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윤평중 칼럼] 당신은 나라의 주인입니까?

최만섭 2016. 4. 1. 11:30
[윤평중 칼럼] 당신은 나라의 주인입니까?
  •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입력 : 2016.04.01 03:17

총체적 환멸 부른 공천 과정… 국민을 卒로 보는 無道한 행태
공복이 상전돼 국민 부려먹어 그 또한 유권자 선택의 결과
대한민국 주인인 국민 자신이 투표 통해 바른 길 세워야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코앞입니다. 하지만 당최 열기가 느껴지질 않네요. 먹고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웬 선거 타령이냐고요? 선거를 앞두고 항상 이 당(黨) 저 당 사탕발림 공약을 내걸지만 결국 공수표(空手票)로 끝났다고요? 정치인이란 원래 '민나 도로보데스'(모두가 도둑놈) 아니냐고요? 모두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총선 때마다 대대적 물갈이가 이루어졌건만 최악의 국회라는 뒷말이 끊이질 않았지요. 이 당이나 저 당이나 국민을 섬기는 '진실한' 정치인은 멸종(滅種) 상태인 데 반해 권력을 경배(敬拜)하는 정치 모리배(謀利輩)만 득실거립니다.

*민나 도로보 데스이 말은 약 30 년 전 드라마, 주간지 연속물 소재로 많이 쓰여지던 몽땅 도둑놈이란 뜻의 일본 말이다.

파당끼리 물고 뜯는 정치권의 꼬락서니가 하도 한심해 차라리 관심을 끊으시겠다고요? 나 하나야 어찌 하든 세상은 변하지 않으니 투표를 건너뛴 채 봄맞이 가는 것도 일종의 의사 표시라고요? 불참이나 기권도 당연한 시민적 권리라고요? 오죽했으면 당신이 그렇게 반응하시는지 공감하고도 남습니다. 백년하청(百年河淸)인 정치권의 원죄 탓이 정말 큽니다. 당신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  백년하청(百年河淸) : 황하가 늘 흐려 맑을 때가 없다는 뜻. 아무리 오래되어도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 어려움.

 
몇 년마다 열리는 선거 자체가 정치권이 각본을 짜놓은 연극에 국민이 들러리 서는 '정치 쇼'가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듭니다. 임시 공휴일인 투표일에도 생계 때문에 삶의 현장을 비우기 어려운 이가 적지 않은 터에 투표 행위는 배부른 이들의 정치 놀음에 불과하다는 냉소주의가 제기될 수도 있겠네요. 선거라는 미지근한 미봉책 대신 세상을 화끈하게 단칼에 바꿔야 한다고 확신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정치에 대한 전면적 무관심과 총체적 환멸에는 충분히 그럴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정치가 계속 나빠지고 있다는 세간의 속설에 동의하신다면 당신은 그 진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난잡하기 짝이 없는 현실 정치의 퇴행이 여야 정치인들의 무능과 탐욕, 부패와 독선에서만 비롯되는 것입니까? 불통(不通)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독주(獨走)만이 국정 파행을 불러오는 주범(主犯)일까요? 지역주의와 승자 독식을 제도화한 소선거구제에 기생(寄生)하고 있는 거대 정당들의 패권주의가 온갖 정치적 문제의 근원인가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선거 제도와 지역주의의 경로 의존성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모든 정치적 문제를 용인함으로써 정치인들의 횡포를 부추긴 장본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야를 막론하고 참람(僭濫)·무도(無道)해 악랄하기 그지없던 공천 과정이 증명한 게 하나 있습니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국민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국민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졸(卒)로 보고 있습니다. '정당한 폭력을 독점한 국가'의 중대 업무를 대신 맡은 정치인들이 소명인 책임 윤리를 스스로 내팽개치면서 국가적 위기를 키우는 형국입니다. 공복(公僕·public servant)이 오히려 상전이 되어 국민을 부려먹고 있는 셈입니다. 정치인들이 조선조 당쟁 같은 패거리 싸움으로 나라를 위태롭게 만드는 걸 우리는 그냥 내버려두고 있습니다.

*참람濫-참람하다(분수넘쳐 너무 지나치다)’의 어근.
  • 주제넘을 참
  • 넘칠 람(남), 동이 함
  • (하는 짓이)분수()에 지나침 

지역주의와 결합한 소선거구제의 모습도 비슷합니다. 영남·호남·충청의 지역주의는 각자 한국 현대사 특유의 상이한 역사적 맥락이 있습니다. 그러나 각 지역에서 특정 정당의 '일당독재'가 오래 지속되는 것은 전혀 정상이 아닙니다. 비민주적으로 위에서 내리꽂은 인물이 특정 정당 후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선량(選良)으로 뽑히는 현실도 결국은 유권자가 선택한 결과입니다. 해당 지역 시민들은 진정으로 자유로운 정치적 주체로서 그렇게 선택한 것인지 장담할 수 있습니까? 시대착오적인 지역주의의 피해자이면서도 지역감정을 내면화해 온존(溫存)시키면서 정치 기득권자들을 돕는 장본인이 바로 우리 자신 아닌가요?

*선량(選良)-1 . 뛰어난 인물을 뽑음. 또는 그렇게 뽑힌 인물.
               2 . <법률> 국회 의원’을 달리 이르는 .
온존(溫存)-
1 . 소중하게 보존함.
    2 . 좋지 못한 고치지 아니하고 그대로 .

    하지만 한국 시민들은 결코 무력(無力)하지 않습니다. 역사가 증명합니다. 대의민주제를 통타(痛打)한 루소(J J Rousseau·1712~1778)는 '선거하는 동안에만 시민이 자유롭다'고 했지만 그건 거대한 착각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자유를 세우는 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자유의 길은 투표에서 시작합니다. 성찰하면서 참여하고 고뇌하면서 행동해야 비로소 자유의 지평이 열립니다. 모든 큰 것은 작은 실천이 모여 이루어집니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4월 13일이 우리 모두에게 통절히 묻습니다. 당신은 정말 나라의 주인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