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음재훈의 실리콘밸리 인사이더] 실리콘밸리가 직원과 이별하는 법

최만섭 2022. 8. 18. 05:23

 

[음재훈의 실리콘밸리 인사이더] 실리콘밸리가 직원과 이별하는 법

입력 2022.08.18 03:00
 
 
 
 
 
그림=이철원

테크 기업과 스타트업의 인력 감축 소식을 집계하는 사이트(Layoffs.fyi)의 8월 10일 기준 통계를 보면, 코로나 이후 1068개의 테크 기업이 16만3534명의 직원을 정리한 것으로 나타난다. 최근 두 달 새 무려 30%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테크 기업 대표 주자인 FAANG(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은 일반직의 신규 채용을 모두 동결했다. 또 무리한 신사업을 접고, 본업 관련 우선순위에 따라 직원들을 재배치했다. 추가로 ‘Do more with less’ 정신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작업을 한다. 같은 일을 보다 적은 인력으로, 같은 인력으로 보다 많은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실 실리콘밸리에서 이런 구조 조정과 인력 감축은 흔한 일이다. 지난 25년간 필자가 실리콘밸리에서 경험한 테크 업계의 사이클을 보면 수년마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돼 왔다. 호황에 시장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급격하게 인력을 늘렸던 테크 업계는 불황이 다가오면 늘어난 만큼 대규모 감원을 한다. 임의 고용 및 해고 문화(at will employment)가 자리 잡은 실리콘밸리에선 최소 2주 전에 예고만 하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직원을 해고할 수 있다. 퇴직금을 지급하는 기업도 있지만 꼭 그럴 의무도 없다. 인도·중국 등지에서 온 실리콘밸리의 이민자들에겐 해고 통보가 더 청천벽력 같을 수밖에 없다. 해외 취업 비자 문제로, 미국 내에서 다른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리 해고를 할 때는 통상적인 수순(playbook)이 있다. 매니저가 갑자기 1대1 미팅을 요청하고, 인사 담당자가 들어와 처우에 대해 설명해준다. 퇴직금은 얼마인지, 의료보험은 언제까지 유효한지 이야기해준다. 이런 회의실엔 보통 티슈와 생수병들이 놓여있다. 혹시 격앙될 수 있는 감정을 추스르는 데 도움이 되라고 둔 것이다. 그래서 ‘인사 담당자가 생수병과 티슈가 보이는 회의실로 부르면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농담도 있다. 미팅이 끝나면 당장 박스에 짐을 싸서 나가는 것이 보통이다. 회사 시스템에 연동된 계정과 출입증은 바로 정지된다. 아직도 원격 근무 중인 기업들이 많아 화상 회의로 정리 해고가 됐다는 황당한 에피소드도 가끔 들린다.

수없이 반복되는 해고 과정에서, 어떤 방법과 보상을 택하느냐에 기업의 평판이 갈린다. 이에 따라 향후 호황이 돌아왔을 때 고용이 쉬워질 수도, 어려워질 수도 있다. 지난 6월 미국 최대 암호 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Coinbase)가 직원의 18%인 1100명을 감원했는데, 그 방법은 실리콘밸리에서도 화제가 될 만큼 냉정했다. 해고 당일 오전, 회사 메일 계정이 바로 끊겼고 영문을 몰랐던 직원들은 추후 개인 메일을 통해 해고 소식을 접했다. 해고 대상 직원 대부분이 민감한 고객 정보를 접하고 있어 어쩔 수 없었다는 게 회사 측 입장이다. 이 업체가 추후 신규 채용을 할 때, 인재들이 이 회사를 어떻게 생각할지 두고 볼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실리콘밸리에서 정리 해고의 바람이 불고 있지만 미국 전체 고용 수요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미국 노동부의 최신 구직 보고서에 따르면, 7월에 무려 52만8000개의 신규 채용이 집계되어 코로나 발생 이전의 채용자 수를 회복하고 실업률도 코로나 발생 이전 수준인 3.5%로 낮아졌다. 테크 기업에서 정리 해고된 인력이 십 수만명 이상이지만 전체 인력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는 아직 큰 영향을 못 미치고 있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에선 새 직장을 찾을 때 서로 도와주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 해고한 직원들의 명단과 경력을 정리해, 신규 채용 중인 회사들에 돌려 참고하도록 하는 기업들도 많다. 시장 상황의 변화로 부득이하게 정리 해고한 직원들을 회사가 직접 챙기는 것이다. 이런 회사는 당연히 평판이 좋아 추후 신규 채용을 할 때도 지원자가 많이 몰린다.

한국의 수많은 스타트업도 위기 의식을 갖고 ‘긴 겨울’을 대비하고 있다. 국내 노동법상 실리콘밸리식 대규모 정리해고는 어려운 만큼, 신규 채용을 신중히 하며 조금씩 인력을 줄이고 있다. 이럴 때 내보내는 인력에 대한 각별한 배려와 관심이 필요하다. 언젠가 봄은 다시 온다. 어려울 때 직원을 어떻게 대했느냐가 기업의 평판을 높이고, 추후 채용 시 좋은 인력을 끌어들이는 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