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노조

취준생들 "勞組가 내 일자리 뺏은 것 아니냐"

최만섭 2016. 3. 29. 16:58

취준생들 "勞組가 내 일자리 뺏은 것 아니냐"

[민노총의 고용세습 주도에 분노]

- 2769개 사업장 단협 조사해보니
29%가 '유일교섭' 위법조항 둬… 368곳은 인사·경영권 개입
33%가 신기술 때 노조동의 요구

정년퇴직자가 요청하면 회사의 공개 채용에서도 그 직계가족을 우선 채용토록 하는 노사 단체협약의 그릇된 관행이 고용노동부가 28일 발표한 '단체협약 실태조사'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현행 고용정책기본법에는 '근로자를 모집·채용할 때 성별, 신분 등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돼 있지만, 노사의 야합으로 불법적인 행위가 묵인돼 온 셈이다. 고용 세습 조항을 비롯해, 다른 노조가 사측과 교섭하는 것을 막는 '유일교섭단체' 조항, 사측의 노조 운영비 지원 등을 포함할 경우 단체협약의 절반가량(47%)이 위법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민주노총 사업장과 1000명 이상 근로자를 둔 대기업일수록 불법 고용 세습을 단협에 명기한 경우가 더 많았다. 특히 국내 30대 기업 중 고용 세습 조항이 확인된 곳은 현대·기아차, 르노삼성, SK이노베이션, 현대제철, 한국GM, 대우조선해양, LG유플러스, 현대오일뱅크, S-Oil, 대한항공(조종사 노조) 등 10곳으로 이 중 8곳이 민주노총을 상급단체로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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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중견기업에 비해 대기업 노조가 '기득권 지키기'에 더 적극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300인 이상 사업장 1047곳 중 고용 세습 조항이 확인된 곳은 343곳(32.7%)으로, 300인 미만 사업장(20.4%·1722곳 중 351곳)보다 12%포인트가량 높았다.

이 같은 조사 결과가 알려지자, 취업 준비생들과 청년 단체들은 허탈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취업이 되지 않아 대학 졸업을 유예하고 추가 학기를 다니고 있는 박모(25·중앙대)씨는 "대기업일수록 인사 시스템도 더 선진적이라 공정하게 채용할 줄 알았는데 완전히 속은 기분"이라며 "임직원 자녀와 노조 조합원들이 서로의 자녀들을 특혜 채용하는 상황에서 공들여 취업 준비를 하는 게 멍청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조승수 청년이여는세상 대표는 "노조는 늘 노동자를 약자로 규정해왔지만 이번 실태조사는 노조 조합원들이 정작 좋은 일자리를 자녀에게 물려주는 '금수저 물리기'를 해온 사실이 드러난 셈"이라며 "노조와 대기업들이 비난 여론이 일 때는 고개를 숙였다가 여론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기만 할 뿐 사실상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기술 도입·조합원 징계도 "노조 동의 받아라"

이번 실태조사에서는 2769개 사업장 중 368곳에서 노조의 인사 경영권 개입 조항이 확인됐다. 노조 간부나 조합원의 배치 전환 시 노조의 동의를 요구하는 경우가 232곳(63%)으로 가장 많았고, 기업의 분할·합병이나 신기술 도입에도 노조 동의를 요구한 곳도 123개(33.4%)에 달했다.
조합원 징계 해고 시 노조 동의를 필요로 하거나(52개·14.1%) 하도급 시에도 노조의 동의를 요구한 조항(92개·25%)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신규 채용 시 노조의 동의를 요구하는 조항(5개)도 확인됐다. 이 역시 민노총 사업장(조사 대상의 18.8%)과 근로자 1000명 이상인 대기업 사업장(17.5%)이 가장 많았다.

이날 고용부의 단체협약 실태조사 발표에 대해 양대 노총은 "정치적인 노조 때리기"라고 반발했다. 민노총은 "이미 실효성이 없거나 수정 중인 단체협약을 억지로 동원해 적법한 단체협약을 불합리한 것인 양 왜곡하는 대표적인 거짓 선동"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업무상 재해를 입은 근로자의 자녀를 우선·특별 채용하는 조항에 대해선 "고용 세습이 아닌 근로자의 복지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법원은 지난 2013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 쳐 이 조항에 대해 "고용 세습으로 귀족 노동자를 출현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무효라고 판결했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약자나 공헌자를 위한 국가유공자 자녀 우대 등 각종 가산점 제도와 달리 정규직·대기업 노조의 특별 채용은 결국 좋은 일자리를 본인이 누리고 그것을 다시 대물림한다는 점에서 사회통념상 결코 용인할 수 없는 행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