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朝鮮칼럼 The Column] 대통령 취임 100일 회견에 빠진 것들

최만섭 2022. 8. 22. 05:07

[朝鮮칼럼 The Column] 대통령 취임 100일 회견에 빠진 것들

대통령이 생각하는 역할과 국민 눈높이 간 괴리 드러내
지지율 하락 근본 원인 여전히 모르고 있는 듯
부족함 받아들이는 겸허한 태도, 개별 정책 묶는 비전 보여야

입력 2022.08.22 03:20
 
 
 
 
 

지난주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유심히 지켜봤다. 취임 초 낮은 지지율이 보여주듯 전례 없이 ‘허니문’을 누리지 못하는 데 대한 대통령의 생각이 궁금했다. 회견을 지켜본 뒤 대통령이 지지율 하락의 근본 원인을 여전히 모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긴 시간을 할애해 지난 100일의 성과를 나열한 모두(冒頭) 발언에서 윤 대통령이 생각하는 자신의 역할과 국민 눈높이 간의 거리감도 느낄 수 있었다.

누구나 초보로 시작할 수밖에 없는 신임 대통령의 100일은 시행착오와 학습의 과정이다. 그 기간 후 국민이 확인하고 싶은 건 그새 얼마나 깨달음이 컸고 달라지려고 할까 하는 점이다. 100일이 지났지만 윤 대통령은 여전히 관료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자회견 발언은 검사가 범죄 소탕을 벌여 조폭과 경제사범 몇 명을 잡았으며, 그중 몇 명을 기소했고, 그 가운데 몇 명은 중형을 선고받게 하는 성과를 거두었다는 식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겨우 100일을 보냈고 앞으로 수없이 많은 날을 이끌고 가야 하는 대통령에게 국민이 듣고 싶었던 말은 어떤 방향으로 나라를 이끌고 가겠다는 국정 목표와 비전이었다. 미래에 대한 말을 기대했지만 윤 대통령의 관심은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패를 바로잡아 주기를 바라는 민심이 지난 대선의 결과였다고 해도, 그게 이 정부의 국정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사실 윤 대통령이 꿈꾸는 미래 모습은 대선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때도 궁금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다수 유권자에게는 당장의 정권 교체가 더 급했다. 취임 후 100일이나 지난 만큼 이제는 그런 비전을 보여줘야 할 때가 되었고, 그래서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더 궁금했던 터였다.

국정 목표가 분명하지 않으니 국가 정책은 각개 약진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개혁, 연금 개혁, 교육 개혁 등을 강조하지만 이 정책들이 왜 중요한지, 굳이 왜 다 하려고 하는지 알기 어렵다. 개별 정책만 강조될 뿐 그걸 하나로 묶어줄 큰 그림은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국가 비전이라는 상위 개념이 없으니 5세 초등학교 입학 같은 정제되지 않은 정책도 뜬금없이 던져질 수 있다. 되돌아보면, 장관 보고를 대통령 독대 형식으로 한 것도 문제였다. 장관과의 1대1 업무 보고가 형식보다 내용을 중시했기 때문이라지만 이런 식으로는 도대체 새 행정부가 무슨 일을 하려는지 국민은 알기 어렵다. 장관의 업무 보고는 형식적으로는 대통령에게 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국민을 향한 것이다. 대통령이 제시한 국정 목표를 우리 부서는 이렇게 추진해서 그 목표를 달성하도록 하겠다는 로드맵을 국민에게 설명하는 기회가 되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정책의 실현 가능성이나 우선순위도 국민의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5세 초등학교 입학 건이 교육부 보고 때 이렇게 제시되었다면, 대통령의 국정 목표라는 상위 개념과의 관련 속에서 수용되거나 그게 아니라면 이때 비판받으면서 큰 논란 없이 철회됐을 것이다.

 

결국 이렇게 된 것은 대통령의 정치 경험 부족 때문이다. 평생을 검사로 살아온 윤 대통령이 하루아침에 정치 지도자로 변신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부족함을 주변에서 채워줘야 할 텐데, 문제는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 들으려고 하기보다 자기 뜻대로 밀고 나가는 스타일 같다. 이런 상황에서 실무적 인물을 중심으로 구성된 비서실의 역할은 한계가 있다. 시킨 일은 잘하겠지만, 대통령이 듣기 불편해하는 말을 꺼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당에 대통령을 정치적 운명 공동체로 생각하는 오랜 인연을 가진 ‘동지들’이 있다면 도움이 되겠지만 지금 윤 대통령에게는 그런 것도 기대하기 어렵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시절 아들 문제처럼 예민한 사안에 대해서까지 듣기 불편한 말을 꺼낸 건 여당 내 측근 인사였다. 하지만 이른바 윤핵관은 친윤 ‘세력’이라기보다 개별적 관계이고 오랜 인연도 아니다.

이런 본질적 문제를 그대로 두고 비서실의 정책과 홍보 기능을 보완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윤 대통령은 사람을 잘 안 바꾼다고 했지만, 기존 인사들이 못하고 무능해서가 아니라 지금 자신에게 부족한 점을 보완해 줄 자질을 갖춘 인사로 일부 자리를 교체할 필요가 있다. 정무 감각이 있고 경륜을 갖춘, 때로는 듣기 싫은 소리도 할 수 있는, 무게감 있는 인사가 주변에서 대통령을 보좌하게 해야 한다. 물론 그 무엇보다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려는 윤 대통령의 겸허한 태도가 우선 중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