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경비 절감 차원에서 내놓은 소규모 학교 통폐합 계획이 또다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종전에 60명 이하의 학교를 통폐합하던 것을 변경해 읍 지역에는 초등학교 120명, 중등학교 180명 이하로 기준을 높였다. 도시 지역에서는 초등학교 240명, 중등학교 300명 이하로 정했다. 전국의 1만1500여개 학교 중에서 1700여개교가 그 대상이다. 교육부는 강제성은 없다고 하지만 지방교육청에 통폐합 학교당 110억씩 지원금을 주겠다고 한다. 늘 재정 압박을 받는 지방으로서는 포기할 수 없는 차등 지원이다. 강원도와 영·호남 지방만의 얘기가 아니다. 인구가 계속 느는 경기도에서도 200개가 넘는 학교가 대상이 된다.
얼마 전 지방자치 선진국 스위스의 레겐스베르크를 찾았다. 주민 수가 487명인 작은 동네 단체장 초청으로 주민총회를 참관했다. 총회에서 학교 신축을 위해 올해 세금을 인상하자는 안건이 찬성 처리됐다. 시장과 마을 주민을 만나는 뒤풀이 자리에서 이 마을이 학교를 어떻게 운영하는지 물었다. 학령인구는 41명인데 그중 초등학생 17명은 레겐스베르크 교육청이 운영하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나머지는 인근 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중등학교에 다닌다고 했다. "학생 17명을 위해 초등학교를 운영하는 것이 주민들에게 큰 부담이다.이미 많은 세금을 내왔는데도 올해 주민총회에서 학교 유지를 위해 세금 인상을 결정했다. 이웃 지방자치단체에 교육을 위탁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학교가 없어지면 젊은이들이 떠날 것이고 마을은 유지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나중에 취리히가 발표한 통계자료에서 레겐스베르크 초등학교가 이 지역 최고의 학교로 평가받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학교가 좋지 않으면 주민들이 마을을 떠난다. 학교가 폐지되면 남아 있는 주민도 떠난다. 그래서 시장·군수는 주민과 함께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걸려고 한다. 하지만 교육 발전을 위해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지방교육자치가 광역시·도 단위로만 실시되고 기초자치단체는 교육에 관한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주민끼리 의논해 자녀 교육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 교육 자치의 본질이다. 주민들의 관심은 자녀가 다니는 시·군·구의 학교에 있다. 경기도 교육청이 도내 모든 지역에 맞는 결정을 하려다 보니 부천에도 맞지 않고 가평에도 맞지 않는 어정쩡한 결정을 하게 되고 주민들의 실생활과는 유리된다. 학교는 관료적인 관리와 통제의 대상이 되어 획일화된다. 교육은 현장성이 없고 활력도 잃는다. 풀뿌리 교육이 죽고 사교육이 팽창하는 이유다.
주민들은 자기 동네 교육 문제를 자기 책임하에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 통폐합과 같은 풀뿌리 교육 문제는 시·군·구의 주민이 기초단체 정치인들과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생활 문제를
실생활과 유리된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에서 결정하니 현장에도 맞지 않고, 주민 지지도 받지 못한다. 선진국에서는 예외 없이 지방 교육 자치를 풀뿌리 자치단체에서 실시한다. 우리도 5·16 전에는 그랬다. 지금이라도 지방 교육 문제를 시·군·구에 맡겨야 한다. 그래야 주민의 관심과 활력을 공교육으로 끌어들여 학교를 살릴 수 있고 사교육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