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사설] ‘삼성 반도체 미국 공장 11곳 건설’ 뉴스에 경각심 가져야 할 까닭

최만섭 2022. 7. 23. 11:26

[사설] ‘삼성 반도체 미국 공장 11곳 건설’ 뉴스에 경각심 가져야 할 까닭

조선일보
입력 2022.07.23 03:14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시에 있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 전경. /삼성전자

삼성전자가 20년간 250조원을 투자해 미국 텍사스주에 반도체 공장 11곳을 신설하겠다는 계획서를 텍사스 주정부에 제출했다. 이미 반도체 공장 2곳을 운영 중인 오스틴시에 2곳을 추가하고,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는 테일러시에도 9곳을 더 짓겠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미국 언론에 보도되자 삼성 측은 “올해 말 종료되는 재산세 감면 혜택을 연장하고 추가 지원을 미리 확보하기 위한 예비 절차일 뿐”이라며 실제 투자 여부는 미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반도체 한 품목으로만 한국 전체 수출에서 약 13%의 비율인 삼성전자가 한국 아닌 미국에 이 정도의 대규모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경각심을 가져야 할 일이다.

현재 삼성의 반도체 주력 생산 기지는 한국이다. 중국 시안 공장에선 기술 난도가 낮은 낸드 메모리를, 미국 오스틴 공장에선 14나노 이상의 저부가가치 반도체를 주로 생산한다. 7나노 이하 초미세 공정이나 극자외선(EUV) 공정 등은 모두 국내에 있다. 그런데 만약 삼성이 미국에도 첨단 생산라인을 세울 계획을 갖고 있다면 한국의 반도체 산업 생태계가 달라질 수 있다. 삼성은 결정된 것은 없다지만 미 정부의 반도체 산업 육성 의지가 워낙 강하다.

바이든 정부는 압도적 반도체 원천 기술과 반도체 장비 경쟁력을 바탕으로 미국을 반도체 생산 기지로 만들겠다는 전략 아래 삼성전자와 대만 TSMC 공장 상당 부분을 미국 영토 안으로 가져오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세금을 대폭 감면해 주고 보조금을 주는 등 파격적 지원 법안을 만들었다. 미국 텍사스주가 재산세 10년 감면, 일자리 창출 보조금 지원 등 엄청난 혜택을 제시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유치한 것도 이 일환이다.

 

삼성전자가 국내 공장을 지을 이유는 점점 적어진다. 주민 반발로 삼성 공장 송전선이 4년 동안 연결되지 못했다. SK하이닉스는 부지 문제로 2년간 착공이 지연됐다. 세계가 저마다 파격적 반도체 육성법을 만들자, 문재인 정부도 반도체 특별법을 만들었지만 알맹이 없는 내용이었다. 기업들은 수도권 대학 반도체 학과 정원 확대와 주 52시간 근무 예외 조항 등을 요청했지만 국회가 가로막았다.

윤석열 정부는 반도체 인력 15만명 육성 계획을 내놓고, 반도체 특위까지 만들어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 용지·용수·전력 등 인프라와 세제·규제 환경, 인력 공급 등 한 나라의 총체적 역량이 동원돼야 하는데 한국은 모든 면에서 경쟁국에 뒤지고 있다. 이대로면 ‘미국 내 삼성 반도체 공장 11곳 건설’이 현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