원 기금이 필요한데, 이젠 더 낼 재산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이 출연해 기금 규모가 큰 공익 법인도 예외는 아니다. 동원그룹이 출연한 동원육영재단은 법규에 따라 재산을 정기예금에 주로 맡기고 거기서 나오는 이자로 사회 공헌 활동을 해왔다. 그런데 정기예금 금리가 떨어지면서 수익률도 함께 추락했다. 현금성 자산은 2009년 125억원에서 2014년 136억원으로 11억원 늘어났는데도 이자 수익은 7억6580만원에서 3억6802만원으로 반 이상 줄었다. 최순옥 동원재단 차장은 "2007년엔 대학 한 곳당 10명씩 장학금을 지급했는데, 지금은 5~6명밖에 못 준다"고 말했다.
◇공익 법인들 "원금 쓸 수 있게 해달라"
공익 법인들이 수십억~수백억원을 쌓아두고도 이를 공익 사업에 쓰지 못하는 것은 엄격한 법 규정 때문이다. 40년 전에 만들어진 공익법인법에 따라 법인들은 원금(기본 재산)에는 손을 댈 수 없고 기본 재산을 굴려 나온 수익(보통 재산)으로만 공익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게다가 위험이 따르는 투자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주무 관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불허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채권 등에 투자하려고 주무 관청을 찾아가면 '손실이 일어나면 (자산을) 원상복구하겠다'는 각서를 요구하는 일이 허다하다.
공익 법인 관계자들은 "저금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공익 사업을 계속하려면 원금(기본 재산) 일부를 쓸 수 있도록 법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영암장학회를 10년간 운영했다가 지난해 해산한 권오범(72)씨는 "장학금 10만원이 없어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학생들의 장학금을 잘라야 한다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며 "돈(출연 기금)이 버젓이 남아 있으나 장학금을 주지 못하는 상황인데도 정부는 현행 규정을 고집하고 있다"고 했다.
19대 국회에서
공익 법인이 기본 재산의 10%를 자유롭게 공익 사업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공익법인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아직 법사위를 통과하지 못해 자동 폐기될 상황에 처했다. 김석은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가 운영난으로 허덕이는 공익 법인에 대한 지원을 늘려줄 게 아니라면 규제를 풀어 공익 법인이 제대로 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숨통을 터줘야 한다"고 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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