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기고] 책의 날, 세르반테스는 살아 있다

최만섭 2016. 3. 30. 11:55
[기고] 책의 날, 세르반테스는 살아 있다
  • 박희권 스페인 주재 대사-입력 : 2016.03.30 03:00

박희권 스페인 주재 대사
박희권 스페인 주재 대사
"주인공이 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작품 속 인간의 삶과 고뇌가 스페인 사람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놀랐어요."

깊은 밤 마드리드 한국문화원에서 열리는 한국문학동호회. 회원들은 매달 두 차례 한국 작가의 책을 읽고 저마다 감상을 주고받으며 진지한 토론을 이어간다. 한국과 스페인은 유라시아 대륙 양 끝에 있는 먼 나라이지만, 이들은 문학과 책을 통해 시간의 흐름도 공간적 제약도 뛰어넘었다. 성별, 연령, 직업이 다른 스페인 사람들이 한국 문학을 읽고 토론하는 모습을 보며 점점 책에서 멀어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떠올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5 국민 독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교과서·수험서·잡지·만화를 제외하고 1년 동안 책을 한 권 이상 읽은 성인이 전체의 65.3%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가 시작된 1994년 이래 최저 수준이다. 오늘날 우리를 책에서 멀어지게 하는 요인은 너무도 많다. 무엇보다 텔레비전, 컴퓨터, 모바일 기기의 잇따른 등장으로 종이 읽기에서 화면 읽기로 정보 습득 방식이 바뀐 탓이 크다. 그러나 같은 '읽기'라 할지라도 종이와 화면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화면 읽기는 즉각적이고 단편적인 정보 습득이 주가 되는 반면, 생각의 흐름과 서사가 담긴 책 읽기는 독자를 깊이 있는 사고로 이끈다. 따라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책 읽기는 지식정보혁명의 시대에도 영원할 것이다.

국제화 시대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창의력과 상상력이라는 무형의 자산이다. 과거 'Just do it(일단 해 봐)'이 우리의 사고를 지배했다면, 이제는 'Just think about it(먼저 생각해 봐)'이 우선시되는 시대다. 속도보다는 방향이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다소 느리더라도 곱씹으며 사유하는 습관을 키우는 데 책 읽기만 한 게 없다.

4월 23일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책의 날'이다. 책을 사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하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축제일 '성(聖) 조지의 날'에서 유래했다. 이날은 스페인과 영국의 대문호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가 사망한 날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스페인에서는 책의 날을 매우 의미 있는 날로 기념한다. 전국에서 크고 작은 도서 행사가 열리고, 책의 날 주간에만 100만 권 넘는 책이 판매된다. 특히 올해는 세르반테스 타계 400주년을 맞아 관련 행사가 풍성하게 열리고 있다.

세르반테스 작품의 백미는 역시 '돈키호테'다. 도스토옙스키는 '돈키호테야말로 인간의 사고에 대한 가장 위대한 표현'이라 평했고, 무라카미 하루키, 살만 루슈디 등 현대 작가들 또한 열렬한 팬으로 알려져 있다. '돈키호테'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회화, 공연, 영상 등 시각예술로 가장 많이 옮겨진 문학작품 중 하나다. 한동안 책을 멀리해서 원작을 바로 대하기가 부담스럽다면 영화나 뮤지컬에서 시작해 책으로 옮겨가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지금까지 제작된 영화만도 300편이 넘는다. 따라서 오늘날과 같은 영상시대에도 잘 맞는 작품이다. 올해 책의 날에는 영원한 생명을 지닌 고전 한 권과 함께 장미 한 송이를 연인에게 선물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