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2.03 03:20
가보지 않은 길 가야만 하는 한국
우리 입시 지옥은 그 길 이끌 인재들 키우고 있나, 죽이고 있나, 아예 씨를 말리고 있나
수능시험 성적이 어제 배부됐다. 올해도 대부분의 학생과 부모가 낙담했을 것이다. 1등부터 몇 백등까지 대학 간판이 철저하게 서열화된 나라에서 한 계단이라도 더 위로 올라가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이 세계 최악의 입시 터널에서 구원을 기다리듯 발을 구른다. 이 지옥이 인재 발굴·육성의 불가피한 과정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른바 수월성 교육은 노벨상 근처에도 가지 못한 채 의사 면허증, 변호사 면허증용 '인재'들만 양산하고 있다. 외국 기술 도입해 대량생산하던 시절이 이미 끝났는데도 우리 수월성 교육, 수능 점수 더 따기 교육의 승자(勝者)들은 '창의'와는 거리가 먼 붕어빵 인재이고 다른 수많은 아이의 잠재력은 피기도 전에 지고 있다. 아이들을 순서대로 줄 세워 소수점 단위로 끊어내는 수능은 올해도 그 무서운 도끼를 들고 어김없이 찾아왔다.
수능 채점 결과가 발표된 지난 1일 저녁 자리에서 교육 얘기가 나왔다. 우리 사회의 중요한 자리를 맡고 있는 분들이었다. "우리 집 아이 둘은 모두 고교 과정을 제대로 마치지 못했어요. 한 아이는 두 달도 못 다녔어요. 정말 못 가겠다는데 어쩝니까. 그날 아버님 어머님 사시는 집을 찾아가 어린아이처럼 두 분 사이에서 잤습니다. 기댈 곳이 필요했나 봅니다. 그러고 나서 허락했어요. 한 아이는 요리 쪽으로 갔고, 다른 아이는 검정고시를 거쳐 일본 대학으로 진학했습니다." 이분이 말한 일본 대학은 세계 수준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두 아이 다 우리 공교육과 이 나라 밖에서 희망을 찾았다.
최고 엘리트들이 모인다는 곳에 근무하는 분은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자기소개서를 보면 깜짝 놀랍니다. 마치 복사를 한 것처럼 똑같습니다. 몇 살 때 뭘 했고, 무슨 봉사를 했고… 앞으로 뭘 하겠다는 것까지 같습니다. 이게 우리 교육의 현실 같았습니다"고 했다. 우리 교육의 현실이자 수능 최고 점수들의 실상이기도 할 것이다.
다른 분은 "소득이 높아지면서 다른 가계 지출은 다 비중이 줄어드는데 오직 교육비와 주거비 비중만 끊임없이 커지고 있어요. 이 현상을 보면서 이것이 저출산의 근본 원인이 아니겠나 생각합니다"고 했다. 정부가 저출산 대책에 수십조원을 쏟아부었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은 교육과 주거라는 문제의 근원에 손을 못 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아이 둘이 중3~고3에 있는 부모들은 맞벌이면 '수입-지출=0'이고 외벌이면 마이너스라고 한다. 안정된 직장 중견 사원들의 얘기다. 이 엄청난 사교육비가 아이의 소질을 키우고 잠재력을 끌어내는 게 아니라 수능 고득점 기계를 만드는 데 쓰인다. 그 반복 숙달 훈련 속에서 아이는 불행하고 많은 가정은 불화에 빠져 있다. 내수 시장이 커지지 않으면 경기가 살아날 수 없다. 아무리 별수단을 다 써도 한국의 내수 시장은 꿈쩍 않는다. 아이들 사교육비와 주거비 때문에 쓰고 싶어도 쓸 돈이 없는 탓이라 생각한다.
한 분은 "교실에서 아예 엎드려 자는 아이들이 3분의 1이라는데 KBS '거꾸로 교실' 프로그램에서 반전을 보았습니다. 선생님의 교실 강의가 없습니다. 강의는 하루 전에 인터넷에 띄웁니다. 교실에선 그 내용을 갖고 학생들 스스로 토론과 작업, 활동을 합니다. 부산의 두 학교에서 실험을 했는데 잠자는 아이, 딴짓하는 아이, 왕따당하는 아이가 없어졌습니다. 놀랍게도 성적도 올라갔습니다. 이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교사가 전국에서 수천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고 했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거꾸로 교실'에 참여한 한 학생이 "공부 같은 걸 갑자기 하게 되고… 신기했어요. (제가) 이런 애가 아닌데…"라고 말하고 있었다. '거꾸로 교실'은 미국에서 시작된 교육 실험이다. 이 척박하고 희망 없는 한국 교실에 그걸 들고 온 사람은 교육부가 아니라 정찬필 PD와 몇몇 선생님이었다. 저녁 자리를 함께했던 분들은 대부분 공무원이었지만 이구동성으로 "공무원들은 교육을 바꿀 수 없다. 교육부는 더더욱 안 된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정부가 내놓은 교육 개혁이란 것도 실은 대학 구조조정에 지나지 않는다. 대학 간판 서열화와 죽은 교실, 희망 잃은 아이들이라는 근본 문제는 쳐다보지도 않고 있다. 그분들은 "언론이 나서야 한다"고 했지만 자신 있게 답하지는 못했다.
우리나라는 범용 기술에 의한 생산·판매의 강자였다. 그런데 그걸 우리보다 더 잘할 수밖에 없는 중국이란 나라가 등장했다. 이대로면 결과는 뻔하다. 이제 선진국이 주지 않는 기술을 우리 스스로 개발해야 한다. 가보지 않은 길이다. 처음 가는 길은 창의력과 도전 정신으로 무장한 인재들이 이끌어야 한다. 우리 교육은 그런 인재를 키우고 있는가, 죽이고 있는가, 아예 씨를 말리고 있는가.
모두가 입시의 노예가 돼 그 틀 속에서 몸부림치면 교육은 영원히 국민과 국가를 옥죄는 지옥일 것이다. 교사, 학생, 학부모가 들고일어나 "아니다"고 거부해야만 낡아빠진 틀이 깨진다.
수능 채점 결과가 발표된 지난 1일 저녁 자리에서 교육 얘기가 나왔다. 우리 사회의 중요한 자리를 맡고 있는 분들이었다. "우리 집 아이 둘은 모두 고교 과정을 제대로 마치지 못했어요. 한 아이는 두 달도 못 다녔어요. 정말 못 가겠다는데 어쩝니까. 그날 아버님 어머님 사시는 집을 찾아가 어린아이처럼 두 분 사이에서 잤습니다. 기댈 곳이 필요했나 봅니다. 그러고 나서 허락했어요. 한 아이는 요리 쪽으로 갔고, 다른 아이는 검정고시를 거쳐 일본 대학으로 진학했습니다." 이분이 말한 일본 대학은 세계 수준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두 아이 다 우리 공교육과 이 나라 밖에서 희망을 찾았다.
최고 엘리트들이 모인다는 곳에 근무하는 분은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자기소개서를 보면 깜짝 놀랍니다. 마치 복사를 한 것처럼 똑같습니다. 몇 살 때 뭘 했고, 무슨 봉사를 했고… 앞으로 뭘 하겠다는 것까지 같습니다. 이게 우리 교육의 현실 같았습니다"고 했다. 우리 교육의 현실이자 수능 최고 점수들의 실상이기도 할 것이다.
다른 분은 "소득이 높아지면서 다른 가계 지출은 다 비중이 줄어드는데 오직 교육비와 주거비 비중만 끊임없이 커지고 있어요. 이 현상을 보면서 이것이 저출산의 근본 원인이 아니겠나 생각합니다"고 했다. 정부가 저출산 대책에 수십조원을 쏟아부었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은 교육과 주거라는 문제의 근원에 손을 못 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아이 둘이 중3~고3에 있는 부모들은 맞벌이면 '수입-지출=0'이고 외벌이면 마이너스라고 한다. 안정된 직장 중견 사원들의 얘기다. 이 엄청난 사교육비가 아이의 소질을 키우고 잠재력을 끌어내는 게 아니라 수능 고득점 기계를 만드는 데 쓰인다. 그 반복 숙달 훈련 속에서 아이는 불행하고 많은 가정은 불화에 빠져 있다. 내수 시장이 커지지 않으면 경기가 살아날 수 없다. 아무리 별수단을 다 써도 한국의 내수 시장은 꿈쩍 않는다. 아이들 사교육비와 주거비 때문에 쓰고 싶어도 쓸 돈이 없는 탓이라 생각한다.
한 분은 "교실에서 아예 엎드려 자는 아이들이 3분의 1이라는데 KBS '거꾸로 교실' 프로그램에서 반전을 보았습니다. 선생님의 교실 강의가 없습니다. 강의는 하루 전에 인터넷에 띄웁니다. 교실에선 그 내용을 갖고 학생들 스스로 토론과 작업, 활동을 합니다. 부산의 두 학교에서 실험을 했는데 잠자는 아이, 딴짓하는 아이, 왕따당하는 아이가 없어졌습니다. 놀랍게도 성적도 올라갔습니다. 이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교사가 전국에서 수천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고 했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거꾸로 교실'에 참여한 한 학생이 "공부 같은 걸 갑자기 하게 되고… 신기했어요. (제가) 이런 애가 아닌데…"라고 말하고 있었다. '거꾸로 교실'은 미국에서 시작된 교육 실험이다. 이 척박하고 희망 없는 한국 교실에 그걸 들고 온 사람은 교육부가 아니라 정찬필 PD와 몇몇 선생님이었다. 저녁 자리를 함께했던 분들은 대부분 공무원이었지만 이구동성으로 "공무원들은 교육을 바꿀 수 없다. 교육부는 더더욱 안 된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정부가 내놓은 교육 개혁이란 것도 실은 대학 구조조정에 지나지 않는다. 대학 간판 서열화와 죽은 교실, 희망 잃은 아이들이라는 근본 문제는 쳐다보지도 않고 있다. 그분들은 "언론이 나서야 한다"고 했지만 자신 있게 답하지는 못했다.
우리나라는 범용 기술에 의한 생산·판매의 강자였다. 그런데 그걸 우리보다 더 잘할 수밖에 없는 중국이란 나라가 등장했다. 이대로면 결과는 뻔하다. 이제 선진국이 주지 않는 기술을 우리 스스로 개발해야 한다.
모두가 입시의 노예가 돼 그 틀 속에서 몸부림치면 교육은 영원히 국민과 국가를 옥죄는 지옥일 것이다. 교사, 학생, 학부모가 들고일어나 "아니다"고 거부해야만 낡아빠진 틀이 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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