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2015.11.22

[강천석 칼럼] 김영삼 時代 승리와 좌절의 순간

최만섭 2015. 11. 28. 13:42

[강천석 칼럼] 김영삼 時代 승리와 좌절의 순간

입력 : 2015.11.28 03:20

귀 밝고 많이 묻고 가장 중요한 걸 제일 먼저 결단하던 대통령
1996년 겨울과 2015년 겨울은 뭐가 닮고 뭐가 다른가

강천석 논설고문 사진
강천석 논설고문

김영삼 대통령이 26일 동작동 국립 현충원에 묻혔다. 상도동 집과 선대(先代)로부터 물려받은 거제 생가(生家)와 임야는 이미 몇 해 전 재단에 내놓았다. 김 대통령은 정치가의 마지막 자랑인 무소유(無所有)를 보여주면서 홑몸으로 묻혔다. 이제 고인(故人)의 유산은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역사의 평가와 세상의 기억만 남았다.

김 대통령은 44년의 정치 생애 동안 온몸으로 명예와 불명예의 기록을 써내려 왔다. 장례 기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4%가 김 대통령이 한국 정치 발전에 공헌했다고 대답했다. 그 가운데 37%는 '민주화 운동·독재 항거'를, 17%는 '금융실명제'를, 10%는 '군사독재 청산과 군내(軍內) 사조직 하나회 척결'을 공(功)으로 꼽았다. 애도(哀悼) 분위기 속에서도 '김영삼 대통령 하면 먼저 떠오르는 생각'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17%가 'IMF 구제금융 사태'를 들었다. 민주화 운동(21%) 다음으로 많았다. 가차없는 역사다.

전성기의 김 대통령은 '귀가 밝고' '많이 묻고' '가장 중요한 문제를 가장 먼저 결단·실행'했다. 하나회 척결·금융실명제와 공직자 재산등록제 실시·전직 대통령 수천억원대 뇌물 수수 처벌은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이뤄졌다. 취임 열이틀 후인 1993년 3월 9일 이른 아침 전화기 저편에서 울리던 대통령 목소리가 여태 귀에 쟁쟁하다. 대통령은 "어때… 어때…" 하고 두어 번 물어 "대통령 아니면 하시기 힘든 일입니다"라는 대답을 끌어낸 다음 전화를 끊었다. 대통령 고등학교 후배인 하나회 출신 육군참모총장과 보안사령관을 전격 해임했다는 신문 1면 톱 뉴스가 전 국민을 놀라게 한 아침이었다.

김 대통령 시대는 임기 후반에 들어 '귀 밝고' '많이 묻고' '가장 중요한 사안을 가장 먼저 결단·실행'하는 3박자가 흐트러지면서 급속하게 기울었다. 귀 따가운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이 제 발로 또는 등이 밀려 대통령 곁을 떠났다. 고급 정보 보고를 축적한 대통령은 어느 자리에서나 좌중(座中)을 압도했다. 그 고급 보고에는 민심(民心)과 현실이 빠져 있었다. 대통령을 만난 사람들도 대통령이 먼저 묻지 않으니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사이 가족과 측근의 문제는 종기에서 등창으로 악화됐다. '가장 먼저 결단·실행해야 할 문제'가 뒤로, 변두리로 밀려났다.

외환 위기가 터지자 자기는 시한폭탄이 재깍재깍 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사람도 나왔다. 귀가 어두워진 대통령에겐 모깃소리만 한 보고는 보고가 아니다. 경제에 밝지 못한 대통령에겐 그에 맞게 보고해야 한다. 그게 진짜 참모다.

배가 완전히 기울어 침몰을 피할 수 없는 시점에 울리는 위험 경보(警報)는 경보가 아니다. 김 대통령이 수십만 명이 직장에서 쫓겨나 거리를 헤매야 할 재난(災難)이 닥쳐오고 있다는 사실을 적시(適時)에 정확하게 알았더라면 그냥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노동법 개정에 반대하며 국회를 마비시키던 야당을 돌려세울 비상수단을 동원했겠지만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국가의 재난 앞에선 대통령에게 면책사유(免責事由)가 없다. 제때 울리지 않는 고장 난 화재경보기 같은 참모들로 자신을 둘러싼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이다. 국회도 예외가 아니다.

되돌아보면 1996년에서 1997년으로 넘어가던 그해 겨울은 심상치가 않았다. 기업들은 빚을 얻어 영토를 확장하기 바빴다.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핵심 산업·핵심 기업들의 채산성(採算性)은 7~8년 가까이 내리막길을 굴러왔다. 노조는 노동법 개정안 단독 처리를 무효화시키겠다며 전국 규모의 총파업을 벌였다. 야당은 한 해 앞으로 다가온 대선 표(票) 계산에 몰두해 노조 등에 올라탔고 여당은 재계(財界) 로비에 휘둘려 왔다갔다하면서 국회는 마비됐다. 측근 비리로 곤경에 몰린 대통령의 정치력은 무력화(無力化)됐다. 국민은 입으론 불안하다면서도 연휴(年休) 때마다 공항을 북새통으로 만들만큼 분수(分數)를 잊었다.

2015년 겨울은 1996년 겨울과 뭐가 다르고 뭐가 닮은 것일까. 어느 기업은 불안한 투자 대신에 10조원을 쏟아부어 자기 회사 주식을 사들여 경영권을 안정시킨다고 한다. 가계 부채의 심각성은 귀에 못이 박힐 만큼 들었지만 개선되고 있다는 소식은 없다. 민노총은 서울을 마비시킨 전과(戰果)를 자랑하며 다음에는 전국을 마비시키겠다고 호언(豪言)하고 있다. 선진화법에 막힌 국회는 식물 상태다. 각국과의 FTA 비준안과 경제 입법은 명(命)이 경각에 달렸다. 여 당과 야당 마음은 내년 총선 공천 지분(持分) 경쟁 쪽으로 옮아간 지 오래다. 대통령은 경제입법 처리와 교과서 문제라는 두 개의 장(場)을 벌여놓고 혼자 호소하고 혼자 경고하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의 승리의 순간과 좌절의 순간을 가까이서 지켜본 기자 마음이 스산한 것은 반드시 인간의 정리(情理) 때문만이 아니다. 그해 겨울과 올겨울이 자꾸 겹쳐 보여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