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개혁

[송희영 칼럼] 아직도 면세점에 목매는 後進國

최만섭 2015. 11. 21. 14:53

[송희영 칼럼] 아직도 면세점에 목매는 後進國

입력 : 2015.11.21 03:20

면세점 면허 기간 단축은 시대 역행하는 후진국 정책
자유 경쟁 원칙 무시하고 정치인·공무원 떡고물판만 키워
정부부터 면세점 이권 포기하고 유명 브랜드 세금도 낮춰야

송희영 주필
송희영 주필
정부가 재벌들에 면세점 특혜를 나눠주는 꼴이 가관이다. 몇 달 전 면세점을 나눠주더니 서울 시내 알짜 면세점을 또 배정했다. 당첨된 재벌은 웃음을 참느라 애쓰고, 낙방한 재벌은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떨어뜨렸나' 하며 불평을 참지 못한다.

면세점 소동은 처음부터 그들만의 밀실 파티였다. 정부는 재벌을 줄 세우려고 면세점 숫자를 제한했다. 좁은 문을 통과하려면 베팅을 크게 할 수밖에 없다. 재벌의 가장 큰 무기가 돈 아닌가. 먼저 매장을 호화롭게 꾸미겠다고 홍보한다. 그걸로는 부족했다는 듯 무대 뒤에서는 회장님, 사장님들이 청와대와 정치권으로 바쁘게 들락거린다. 실무 관청인 관세청에도 은밀한 손길을 내민다. 담당 공무원들은 모처럼 살판났다. 관세청 OB들도 고문 명함을 들고 다니며 신이 났다.

50~60년 전 후진국 시절이 그리웠던 것일까. 그때는 종합상사 면허를 받아내려고 다퉜다. 정치권 로비가 극성이었다. 자동차·전자·조선 같은 이권 사업, 증권회사·카드회사 허가를 놓고 재벌들이 큰 싸움을 벌이곤 했다. 그때마다 실세 정치인들은 물론 담당 관료들이 떡고물을 챙겼다.

그러나 경제가 세계화 물결을 타면서 모든 특혜와 이권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살아남을 능력이 있는 회사만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엄중한 현실과 마주쳤기 때문이다. 정부가 어떤 이권을 쥐여줘도 경쟁력 없는 회사는 모두 망한다는 법칙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정부 정책 대부분은 허가제·면허제에서 신고제·등록제로 바뀌었다. 누구나 쉽게 사업을 시작해 경쟁을 통해 살아남도록 하는 경제가 삼성전자·현대자동차 같은 글로벌 기업을 키운다는 것을 알게 됐다. 면세점 소동은 우리 경제가 걸어온 큰 흐름을 거꾸로 돌려놓으려는 시도나 마찬가지였다.

한국 경제는 저성장에 빠졌다. 고도성장 시절이 때론 그립기도 하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정부 정책이 이렇듯 후진(後進)할 수는 없는 일이다. 면세점을 하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해외 유명 브랜드가 아무에게나 점포를 허용하고 제품을 공급해줄 리도 없다. 자유경쟁을 시키면 한동안 과당경쟁 같은 혼란이 있겠지만 결국 경쟁력 있는 회사만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휴대폰·TV·신발 등 수많은 제품에서 그런 성공 체험을 끝냈다. 우리는 그렇게 세계 10위 경제권까지 올라왔건만 웬일인지 면세점 정책만은 거꾸로 갔다.

생각을 몇 번 고쳐먹어도 후진국 시절의 정책을 밀어붙인 정부를 이해하기 힘들다. 대통령이 애착을 보인 청년희망펀드에 총수들 돈을 더 끌어들이려고 판을 키웠다는 억측은 믿고 싶지 않다. 청와대가 재벌들에 전국 곳곳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짓도록 독려했으니 그 보답으로 면세점 특혜를 나눠주었다는 말도 그저 흘려버리고 싶다. 하지만 이런 지저분한 뒷말을 들으면서도 시대에 역행하는 일을 벌인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어느 경영인의 체험담이다. 이 기업인은 전자제품 공장을 지으려고 동남아 어느 후진국을 찾아갔다. 담당 공무원이 친절하게 모든 절차를 끝내주는 듯하더니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총리 고향에 복지센터를 지어주면 허가가 빨리 나올 것이라고 했다. 복지센터에는 수십억원이 필요했다. 그는 너무 큰 부담 때문에 공장을 포기했다.

우리가 선진국 문턱에 왔다고 해도 동남아 국가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정치인과 공무원이 손을 맞잡고 10년마다 면세점 면허를 내주던 것을 5년으로 단축했다.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떡고물 잔치를 5년마다 벌일 수 있게 됐다. 면세점 면허를 공개하고서는 무슨 기준으로 결정을 내렸는지 심사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다. 질펀한 밀실 파티를 즐기느라 면세점에 수천억원을 투자했던 기업들 처지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면허 취소로 직장을 잃게 된 면세점 직원들의 비명도 들으려 할 턱이 없다.

면세점은 주한 미군을 위해 탄생한 사업이다. 귀국하는 미군들에게 관세(關稅)나 다른 세금을 면제해주기 위해 일본 것을 베껴다 만들었다. 하지만 재벌 주도 면세점은 한국에만 존재한다. 수입 브랜드에 대한 세금이 낮은 나라에선 한국형 면세점이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다. 관세가 낮은 홍콩, 미국, 유럽 선진국에는 내국 소비세(부가세)를 감면해주는 면세점이 대부분이다. 일본 도심에 2만개나 깔려 있는 소형 면세점도 모두 소비세 8%를 깎아주는 곳이다.

선진국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면 정부부터 면세점 이권을 포기해야 한다. 유명 외국 브랜드에 대한 세금도 더 낮춰야 한다. 우리 면세점의 핸드백 가격이 홍콩 일반 점포의 가격보다 비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안에선 후진국 정책에 집착하며 대통령이 G20 정상회담에서 선진국 대접을 받은 듯 자랑하는 것은 정말 쑥스럽지 않은가.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