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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완의 사이언스 카페] 120년 전 영화처럼 우주선 박힌 달

최만섭 2022. 7. 19. 05:33

이영완의 사이언스 카페] 120년 전 영화처럼 우주선 박힌 달

입력 2022.07.19 03:00
 
 
 
 
 
그림=이철원

보름달은 늘 힘껏 뛰어오르면 닿을 것처럼 보인다. 1902년 프랑스의 마술사 조르주 멜리에스가 사람들의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14분짜리 ‘달 세계 여행’이란 제목의 영화를 개봉한 것이다. 5분 이내 짧은 활동사진이 대부분인 시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대작이었던 셈이다.

영화는 1865년 쥘 베른이 쓴 소설 ‘지구에서 달까지’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거대한 대포로 과학자들을 태운 우주선을 달로 발사한다. 오른쪽 눈에 포탄처럼 생긴 우주선이 박힌 채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유명한 달의 얼굴이 이 영화에서 나왔다. 과학자들은 달나라 외계인에게 납치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대포알 우주선을 타고 달의 절벽에서 뛰어내려 지구의 바다로 탈출한다.

지금 상식으로는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획기적 상상력이었을 것이다. 특히 이 영화에서 정지한 물체를 조금씩 이동하며 찍어 마치 실제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스톱 모션 같은 특수 촬영 기법도 처음 고안됐다. 영화계는 내용과 형식 모두 ‘달 세계 여행’이 최초 공상과학(SF) 영화라고 평가한다.

 
1902년 프랑스에서 개봉한 영화 '달 세계 여행'./위키미디어

그때부터 120년이 흐른 지난 3월 달이 다시 눈을 찌푸릴 사건이 일어났다. 달 뒷면에 무게 3t의 로켓 잔해가 시속 9300㎞로 부딪힌 것이다. 지난 6월 25일 미 항공우주국(NASA)은 ‘달 정찰궤도선(LRO)’이 달 뒷면에서 로켓 잔해가 만든 충돌구를 촬영한 사진을 공개했다. 지름 18m에 이르는 동쪽 충돌구가 지름 16m의 서쪽 충돌구와 맞닿은 모습이었다.

문제의 로켓 잔해는 당초 2015년 2월 미국의 ‘심우주 기상위성(DSCOVR)’을 쏘아 올린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으로 지목됐다가 나중에 2014년 10월 23일 발사한 중국의 창정(長征)-3C 로켓으로 정정됐다. 중국은 아직도 “로켓 잔해는 지구 대기로 들어와 완전히 불타 사라졌다”고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나사(NASA) 과학자들은 이전에 로켓 잔해가 충돌해서 생긴 구명은 보통 하나지만 이번에는 특이하게 둘이라는 사실이 출처를 밝힐 단서가 될 것이라고 본다.

달에는 5억 개가 넘는 충돌구가 있다. 대기가 희박해 우주에서 날아온 물체가 그대로 표면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지구 같으면 운석이 날아와도 대기와 마찰하면서 불타 사라진다. 별똥별이 바로 운석이 마찰열로 불타는 모습이다. 우주선 잔해 같은 인공물도 마찬가지다. 이런 달에 로켓 잔해가 하나 더 충돌했다고 당장 큰 일이 나는 것도 아니다. 최근 개봉한 어느 영화처럼 달이 공전궤도를 벗어나 지구로 충돌하려면 달만큼 커다란 천체에 부딪혀야 가능한 일이다.

과학자들은 충돌 충격보다 오염 가능성을 더 우려한다. 나사는 화성 탐사선을 보낼 때 지구 생명체가 외계 생태계를 오염시킬 가능성에 대비해 우주선을 철저히 소독한다. 하지만 달은 예외다. 이미 생명체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아폴로 우주인들이 장내 세균이 들어 있는 배설물 봉지 96개를 달에 두고 온 것도 그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사건은 인공물로는 처음으로 전혀 의도하지 않은 충돌 사례였다. 미국은 과거 아폴로 달 탐사에 쓴 새턴5호 로켓 일부를 일부러 달에 떨어뜨렸다. 우주선을 달에 충돌시키고 이때 공중으로 떠오르는 물질을 분석하기도 했다. 모두 충돌을 미리 알고 준비했지만 이번 충돌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만약 중국 로켓 잔해에 독성 물질이나 지구 미생물이라도 있었다면 문제가 된다.

실제로 지난 2019년 4월 발사한 이스라엘의 무인 달 탐사선 베레시트가 물곰 수천 마리를 가지고 갔다가 달에 추락해 논란을 일으켰다. 물곰은 1㎜ 정도로 작은 동물이지만 우주 방사선에 쬐어도 살아남아 ‘지구 최강 동물’이라고도 부른다. 달에서 예전에 몰랐던 물까지 찾은 마당에 생명체가 없다고 단정하고 마음대로 행동할 수는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최근 달이 반세기 만에 다시 북적이고 있다. 미국 주도의 유인(有人) 탐사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고 러시아와 일본도 올해 달에 탐사선을 보낸다. 국제사회가 인간에 의한 달 오염 문제를 심각하게 논의할 때가 온 것이다.

이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오는 8월 3일 달에 궤도선 ‘다누리’를 발사한다. 지구 저궤도만 바라보던 한국의 우주개발이 심우주로 활동 무대를 확장한다.

영화 ‘달나라 여행’이 개봉하던 1902년, 대한제국은 엄청난 예산을 들여 고종의 즉위 40주년 기념 잔치를 열었고, 소나무 껍질로 연명하던 백성들은 더는 이 땅에서 살 수 없어 처음으로 하와이 이민을 떠났다. 120년 만에 이제 우리도 세계인과 똑같이 달나라 여행을 꿈꾸고 달을 걱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997년 이후 줄곧 과학 분야만 취재하고, 국내 유일 과학기자 기명칼럼인 ‘이영완의 사이언스카페’에서 자연과 역사, 문화를 과학으로 풀어내길 좋아하는 이야기꾼, 이영완 과학전문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