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백영옥의 말과 글] [263] “어머, 나는 누구인가?”

최만섭 2022. 7. 30. 17:02

[백영옥의 말과 글] [263] “어머, 나는 누구인가?”

입력 2022.07.30 00:00
 
 
 
 
 
 
 
 

최근 서점에서 ‘어머, 나는 누구인가!’라는 독특한 제목의 책을 빼 들었다. 곧 잘못 본 제목이란 걸 깨달았다. 제목이 ‘어머니는 누구인가!’였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해 사람들은 ‘나’에 관심이 많다. ‘어머니’라는 단어조차 ‘나’라는 단어를 결코 이기지 못한다. 강연을 하면 가장 많이 요청하는 주제도 ‘나’일 때가 많다.

대개 사람들은 나를 ‘역할’로 생각할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모르겠고, 내가 힘든 건 은퇴나 휴직, 이직처럼 내 역할이 사라지고 변했거나, 부모 자식 노릇이 힘들 때다. 사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잘못된 질문에서 옳은 답이 나올 수 없듯 관념적인 질문에서 구체적인 답이 나오기는 힘들다. 그것이 ‘왜 사는가?’보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가 실용적인 이유다.

‘좋은 것’을 알기 위해서 전제되어야 할 건 ‘싫은 것’을 아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려면 ‘내가 무엇이 아닌지’부터 알아야 한다. 법원 밖에서 나는 판사가 아니고, 학교 밖에선 내가 교수가 아니듯 역할이 내 본질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지 몰라서 혼란스럽다면 나는 무엇이 아닌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자. ‘나 아닌 것’을 하나씩 들어내다 보면 불순물이 걷히고 마지막엔 ‘자신이고 싶은’것들이 남는다. 무엇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갑자기 내게 찾아 왔다는 건, 이제야 말로 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뜻이다. 나를 아는 건 이처럼 힘든 일이다.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모방할 때가 많다. 그러므로 “나를 가슴 뛰게 하는 일을 하라”는 말 역시 경계해야 한다. 그것이 타인의 욕망을 모방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담해보면 의대에 가고 싶다는 욕망이 부모님의 바람인지 내 소망인지 혼란스러워하는 청소년도 많다. SNS(소셜미디어)에 올리는 ‘나’ 역시 ‘실제의 나’가 아니라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가 아니던가. 가끔은 일기장에조차 누가 볼까 거짓말을 하는 게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