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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저금리 마취에서 깨어나는 한국 경제

최만섭 2015. 12. 18. 10:37

[동서남북] 저금리 마취에서 깨어나는 한국 경제

김기훈 디지털뉴스본부 콘텐츠팀장
김기훈 디지털뉴스본부 콘텐츠팀장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는 독일의 분데스방크와 함께 세계 금융계에서 최고 권위로 통한다. 연준을 이렇게 격상시킨 사람은 폴 볼커 전 의장(1979~1987년 재임)이다. 1970년대 미국 경제는 닉슨·포드·카터 대통령을 거치면서 고(高)물가로 고통받았다. 볼커는 고물가를 잡기 위해 1979년 10월 한 달 동안 금리를 무려 4%포인트나 올렸다. 후속 조치가 이어지면서 정책단기금리는 20%까지 상승했다. 1800년 이후 장기금리가 3~7%에 불과했던 미국 경제사에서 혁명적 조치였다. 3년간 격렬한 구조조정의 고통이 있었지만 금리를 다시 내리자 레이건·클린턴 시대의 장기 성장이 시작됐다.

앨런 그린스펀(1987~2006년 재임)은 전임자인 볼커의 덕을 톡톡히 봤다. 주가 대폭락 등 초반 위기도 있었지만 재임 기간 대부분 경제는 안정적이었고 IT 혁명도 있었다. 1996년 여름, 실업률이 낮고 물가가 오를 때 그린스펀은 금리 인상 압력을 받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신참 이사 재닛 옐런이 나섰다. "약간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은 경제성장에 오히려 윤활유 역할을 해요." 그린스펀은 금리를 올리지 않았다.

옐런은 볼커보다 그린스펀에 가깝다. 인간의 가장 큰 고통은 실업에서 나온다는 믿음 때문에 물가 억제만큼이나 경제성장과 취업을 중시한다. 그러니 향후 금리 정책에서도 이러한 성향이 반영될 것이다.

옐런이 전임자인 벤 버냉키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만든 제로 금리 시대를 끝냈다. 그 결과 세계 금융시장의 체스판이 바뀌고 있다. 한국에서는 '대출 금리 낮추세요'라는 선전 문구를 내건 주택 담보대출 금리 비교 사이트에 접속이 늘고, 건설업체들은 연내 예정이던 아파트 분양을 내년으로 연기한다. 뉴욕 채권시장에서는 저금리 시대에 각광받던 고위험 고수익 채권(정크본드)에서 돈이 빠져나간다. 그동안 저금리 달러의 단맛을 봐왔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랜드, 브라질의 헤알, 콜롬비아와 멕시코의 페소화(貨)는 여지없이 추락한다.

금리 인상은 한국 경제에는 큰 도전이다. 우선 11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가 부담이다. 감독 당국은 빚의 위험을 경고하면서 원리금을 함께 상환하는 미국식 대출을 권장한다. 하지만 불경기와 실업, 자녀 교육비에 쪼들린 서민들은 주택 빚을 갚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오히려 마이너스 통장만 찾고 있다. 서해 건너 중국에서도 위험이 다가온다. 중국이 환율제도를 바꿔 위안화 평가 절하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중국 기업들과 힘겹게 싸우고 있는 한국 기업들의 발목에 납덩이가 하나 더 붙는다.

한국 경제는 지난 7년간 저금리 마취주사를 맞았다. 하지만 금융 모르핀은 수술을 위한 예비 조치이지 경제 문제의 궁극적 해결책은 아니다. 이제 마취에서 깨어나고 있으니 기업의 혁신 능력으로 승부를 겨룰 수밖에 없는 시기가 왔다. 미국 테 슬라 모터스의 CEO 일론 머스크나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처럼 우주기술을 활용해 첨단 원천기술 확보에 나서거나, 중국 알리바바의 마윈, 바이두의 리옌훙처럼 미국의 아이디어를 더 먼저 상업화해야 한다. 금융위기의 잔해에서 아이폰과 페이스북을 만들고 셰일가스 공법을 개발하면서 7년 만에 경제 재건에 성공한 미국이 일자리난에 시달리는 한국 경제에 던지는 교훈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