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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읽는 시조] 징 정수자 시조시인

최만섭 2015. 10. 30. 09:19

[가슴으로 읽는 시조] 징

  • 정수자 시조시인

입력 : 2015.10.30 03:00



1
삼천리 그 몇 천리를 세월 그 몇 굽이 돌아
갈고 서린 한을 풀어 가을 하늘을 돌고 있네.
수수한 울음 하나로 한평생을 돌고 있네.

2
아홉 마당 열두 타작으로 잔등을 후려쳐라.
주름살 골을 따라 갈가리 찢긴 한을
한평생 돌다 지치면 내 전신을 두들겨라.

3
울거라 울거라 밤새도록 울거라 너는,
한 세상 끝날까지 닿도록 울거라 너는,
낙동강 홍수가 되어 범람토록 울거라.

―박영교(1943~ )

[가슴으로 읽는 시조] 징
징보다 깊은 울림이 있을까. 방짜 징은 그중 깊고 맑은 울림으로 이름이 높다. 에밀레종만 할까 싶겠지만, 좋은 징은 시푸른 하늘이나 깊디깊은 우물처럼 유장한 맛이 있다. 그렇게 가을 하늘이 커다란 징 같은 날은 한번 울려보고 싶다. 얼마나 길고 깊은 여운으로 번질까.

우리 네 '삼천리 그 몇 천리를 세월 그 몇 굽이'를 돌아온 징. 한과 노래를 실어 온 때문인지 징소리에는 때때로 구렁이 울음이며 비원(悲願)의 춤사위 같은 게 비친다. 그렇게 '밤새도록' 울어 타 들어가는 가슴들 좀 적시고 '갈고 서린 한'도 죄 풀어주면 좋겠다. 가을도 '열두 타작' 가을로 넉넉히 거둘 수 있기를, 징소리 앞세워 빌어보는 너무 마른 가을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