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2.11 03:05
한국 제약산업의 미래… 리더에게 듣는다
한미약품 이관순 사장
"위기였죠. 약가(藥價) 인하 정책으로 영업이익은 갈수록 떨어지는데 신약은 앞이 안 보이고. 개발 속도를 늦추자는 말도 나왔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임상시험 일정을 늦추면 돈이 더 들어가니까요."올해 한미약품이 한국 제약산업의 역사를 새로 썼다. 지난달 초 사흘 간격으로 총 6조원 규모의 계약을 성사시킨 것을 포함해 올해 총 6건, 8조원대의 신약 기술 수출 실적을 올렸다. 118년 한국 제약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술 수출이다. 당장 입금되는 계약금만 작년 매출 7613억원에 맞먹는 수준이다. 이관순 한미약품 대표는 지난 4일 서울 방이동 본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나라도 세계 제약시장에서 통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라고 말했다.
- ▲ 이관순 한미약품 대표가 회사에서 개발된 약품들을 바라보고 있다. 이 대표는 “회사에서 늘 ‘무조건 남과 달라야 한다’는 정신을 강조하다 보니 숱한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끝내 세상에 없던 원천 기술을 개발했다”며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성공만 바란다면 신약 개발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무조건 남들과 달라야 한다"
임성기 회장은 연구진에게 단 하나, "무조건 남들과 달라야 한다"고만 주문했다. 이 대표는 "당시 복제양 돌리가 나오고 해서 염소 젖에서 치료 물질을 얻는 연구까지 시도했다"고 말했다. 인간 유전자를 넣어 흑염소를 만들었지만 곧 연구를 접었다. 달걀을 통해 치료 물질을 얻으려는 시도도 해봤다. 그러던 중 미국 바이오업체 암젠이 당뇨병 환자가 하루 한 번 맞던 인슐린을 1주일 1회로 줄인 제품을 선보였다. 이 대표는 "이거다"라며 무릎을 쳤다.
완전히 새로운 신약을 만들려면 연구비나 연구원 규모에서 글로벌 제약사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대신 신약의 약효를 오래가게 하는 것은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한미약품은 이미 고혈압 신약의 일부 물질을 바꿔 약효를 높게 하는 방식으로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이 대표는 "약효를 늘리는 화학물질을 개발하면서, 약효를 내는 단백질도 이전과 다른 형태로 만들어 효능을 높였다"며 "화학합성 의약품과 바이오 의약품을 융합한 성과"라고 말했다.
◇해외 전문가 통해 소문나
한미약품은 바이오 의약품이 몸에서 금방 배출되지 않고 오래 지속되도록 하는 원천기술을 개발했다. 동물실험에서 예상대로 효과가 나타나자 바로 해외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연구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지만 글로벌 제약사의 눈에 띄려면 해외 임상시험이 필수였다. 5년 전부터는 매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제약업계 최고 경영진이 모이는 JP모건 콘퍼런스에도 참가했다. 3년 전부터는 해외 유명 의료진들을 임상시험 자문위원으로 초빙했다. 이들의 입을 통해 자연스럽게 홍보 효과가 나타났다.
"올 6월 미국 보스턴의 당뇨학회에서는 우리 약효 지속 기술이 적용된 당뇨 신약의 임상시험 결과를 11건이나 발표했어요. 그때부터 글로벌 제약사들과 밀고 당기는 협상이 시작됐습니다."
한미약품은 이 모든 협상을 자체적으로 진행했다. 이 대표는 "국내 업체들은 해외 협상에 대부분 외부 전문가를 썼지만 우리는 내부 인력을 뽑아 신입부터 키웠다"며 "외국 회사에서 데려온 인력은 한 명도 없다"고 했다.
- ▲ 이관순 한미약품 대표
한미약품의 기술을 사 간 회사들은 한 해 매출이 수십조원에 이른다. 왜 이런 회사가 한미약품 같은 작은 회사에 눈을 돌린 것일까. 이 대표는 "최근 글로벌 제약사들에서 몸집을 불리는 전통적인 인수합병(M&A) '약발'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제는 두 회사가 합치는 '1+1'이 3을 내는 게 아니라 경쟁력이 떨어진 부분을 떼어내며 1.3 정도만 얻고 있다는 것이다.
대신 글로벌 제약사들은 이제 외부의 벤처나 중소 제약업체의 혁신 기술을 도입하는 '개방형 혁신'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공룡화된 자체 연구 조직은 이미 돈을 쏟아부어도 새로운 기술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가 됐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개방형 혁신은 국내 제약사의 살길이기도 하다"며 "우리 회사도 곧 대학과 벤처들을 초대해 기술을 발표하도록 하는 '개방형 혁신' 행사를 열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에서 후속 신약 기대
한미약품의 또 다른 무기는 북경한미약품이다. 이 대표는 "연구원이 100% 중국 유명 대학 출신"이라며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면 생산과 연구시설을 중국에 두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한미약품은 북경한미약품과 함께 항체를 이용한 바이오 항암제를 개발하고 있다.
역시 임성기 회장이 강조한 '남들과 다른' 전략을 택했다. 기존 항체 의약품은 항체마다 기능이 한 가지씩인데 한미약품은 항체 하나가 두 가지 작용을 하도록 했다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신약이라고 해도 세상에서 완벽하게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보는 시각을 달리하면 이미 있던 것도 새로운 신약이 되는 것이죠."
이 대표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기술 이전한 신약 기술의 상용화 진척 과정도 챙겨야 하고 후속 수출 계약도 진행해야 한다. 기술 수출이 성공하면서 정부 주최 행사의 단골 연사로도 나간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 기업들도 유망한 기술이 많다"며 "이것을 어떻게 가공해 수출까지 성사시킬 수 있는지 경험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성공만 바라면 결코 신약을 개발할 수 없습니다. 실패도 용인해야 성공할 수 있어요. 정부가 다른 선진국처럼 R&D에 과감한 세제 혜택 등으로 지원하면 반드시 미래 주력 산업이 될 겁니다. 우리가 그 시작이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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