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대로 알자

[기자수첩] 김정은이 아베의 'X맨'

최만섭 2016. 2. 5. 09:10

[기자수첩] 김정은이 아베의 'X맨'

입력 : 2016.02.05 03:00

['아베 전쟁법안' 반대하던 日여론, 김정은 도발 후엔 잠잠]

"평화헌법, 우리손으로 바꿔야" 아베, 北 빌미로 '개헌' 노골화

김수혜 도쿄 특파원
김수혜 도쿄 특파원
3일 평양 주재 외교관들이 과학기술전당에 갔다. 북한이 3년 전에 쏜 은하 3호가 여기 전시돼 있다. 외교관들이 자발적으로 갔는지, 떠밀려서 갔는지는 불분명하다. 노동신문은 외교관들이 위대한 수령님들 영상에 꽃다발을 바치고 북한 과학기술에 경탄했다고 썼다.

이곳에는 은하 3호 말고도 탱크·총·전투기가 전시돼 있다. 김정은이 생각하는 '과학기술'의 정의를 한눈에 보여준다. 그가 미사일 발사를 예고해서 제일 탄력 받는 사람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다. 우선 당장 정권 핵심 각료가 건설업자에게 뇌물 받은 스캔들이 쑥 들어갔다. 야당은 더 따지고 싶어 해도 이미 톱뉴스가 아니다.

평양에서 외교관들이 과학기술전당을 둘러볼 때, 아베 총리는 도쿄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했다. 이어 국회에서 "국민의 안전 확보에 만전을 기하도록 지시했다"고 했다. 24시간도 안 돼 지대공 미사일을 실은 해상자위대 수송함이 히로시마를 출항했고, 같은 날 밤 또 한 대가 움직였다. 북한 미사일이 일본 영공을 지나 필리핀 근해에 떨어지는 그래픽이 주요 신문에 빠짐없이 실렸다.

지난 사흘 총리 관저와 외무성과 방위성은 표 나게 바쁘게 움직였다.

일본 정부는 4일 도쿄와 오키나와에서 지자체를 상대로 긴급사태 발생 시 경보 시스템에 대한 설명회를 열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무슨 일이 터지면 바로) 행정기관과 언론에 정보를 전달하는 동시에, 순간적으로 경보하는 시스템을 활용해 국민에게 알리고 싶다"고 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이 주일 중국 대사, 러시아 대사를 만나 "북한을 자제시켜달라"고 했다. 기하라 세이지(木原誠二) 외무성 부대신이 유엔 안보리 멤버 10개국 중에서 일본 빼고 나머지 9개국의 주일 대사를 외무성으로 불러들여 대책을 논의했다.

나카타니 겐(中谷元) 외무상이 기자들에게 "북한이 국제기구에 일본 난세이(南西) 제도를 날아가는 미사일 발사 계획을 통보했다"고 했다. 방위성 간부들이 막후 브리핑을 통해 이지스함 배치 현황, 레이다 감시 태세를 설명했다. "미사일이 영공에 들어오면 총리 승인을 기다리지 않고 요격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런 와중에 3일 국회에서 극우 매파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이 아베 총리에게 "현실에 맞지 않는 헌법 9조 2항이 입헌주의를 텅 빈 껍데기(空洞化)로 만든다. 총리 생각은 어떠냐"고 물었다.

일본 헌법 9조 1항은 '전쟁을 포기한다'는 내용이고, 9조 2항은 그걸 실천하기 위해 '육·해·공군을 보유하지 않고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평화헌법의 핵심이 여기 다 들어있다.

아베 총리는 "헌법학자 70%가 자위대가 위헌 소지가 있게 만드는 현행 헌법을 (개헌을 통해) 바꿔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평화헌법은) 미 군정 때 만들어졌다. 우리 손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이튿날인 4일도 "헌법에 손가락 하나 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고정지(思考停止)'가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을 해도 일본은 조용했다. 작년 7월 자민당이 중의원에서 안보 관련법을 강행 처리할 때만 해도 일본 국회의사당 앞에 12만명이 모여 "아베, 야메로(그만둬)"를 외쳤다. 그때 일본 지식인 대다수는 "여기까지다. 아베 총리가 한발 더 나아가 개헌까지 추진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이 그걸 바꿔놓도록 도와 주는 중이다.

아베 총리는 작년 여름부터 이미 '집단적 자위권이 왜 필요한가' 설명할 때 '북한 미사일' 얘기를 수시로 예로 들었다. '일본도 보통 국가가 돼야 한다'고 이념적인 얘기를 자꾸 해봤자 일본 국민 마음속에 반감만 일어나니까 차라리 현실적인 위험 요소를 들어야겠다고 판단한 것 같다는 게 당시 일본 정치 전문가들의 분석이었다. 아베 총리가 정확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