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롱테일 법칙, 하드웨어 분야에서도 통한다"

최만섭 2015. 10. 12. 14:39

"롱테일 법칙, 하드웨어 분야에서도 통한다"

버클리(미국)=강동철 기자

입력 : 2015.10.12 03:05

[드론 제작 '3D로보틱스' 창업자 크리스 앤더슨]

"미국 사무실에 앉아서 中 공장에 생산 맡기고 유럽 소비자에게 판매
수많은 개인·소기업의 소규모 제조시대 열려"

크리스 앤더슨은 세계 IT(정보기술) 업계의 대표적인 구루(Guru·권위자) 중 하나다. 미국의 저명한 IT 전문 매체 '와이어드(Wired)' 편집장을 12년간 맡았던 그는 '롱테일 경제학' '프리(Free)' '메이커스' 등의 저서를 통해 전통적인 산업 구조가 소프트웨어·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급격히 변화하는 현상을 명쾌하게 풀어냈다.

앤더슨은 2009년 실리콘밸리의 버클리(Berkeley)에서 드론(drone· 무인기) 제조업체 3D로보틱스를 창업해 최고경영자(CEO)로 변신했다. 그는 지난 7일(현지 시각) 3D로보틱스 본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공장이나 기술자 없이도 인터넷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필요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며 "수많은 개인·소기업이 하드웨어를 만드는 소규모 제조(micro-manufacturing)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하드웨어도 롱테일 시대 열린다

앤더슨 CEO는 "하드웨어에도 롱테일(long tale·긴 꼬리) 이론이 적용된다"고 말했다. 롱테일이란 '20 대 80' 법칙으로 잘 알려진 파레토 법칙의 반대말이다. 파레토 법칙은 상위 20%의 인재나 제품이 회사 전체 실적의 80%를 책임진다는 것으로 기업 경영의 상식처럼 통했다. 앤더슨은 이와 반대로 "꼬리 부분에 있는 80%의 다수(多數)를 잘 활용하면 더 중요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롱테일 법칙을 주창해 신선한 충격을 줬다.

세계 IT(정보기술) 업계의 대표적인 구루(권위자) 중 한 명인 크리스 앤더슨.
▲ 세계 IT(정보기술) 업계의 대표적인 구루(권위자) 중 한 명인 크리스 앤더슨. 드론(무인기) 제조 업체인‘3D로보틱스’를 창업한 그는“공장이나 기술자 없이 수많은 개인, 소기업이 하드웨어를 만드는 소규모 제조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플리커
대표적인 예가 음악이다. 과거에는 서점이나 레코드 가게 등에 전시되지 않으면 아예 판매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인터넷을 이용하면 옛날 음악도 검색 한 번으로 찾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예전에는 시장에서 찾을 수 없던 제품이 새로운 가치를 만든다는 것이 롱테일 법칙의 핵심이다.

앤더슨 CEO는 이런 현상이 하드웨어 분야로도 확산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콘텐츠뿐 아니라 하드웨어 제조에도 개인이 뛰어들 수 있다는 말이다.

"예전에는 물건을 만들려면 고가(高價)의 기계와 전문 기술자, 공장 등이 있어야 했어요. 이젠 인터넷을 이용하면 이런 것들이 다 필요 없어집니다. 사업자금은 온라인 모금(크라우드 펀딩)으로 모집하고, 제품 양산은 중국 공장에 외주를 맡기면 거뜬하죠."

앤더슨 CEO의 3D로보틱스 역시 비슷한 길을 걸었다. 그는 우선 드론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를 만들어 전문가들과 아이디어를 나눴고 여기서 드론 산업의 성공 가능성을 엿봤다. 공동 창업자인 조르디 뮤노즈도 이 커뮤니티에서 만났다. 그들의 첫 드론 제품인 '솔로'는 3D(입체) 설계 프로그램과 3D 프린터로 만들었다. 이후 중국 공장에 외주를 맡겨 대량 생산에 나섰다.

판매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사람들이 사지 않을 것 같은 제품도 인터넷을 활용하면 얼마든지 수요를 발굴할 수 있다"며 "미국에 있는 사무실에 앉아서 중국 공장에 생산을 맡기고 유럽 소비자에게 제품을 팔면 된다"고 말했다.

개방과 폐쇄의 균형이 중요

앤더슨 CEO는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개방형 혁신)'의 대표적인 선구자다. 주요 기술을 개발자나 특정 회사가 독점하지 않고 다른 사람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개방하면 전체적으로 시장이 커지고 더 큰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개방형 혁신이 모든 것을 오픈하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며 대표적인 예로 세계 최대의 인터넷 기업 구글을 꼽았다. 구글은 스마트폰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를 수많은 소프트웨어·스마트폰 업체들이 자유롭게 쓸 수 있게 개방했다. 하지만 안드로이드 OS를 통해 거래되는 앱·게임 매출의 30%를 수수료로 받는 데다 광고를 통해 추가 수익을 올린다.

"구글이 모든 것을 오픈하는 것 같지만 정작 수익이 나는 부분은 철저하게 자신들이 운영합니다. 모든 것을 닫으면 고객을 잃게 되고, 모든 것을 열면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에 개방과 폐쇄의 균형을 잘 맞춰야 하죠."

앤더슨 CEO는 지금까지 강연과 포럼 참석차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한 지한파(知韓派)다. 그는 한국 산업계에 대해 "지나치게 대기업에 편중돼 있는 게 문제"라며 "인력과 자본이 모두 대기업에 몰려 있다 보니 제조 분야에서 역동적인 창업가들이 나타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처음에는 하드웨어에 대해 무지했던 나도 현재 드론 업체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며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도전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