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을 단죄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

[선우정 칼럼] 청와대 국민 개방에 ‘총독 관저’ 끄집어낸 비루한 역사관

최만섭 2022. 8. 3. 04:54

[선우정 칼럼] 청와대 국민 개방에 ‘총독 관저’ 끄집어낸 비루한 역사관

망한 왕조든 패한 권력이든 다시 독점할 수 없도록
집요하고 철저하게 국민의 공간으로 발전시키기 바란다

입력 2022.08.03 00:00
 
 
 
 
 
 
 
 
 

청와대 국민 개방을 조롱한 첫 문재인 정권 사람은 의전비서관이던 탁현민씨다. 그는 “일본이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었을 때도 ‘신민’들에게 돌려준다고 했다”고 소셜미디어에 썼다. 그들이 독점하던 청와대를 창경궁에, 국민에게 문을 여는 청와대를 동물원에, 그리고 윤석열 정부를 일제에, 국민 개방을 궁궐 모욕에 비유했다.

1902년 방치된 창경궁의 모습. 순종 즉위 이후 비어있던 창경궁 정원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어 백성에게 공개했다. 전각은 정비해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근대적 의미에서 궁궐의 대중적 변용과 개방은 백성에 대한 왕실의 계몽적 실천에 해당했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선 일반적으로 조선 왕실에 대한 일제의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탁씨의 주장은 상투적이지만 상당수가 사실로 받아들이는 속설이다. 일제가 궁궐에 동물원을 만들어 조선 왕실을 모욕했다는 것이다. “왕궁에 똥오줌내 풍기는 동물 우리라니?” 쉽게 말해 이런 얘기다.

탁씨는 작년 문 대통령을 따라 오스트리아 쇤부른 궁전을 방문했다. 이곳 정원에 국민 개방 244년째인 왕실 동물원이 있다. 탁씨도 안다. 문 대통령이 이 동물원 호랑이의 후원자가 됐다고 공개적으로 자랑했기 때문이다. 쇤부른 동물이라고 향기를 풍길 리 없다. 합스부르크 왕실이 모욕으로 여겼다면 동물원을 궁궐에 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파리 동물원은 베르사유 궁전의 왕실 동물원, 런던 동물원은 런던타워의 왕실 동물원이 모태다. 일본 국왕도 우에노 영지에 동물원을 만들어 개방했다. 모두 국민 안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

동물원은 근대 문명의 상징이다. 근대 이후 인간은 야수를 통제할 수 있게 됐다. 동물원은 지능과 문명의 힘을 증명하는 전시장이다. 그래서 계몽 사상에 심취한 유럽 왕실은 신기한 동물을 궁궐에 모았다. 합스부르크 왕실의 조찬 장소는 동물원이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자부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동물원을 국민에게 개방한 것도 계몽의 산물이다. 국민도 인간의 지능과 세상의 다양성을 체험하라는 것이다.

이러면 탁씨 같은 이들은 “일제가 잘했다는 얘기냐”고 말한다. 구한 말 일제 통감부가 먼저 창경궁의 변용과 개방을 권유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결정은 순종 황제가 했다. 이 결정을 임금이 모욕으로 여겼다는 증거는 없다. 황성신문은 “세계 문명의 진품을 전시해 국민의 지식을 계발한다”고 논평했다. 모욕이 아니라 군주의 계몽 행위로 본 것이다. 나중엔 “종묘도 개방하라”는 주장도 나왔다. 궁궐 개방에 대한 인식은 당시가 지금보다 훨씬 진보적이었다.

해방 후 한국은 창경원에 케이블카와 놀이기구를 덧붙였다. 신나게 놀았다. 그러다 창경원이 기능을 다할 무렵 “동물원은 왕실 모욕” 주장이 터져 나왔다. 그러면 38년 동안 궁궐을 놀이터로 소비한 우리는 무엇인가. 직관에 호소하는 ‘일제의 음모’ 주장은 그래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일본만 탓하면 공범 의식도, 논리적 반론도 사라진다. 모든 게 쉬워진다. 창경원은 질서있는 국민 공원으로 남았어야 한다. 그런데 ‘일제 모욕’ 논리에 망한 왕조를 위한 구중궁궐로 쉽게 되돌아갔다. 탁씨의 친일몰이가 노리는 결말도 이런 것이다.

 
1960년대 봄 창경궁 홍화문 앞 풍경. 창경원에 들어가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오른쪽 사진은 표를 구하려는 사람들로 난장판이 된 매표소 앞.

한국의 반일은 뒤죽박죽이다. 고이 보존된 창경궁 대온실이 말해준다. 일제가 만들었는데도 국가등록문화재 83호로 지정됐다. 식물원이면 국권 침탈의 원흉이 만들어도 문화재인가. 창경원 박물관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일제는 덕수궁에 새 미술관을 지었다. 똑같은 일제의 건축물인데 창경원 박물관은 일본식이라고 때려 부수고, 덕수궁 미술관은 서양식이라고 국립미술관으로 활용 중이다.

문체부가 청와대 옛 대통령 관저를 모형으로 만든다고 했을 때 민주당은 “총독 관저 부활”이라고 공격했다. 일제의 조선총독이 건물을 사용한 기간은 6년이다. 한국 대통령은 건국 후 42년 동안 사용했다. 한국의 42년은 기적의 역사, 일제의 6년은 패망의 역사다. 그러면 관저의 역사는 누구 것인가. 그런데 굳이 “일제 조선총독의 관저”라고 한다. 다들 탁씨 수준이다. ‘친일’로 몰면 손쉽게 청와대 국민 개방을 방해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제 통치기구의 건물이라 모형도 안 된다면 권력을 잡았을 때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옛 조선은행)과 서울도서관(옛 경성부청) 건물은 왜 박살내지 않았나.

지난 5월 청와대 국민 개방 첫날. 대중의 휴식 공간이던 창경원의 창경궁 전환 이후 정치 권력이 독점하던 공간이 국민의 안식처로 열린 것은 처음이다./인수위사진기자단

탁씨는 “청와대를 안 쓸 거면 우리가 그냥 쓰면 안 되나”라고 했다. 이게 본심일 것이다. 한 민주당 의원은 “다음 대통령이 들어갈 수 있게 청와대를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한말 창경궁 개방 때 권부의 양반들은 “궁궐에 찍힌 민중의 흙발을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이와 비슷한 심리일 것이다. 경복궁 후원이었기 때문에 구중궁궐로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지금 서울의 조선 5대 궁궐 면적은 140만㎡에 달한다. 도쿄 에도성과 비슷하고 베이징 자금성보다 훨씬 넓다. 망한 왕조의 공간에 무엇을 더 붙이려고 하나.

왕궁의 국민 공간화는 근대의 긍정적 유산이다. 정권의 부침에 상관없이 청와대 개방은 국민이 지지하는 윤 정부의 밝은 면이다. 망한 왕조든, 패한 권력이든 다시 독점할 수 없도록 더 집요하게, 철저하게 국민의 공간으로 발전시키기 바란다.

 
 
뉴스총괄에디터, 사회·국제·주말뉴스부장,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