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노조

'3% 민노총'이 노동계를 대변한다는 모순

최만섭 2015. 12. 9. 09:56

'3% 민노총'이 노동계를 대변한다는 모순

입력 : 2015.12.09 03:00

['민노총 20년' 진단][上]
"기업은 敵"… 사용자와 타협했다는 이유로 '동료 노조'도 폭행
대부분이 대기업·공기업 정규직… 고용 절벽에도 기득권만 지키기

"죽창과 파이프를 들어라" 지도부는 선명성 경쟁만
최근 3년 투석·각목시위, 모두 민노총 집회서 발행
낡은 이념에 사로잡혀 투쟁 통해 자기 잇속 챙겨
"민노총 방식 수명 다했다"

"(올해로 창립 20년인) 민주노총의 사회적 역할이 이제는 다한 것 같다. 정책 형성과 대안 제시 등 내셔널 센터(national center·노조 중앙조직)로서의 노조 기능이 오래전부터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

노동 전문가 A씨는 지난달 14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벌어진 민주노총 폭력 시위와 체포영장이 발부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조계사 도피 사건 등을 지칭하며 "민주노총의 민주적 의사소통 기능은 사실상 마비된 거나 마찬가지"라며 이같이 말했다. 민주 노동운동을 기치로 내걸고 1995년 설립한 민주노총의 20년 역사가 폭력 시위로 얼룩지면서 적어도 '여론상으로는 사실상 절명 위기에 놓였다'는 진단이었다. 강경 투쟁을 통해 실리를 챙겨온 민노총의 방식이 수명을 다했다는 것이다.

뿌리 깊은 민주노총의 폭력성

전체 임금 근로자(1931만명)의 3%에 불과한 민주노총(63만여명)의 '뿌리 깊은 폭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으로 10년 전 내부 폭력 사태가 꼽힌다. 창립 10년을 맞은 2005년 당시 온건파 집행부가 '노사정위원회 대화 참여'를 대의원대회 안건으로 올리자 강경파가 회의장 내에서 시너와 소화기를 뿌리고 집기를 부수는 등 집단 난투극을 벌인 사건이다. 자칭 민주 노동운동으로 노동계를 대표한다는 조직이 가장 비민주적인 방식인 폭력을 행사하면서 사회적 대화까지 거부한 것이다. 노동 전문가 B씨는 "이후 민주노총은 노사정 대화에 일절 참여하지 않아 여론으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켜 왔다"면서 "민주노총이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처한 작금의 현실은 결국 민주노총이 자초한 결과"라고 말했다. 경찰은 "최근 3년간 투석·쇠파이프 등을 사용한 과격 폭력 시위는 모두 민주노총 집회에서 발생했다"고 밝혔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민주노총이 개최한 ‘노동 개악 법안 저지 결의 대회’ 참가자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노동 개악 입법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민주노총이 개최한 ‘노동 개악 법안 저지 결의 대회’ 참가자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노동 개악 입법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죽창·파이프 들어라"는 민노총

민주노총은 1980년대 노동 현장의 여러 운동권 계파가 모여 만든 단체다. 크게 '국민파' '현장파' '중앙파'가 투쟁 노선 등을 놓고 정파 투쟁을 벌여왔다. 지난해 민주노총 첫 직선제로 당선된 한상균 위원장은 민주노총 내에서 상대적으로 소수파인 '현장파'이지만 쌍용자동차 시위 등에서 얻은 대중성을 무기로 예상을 깨고 위원장에 당선됐다. 지난달 광화문 폭력 시위는 당시 선거 운동 과정에서 이미 예고됐다.

한 위원장은 "촛불로는 이길 수 없다. 죽창과 파이프를 들고 그들의 심장부로 달려가야 한다" "세월호는 사건이 아니라 학살"이라는 등 연일 강성 발언을 쏟아냈다. 민주노총 내부 사정에 밝은 노동 전문가 C씨는 "한 위원장이 과격 시위에 매달리는 것은 대중성 외에는 조직 내 기반이 약해 선명성 경쟁에서 다른 계파에 밀릴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의 '전투적 실리주의'

민주노총의 위기는 '계급론'이라는 철 지난 이념에 갇혔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가와 싸워서 노동자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는 낡은 이념 프레임에서 민주노총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근로자의 고용 안정성만큼이나 기업의 성장 가능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민주노총이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을 적으로 치부하는 민주노총의 이념적 집착이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지난 2006년 한국노총이 노사정 대화에서 재계 등과 공동으로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대타협 선언'을 하자 민주노총 노조원들이 당시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을 대낮 길거리에서 폭행하는가 하면, 며칠 뒤엔 한국노총 건물에 진입해 시너를 뿌리고 쇠파이프 등으로 창문과 사무실 집기 등을 부수는 일까지 벌어졌다. 사용자 측과 손을 맞잡았다는 이유로 동료 노조 조직에까지 폭력을 휘두른 것이다.

민주노총이 '계급투쟁'을 명분으로 내걸지만 "실제로는 힘의 과시를 통해 눈앞의 실리를 챙기는 '전투적 실리주의'에 집착한다"는 비판도 있다. 노동 전문가 D씨는 "민주노총 소속 현대자동차 노조가 1987년 노조 결성 이후 올해까지 4년(1994년, 2009~2011년)을 빼고는 연례행사처럼 파업을 벌여 임금 인상 등 실리를 챙겨온 게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노조원의 평균 연봉이 1억원에 육박한 것은 이 같은 전투적 실리주의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노동계 대표 못 하는 민주노총

민주노총은 창립 초기 40여만명이던 노조원 수를 한때 80만명까지 늘리며 세를 키웠지만 지금은 한국노총에 비해 쇠락하고 있다. 고용부에 따르면, 노조에 가입된 전체 근로자(190만5470명) 가운데 지난해 말 기준 민주노총 노조원은 63만1415명(33.1%)으로, 2003년 (43.4%)보다 10%포인트나 떨어졌다. 한국노총은 84만3174명으로 44.3%, 양대 노총에 가입하지 않은 미가맹 노조원은 43만881명(22.6%)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민주노총과 달리 상대적으로 폭력성이 약한 한국노총과 미가맹 노조는 증가하는 추세"라며 "2011년 복수 노조가 허용된 이후 민주노총 소속 노조의 이탈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