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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프랑스의 심장과 같다. 그 심장의 중심에 책이 있다." 오드레 아줄래 프랑스 문화장관의 말은 듣는 이의 심장을 명료하게 흔들었다. 파리의 베르사유 전시장에서 지난 17일부터 20일까지 열린 파리도서전은 한마디로 '
여기가 지구의 문화 심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책과 문화의 열기로 뜨거웠다.
한·불 수교 130주년을 맞아 주빈국으로 초대된 한국관은 전시장 한가운데 '새로운 지평: K북' 이라는 슬로건 아래 붉은 나선형 조형물을 세련되게 장식했고, 그 위로 한국 작가들의 얼굴을 크게 내걸었다. 한국문학번역원과 프랑스 담당자가 상당 기간 고심해서 초대한 작가 15명과 전자 출판, 만화, 아동, 웹툰 등 각 분야 작가가 현장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들을 만났다.
시인의 경우 '시는 폭력에 맞서는 최후의 방패인가'라는 주제로 시 낭송과 토론을 했고, 소설가들은 '나는 우리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라는 주제로 토론했는데, 세계적인 언어학자이자 비평가인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한국 작가와 나란히 무대에 앉아 수많은 청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공쿠르상을 받은 시인 샤를르 줄리에는 한국 시인들과 대화를 나눴고,
'악은 왜 존재하는가'라는 제목으로 극작가 베네딕트 칸토어가 한국 작가와 함께 토론회를 했다. 이 행사들에 이어 열린 한국 작가 사인회에서 늘어선 긴 줄은 최근 유럽에서 한껏 높아진 우리 출판물에 대한 관심을 반영했다. 시민들의 관심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날 오페라 부근 문방구점에서 빨간 뿔이 달린 종이 칼 하나를 고른 후 지폐를 내밀자 점원이 지나치리만큼 꼼꼼히 위조 여부를 확인했다. 나는 참다못해 "
그 지폐는 프랑스 출판사에서 인세로 받은 돈이다"고 말했더니 "
아, 파리도서전에 온 작가시군요"라고 반색을 했다.
이번 도서전에서 한국 작가들은 세계 문학의 빗장 하나를 사뿐히 잘 풀었다. 발랄한 한국 문학의 나침반을 세계로 향하게 한 본격적인 신호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말하자면 이제 시작인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에 크게 느낀 점이 있다면
한국 작가들 스스로도 예전과 다른 자신감으로 넘쳐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K북 세계화를 위해 풀어야 할 숙제도 확인했다.도서전 폐막 다음날 마종기 시인과 내가 노르망디에 있는 에브뢰도서관 초대를 받아 그곳으로 갔을 때였다.
전쟁 때 간신히 폭격을 면한 아름다운 성당 옆 도서관에서 밤늦도록 시 낭송과 북 토크를 하는데 끝까지 진지하게 듣고 질문하는 프랑스인의 몸에 밴 깊은 문학 사랑에 부러움이 일었다. 주빈국관 개막식 축사에서 베라 미샬스키 호프만 도서전 조직위원장이 "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문화를 사랑하
고 책을 많이 읽는 나라"라고 한껏 치켜세웠을 때는 한국인의 낮은 독서율이 떠올라 속으로 뜨끔했다. 궁전보다 아름다운 파리시청의 리셉션을 시작으로 올랑드 대통령의 방문으로 절정을 이룬 도서전 전야제를 보며 책과 문화를 향한 프랑스의 열정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도서전을 찾은 프랑스 관람객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책 사랑 열기를 귀국 비행기에 가져오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