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제도

"토익 475점이던 사람… 영어소설만 213시간 읽어도 180점 올라"

최만섭 2016. 3. 7. 11:00

"토익 475점이던 사람… 영어소설만 213시간 읽어도 180점 올라"

[창간 96 특집/읽기 혁명]
'읽기 혁명' 저자 스티븐 크라센 美 교수… "독서는 외국어 배우는 유일한 방법"

"책 많이 읽지 않는 한국 학생들, 시험에 나올 단어들만 외워
PISA에서 읽기 성적 높게 받아… 흥미로운 현상이지만 정상 아니야
소설을 시간 낭비라 여기지만 공감력·어휘력 높이는 좋은 방법"

"저는 책 읽는 기계라고 알려질 만큼 미친 듯 독서했습니다." ㅡ엘빈 토플러

"독서는 외국어를 배우는 최상의 방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유일한 방법입니다."

스티븐 크라센(Stephen Krashen)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석좌교수는 4일 본지 이메일 인터뷰에서 "영어로 된 책을 많이 읽을수록 영어 단어와 문법을 잘 아는 것은 물론 토익·토플 점수도 높게 나온다"고 말했다. 크라센 교수는 제2 언어 습득 이론 및 미국 이민자 학생을 위한 영어 교수법의 창안자로, 그의 저서 '읽기 혁명'(The Power of Reading·2004)은 교사와 언어학자들의 언어 교수 방법을 바꾼 영향력 있는 권위서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책을 즐겁게 읽으면 외국어 능력이 향상된다는 주장에 반신반의하는 한국 부모들에게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했다.

스티븐 크라센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가 지난 2012년 홍콩 중국국제학교에서 독서와 언어 발달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스티븐 크라센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가 지난 2012년 홍콩 중국국제학교에서 독서와 언어 발달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크라센 교수는 본지 인터뷰에서“영어를 못하는 외국인도 하루 한 시간 영어책을 읽을 때마다 토익 점수가 0.62점씩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유튜브 캡처
크라센 교수와 일본 학자인 베니코 메이슨은 지난해 11월 외국인이 영어로 된 책을 한 시간 읽을 때마다 토익 점수가 0.62점씩 올라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일본에 살면서 영어를 배우는 일본인 7명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토익 점수 705점이었던 오카다씨는 단어 외우기나 듣기 공부를 따로 하지 않고 영어 소설을 127시간 읽자 40점이 올랐고, 토익 점수 475점이었던 다나카씨는 '트와일라잇'과 같은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어로 213시간(하루 1시간씩 7개월 읽은 분량) 읽은 뒤 성적이 180점 올랐다. 크라센 교수는 "토익 점수 250점(990점 만점)인 일본인이 3년간 매일 한 시간씩 영어로 된 책을 즐겁게 읽으면, 전통적인 방식으로 영어 공부를 하지 않고도 950점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두꺼운 문법책을 달달 외고, 영어 듣기 지문을 모조리 받아쓰기하며, 단어 목록을 만들어 외우는 한국 학생들에게 크라센 교수는 "수십 년간 세계 여러 나라 학생을 대상으로 연구했는데, 독서가 토익·토플 등 영어 인증시험 점수를 높이는 최상의 방법이라는 것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독서는 재미있기까지 하지요."

크라센 교수는 "한 언어의 문법·어휘·철자·파닉스(발음) 등 모든 규칙을 하나씩 익혀서 배우기에는 너무 방대하고 복잡하다"고 했다. 어휘를 예로 들면, 미국 성인이 알고 있는 어휘 수는 보통 4만~15만6000개인데, 모든 단어의 뜻과 동의어를 하나씩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뜻풀이를 해주고 간단한 동의어를 가르치는 어휘 지도는 사회적인 의미나 문법적인 속성을 전달하지 못한다"며 "그것은 책을 읽으면서 문맥 속에서 단어의 뜻을 파악할 때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단어를 외우고 부지런히 베껴 쓰고 개인 과외를 받았는데도 영작 실력이 나아지지 않았던 이스라엘 출신 고등학생이 독서에 흥미를 붙인 지 1년 만에 일목요연하고 완벽한 영문 에세이를 써낸 사례도 소개했다. 그는 "선생님이 복잡한 문법 구조를 알려주고 오류를 교정해 주는 '직접 교수'의 효과는 거의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사라진다"고 했다.

한국 학생들이 책을 많이 읽지 않는데도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높은 읽기 성적을 받는 것에 대해 크라센 교수는 "흥미로운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문제를 잘 풀기 위한 전략을 공부하고 시험에 나올 단어 목록을 외워 높은 점수를 받았을 수는 있지만, '정상적인 방법(normal way)'으로 얻어진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발적인 독서가 아니라 시험에 대한 압박으로 많은 양의 책을 읽을 경우, 시험 성적만 올라갈 뿐 학생의 실제 읽기 능력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으려는 학생의 열의가 사라지고, 그러면 앞으로 읽기 능력이 더욱 발달할 가능성이 차단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학생들이 읽고 싶은 책을 직접 고르고(Self-selected), 자발적으로(Voluntary), 즐겁게(Pleasure) 독서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책을 읽은 뒤 독후감을 쓰지 않고, 한 장(章)이 끝날 때마다 퀴즈를 풀지 않으며, 모든 단어의 뜻을 사전에서 찾지 않아도 된다. 만약 내용이 어렵거나 좋아하지 않는 책은 그만 읽고 다른 책으로 넘어가는 것도 포함된다고 했다.

크라센 교수는 "어떤 사람들은 논픽션 책에만 배울 것이 있고, 가벼운 소설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여기기도 하지만, 소설 읽기는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는 능력을 길러줄 뿐 아니라 어휘력을 높이고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