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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포커스] 한국형 相生 모델의 싹

최만섭 2016. 1. 13. 10:08

[경제포커스] 한국형 相生 모델의 싹

김홍수 경제부 차장 사진
김홍수 경제부 차장
프랑스 파리 근교 소도시엔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옛 공장 건물이 있다. 므니에(Menier) 초콜릿 공장이다. 세계 최초 철골 구조물이라는 점이 시선을 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요소는 따로 있다. 이곳은 한때 기업 유토피아의 실험장이었다. 제약회사 오너인 에밀 쥐스탱 므니에가 '약'으로 쓰이던 초콜릿을 '과자'로 만들어 대박을 쳤다. 그는 초콜릿 바 판매로 얻은 막대한 수익을 노동자들과 공유하며 낙원을 건설하려 했다. 정원까지 갖춘 침실 2개짜리 사원 주택을 300여채 지어 단돈 1프랑만 받고 노동자들에게 주었고, 무료 탁아소, 무료 학교를 운영했다. 여성 노동자의 가사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마을 식당을 지어 아침식사까지 공짜로 제공했다. 유토피아 실험은 50년가량 지속되다 1차 세계대전 발발로 노동자들이 대거 군인으로 징발되고, 공장 주변이 전쟁 격전지가 되면서 막을 내렸다.

최근 한미약품 임성기 회장이 전 직원한테 1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자기 주식을 나눠준다는 뉴스를 접하고 6년 전 취재했던 므니에 공장이 떠올랐다. 두 사람 모두 제약업체 오너라는 점이 기억의 신경세포를 자극했는지 모르겠다.

유럽에서 므니에의 실험이 있었다면, 대서양 건너편에선 포드의 노사 이익 공유 실험이 있었다. 자동차 왕 포드는 노동자의 이직률이 계속 올라가자 1914년 1월 근로자 일당을 하루 2달러에서 5달러로 전격 인상했다. 포드 공장발(發) 임금 인상 여파로 미국 노동자 전체의 임금이 올라갔고, 한층 커진 구매력 덕에 포드의 'T형 승용차'가 불티나게 팔렸다.

박근혜 정부는 새 노사 상생 모델을 찾겠다고 노사정위원회의 활동에 목을 매 왔다. 노사정위는 지난해 9월 임금피크제 도입, 청년 고용 확대 등을 약속하는 대타협을 이뤘다고 요란을 떨었지만, 기실 숙제를 국회에 떠넘긴 거였다. 하지만 무책임에 관한 한 더 고수인 정치권은 4개월째 관련 법안을 뭉개고 있다. 11일 노사정 대타협은 파국을 맞았다.

포드와 므니에의 실험을 보면 노사 상생 모델은 정부, 정치권이 찾아주는 게 아니라, 개별 기업에서 노사가 지혜를 모아 만들어내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기업마다 형편이 다른데 일률적인 상생 모델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고성장·고수익 업종은 '이익 공유'가, 저성장·저수익 업종은 '고통 분담'이 더 중요하다.

희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은 한국형 상생 모델의 싹이 여기저기서 움트고 있다는 점이다. 하이닉스는 대기업 근로자의 양보를 보여줬다. 지난해 하이닉스 직원들은 임금 인상분을 양보해 하도급업체 근로자들의 임금을 올려주는 '임금 공유제' 모델을 만들어냈다. 고려대 장하성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기업이 내부에 유보하는 수 익 비중을 0.6%포인트 낮추고, 직원들이 임금의 5%만 하도급 중소기업 몫으로 양보하면 중소기업 근로자 임금을 17%나 올려줄 수 있다. 이런 상생 모델이 확산되면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가 줄고, 소비 진작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할 일은 상생 모델을 실행하는 기업과 근로자들에게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