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실험 -2016년 1월 6일

[강천석 칼럼] 중국이 應答할 때

최만섭 2016. 1. 9. 10:22

[강천석 칼럼] 중국이 應答할 때

박근혜 시대 對中 외교 중대 시험대에 섰다
북한에 석유·식량이란 당근 공급하는 중국이 채찍 들어야

강천석 논설고문 사진
강천석 논설고문

북한의 4차 핵실험 뉴스를 듣는 순간 문득 중국 단둥(丹東)시 외곽을 감아 도는 압록강(鴨綠江) 풍경이 떠올랐다. 작년 11월 초순 네온사인 휘황한 단둥을 마주한 강 건너 신의주는 불빛 하나 새 나오지 않는 암흑(暗黑)천지였다. "강바닥에 송유관(送油管)이 깔려있어요. 한때는 한 해 100만 톤(t)까지 보냈다는데 90년대 중반 이후론 50만 톤 안팎을 오르내립니다. 북한 석유 소비량의 5할 이상이지요. 2013년 제3차 핵실험에 대한 제재 조치로 일시 지원을 중단했다는 말이 돌기도 했으나 이곳 원유(原油)를 받아 정유(精油)하는 북한 봉화화학기업소가 그때도 쉬지 않고 가동됐다니 공급 중단 설(說)은 사실이 아닌듯해요…." 30년 가까이 북·중 관계를 지켜본 인사의 설명이 그랬다. 압록강 바닥으론 석유가, 압록강 다리 위로는 식량이 흘러들어간다. 북한 젖줄이고 숨통이다.

북한이 제 입으로 수소폭탄을 실험했다고 떠들어댄 이후 한국 국민은 무력증(無力症)을 앓아왔다. 북한 핵실험을 확인하고 소집한 국가안보회의 자리에서 대통령은 "동북아 안보 지형(地形)을 뒤흔들고 북한 핵 문제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면서 "북한이 상응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말에 안심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국민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죗값을 치르도록 추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훤히 알고 있다. 2006·2009·2013년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마다 우리 대통령들은 북한의 버릇을 고쳐놓겠다고 했으나 증상은 갈수록 악화됐다. 김정은은 신년사에 핵(核)이라는 단어를 쏙 빼놓고 경제와 민생을 강조하더니 며칠 후 핵으로 뒤통수를 쳤다. 상대를 속이는 수법만 교묘해졌다.

국민의 무력감(無力感)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북한 핵을 폐기하고 북한 버릇을 고쳐놓겠다는 동맹국·인접국·국제기구의 의지와 능력에 대한 의심으로 번져가고 있다. 미국은 단독으로 또는 UN을 통해 북한에 대한 제재를 주도해왔다. 중국과 러시아의 동조(同調)를 얻기 위해 제재 수위를 낮추면 약효(藥效)가 사라지고, 제재 수위를 높이면 그들의 반대에 부딪혀 제재 자체가 좌절되는 덫에 걸렸다. 그렇게 쌓인 북핵(北核) 피로증 때문에 최근 10년간 미국은 '선의(善意)의 무시(無視·benign neglect)' 또는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 북핵 문제를 뒷전으로 미뤄버렸다.

미국은 북핵 위기가 불거진 1992년 이후 북한이 약속을 깨뜨리고 회담 의자를 걷어찰 때마다 봉쇄와 고립화의 채찍으로 벌(罰)을 내렸다. 미국은 냉전시대 이 정책으로 소련을 무너뜨리고 냉전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세계 제2의 대국 소련을 무릎 꿇린 이 처방전(處方箋)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고립된 나라 북한엔 듣지 않았다. 중국이 대주는 석유와 식량이 북한의 버팀목이었다.

중국은 예나 이제나 패권 국가 미국과 몸으로 부딪치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다. 6·25전쟁에 뛰어들어 미국을 겪어봤고 대만과의 관계에서 60년 넘게 미국의 벽을 실감(實感)했다. 그런 중국에 북한은 미국의 영향력을 차단해주는 완충지대로서 가치가 여전하다. 압록강을 건너가는 중국 석유와 식량은 중국이 북한에 지불하는 일종의 자릿세(稅)다.

물론 중국엔 세계 제2의 강대국으로서 비핵화(非核化)와 핵확산 방지라는 국제 질서 유지에 협력할 의무도 있다. 중국은 이런 처지 때문에 북한 핵 문제 앞에선 늘 강대국의 체면치레용 의무와 북한의 지정학적 이용 가치 사이에 끼여 우물대왔다. 요즘처럼 남태평양 일부 도서의 영유권과 해상 자유 통행권을 놓고 미국·일본과 충돌·경쟁·대립하는 국면에선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가 체면치레용 의무를 누르고 더 큰 소리를 낸다.

압록강을 넘어가는 중국 석유와 식량은 북한에 주는 당근이지만 공급을 중단하는 순간 채찍으로 변한다. 당근이 변한 채찍 맛이 훨씬 맵다. 수소폭탄 운운하는 북한의 버릇을 고칠 매는 이 매뿐이다. 대통령은 작년 중국 전승(戰勝)기념일에 미국의 눈 흘김과 일본의 비난을 무릅쓰고 시진핑 주석·푸틴 대통령과 나란히 천안문 사열대에 섰다. 한국은 그때 이래 지금껏 알게 모르게 그 값을 치러왔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한국을 대하는 미국 태도에서 그 앙금과 흔적을 다시 읽는다면 지나치게 과민(過敏)한 반응일까. 박근혜 시대의 간판 대중(對中) 외교가 중대 시험대에 섰다. 중국의 응답 여부에 성패(成敗)가 걸렸다.

중국 협조 없이는 김정은의 돈줄을 막을 수 없다. 돈줄이 막히지 않는 한 북한의 핵 도박은 계속된다. 북한은 작년부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란 핵 주사위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성공하면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일본 어느 누구도 북한 핵무기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한다. 동북아 모든 국가가 핵 무장으로 각자 도생(圖生)을 꾀하는 핵 도미노 현상과 함께 중국이 미국과 몸으로 부딪치는 거북한 사태가 닥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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