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송의달 에디터의 Special Report] 하루 3건씩 ‘규제’ 쏟아내는 국회… 경제 활성화 막는 최대 걸림돌

최만섭 2022. 7. 7. 04:53

 

[송의달 에디터의 Special Report] 하루 3건씩 ‘규제’ 쏟아내는 국회… 경제 활성화 막는 최대 걸림돌

퇴행하는 한국 국회

입력 2022.07.07 03:00
 
 
 
 
 

기업은 2류, 정치는 4류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5년 한 말이다. 한국 국회의 후진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더 심화하는 양상이다.

일례로 국내외 경제 지표가 사상 초유의 복합 위기를 가리키던 지난달, 정치의 장(場)인 국회에서 법안 심의와 처리는 전무(全無)했다. 원 구성 협상 결렬로 국회가 36일 동안 문 닫은 탓이다. 그런데도 의원들은 1285만여원의 세비를 받아갔고, 50여 명은 해외 외유를 떠났다.

더 심각한 것은 국회가 한국 경제에 도움은커녕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 활성화에 필수적인 혁신은 억누르고 자유시장 질서를 깨는 방향으로 국회가 퇴행(退行)하고 있어서다.

◇‘실적 부풀리기’ 법안 많아

외관상 한국 국회는 ‘일하는 국회’이다. 20대 국회 4년간 의원들이 발의(發議)한 법안 수는 20년 전(15대)보다 20배 넘게 증가했다. 지금 추세라면 21대에는 3만개 넘는 법안이 발의돼 주요국 중 최다(最多) 법안 발의 국회가 될 전망이다. 매년 본회의에서 통과되는 법안 수(2200건)도 영국(31건)의 79배에 달한다.

하지만 실상은 딴판이다. 김준경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국회 법안 중 비슷한 내용을 쪼개거나 문구나 표기만 고쳐 개정 법안을 발의하는 ‘실적 부풀리기’가 너무 많다. 진지한 숙의·검토 없는 부실 입법이 급증하고 있다”고 했다. 2019년에는 하루에 185건의 법안이 접수되고, 다른 날에는 199건이 무더기 통과되기도 했다.

홍대순 글로벌전략정책연구원장은 “20대 국회 4년간 위헌 법률이 47개 나왔다. OECD 회원국 중 위헌 법률이 한 해 5건 이상 나온 국가는 한국뿐”이라고 했다.

이런 현상은 10인 이상 국회의원만 동의하면 보름 안에 법안 제출이 가능한 데다, ‘법안 숫자’를 의정 활동 및 공천 평가의 척도로 삼고 있는 탓이 크다. 정부 입법은 입법 예고, 청문회 등 8단계를 거쳐 국회 제출에만 반년 정도 걸린다. 급조된 ‘저질(低質) 법안’이 범람하다 보니, 15대 국회 때 40%이던 의원 발의 법안 가결률은 최근 10%대로 떨어졌다.

더 큰 문제는 많은 법안이 의원 개인과 정당의 이익에 따라 양산된다는 점이다. 강성진 고려대 교수는 “국회의원들이 많은 표를 가진 노동조합, 이익단체, 시민단체에 포획돼 기업과 부자(富者)를 때리고 자유시장 경제를 훼손하는 반(反)기업·규제 법안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고 했다.

2020년 12월 통과된 일명 ‘기업규제 3법’(공정거래법·상법·금융그룹감독법)이 대표적이다. 이 법은 의원입법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규제 영향 평가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의원 발의로 2020년 3월 본회의를 통과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타다금지법)은 4차 산업혁명시대 신기술 서비스를 향유할 국민 권리는 물론 기업인의 혁신 성장 의욕까지 꺾었다.

프리랜서 드라이버 조합 설립추진위원회 회원들이 2019년 12월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타다 금지법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조선일보DB

◇혁신 억압하고 규제·퍼주기 늘려

최근 들어 규제 강화 법안은 시장 친화 성향 법을 양(量)과 질(質)에서 압도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의원 발의 법안 중, 정부가 분류한 규제 법안만 4137건으로 하루 평균 2.8건에 달했다. 이는 직전 박근혜 정부 때(1313건) 보다 3배 넘게 늘어난 것이다.

‘선심성(善心性) 퍼주기’ 법안도 넘쳐난다. 올 5월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153개 법률을 분석한 결과, 향후 5년간 73조여원의 추가 재정 부담이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다 보니 정치권 일각에선 ‘폐법부(廢法部)’를 만들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규제 개혁 효과를 내려면 국회가 만든 악법(惡法)을 없애고 수술할 전담 조직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정치인들이 처벌 수위를 경쟁적으로 높인 법안을 내놓는 것도 경제에 부정적이다. 올 1월 말 시행된 중대(重大)재해처벌법은 ‘사업주에 1년 이상 징역형’이라는 세계 최강의 처벌 조항을 못 박았다. 하지만 올 상반기 산업재해 사망자는 전년과 비슷하고, 이 법으로 처벌된 최고경영자(CEO)는 여태 없다.

배상근 전경련 전무는 “의원들이 형벌 만능주의에 빠져 세계에서 유일한 법안을 만든 결과, 책임 규명이 힘들어 법이 현실을 겉돌고 있다”고 했다.

◇산업 경쟁력 약화 초래

경제 논리를 무시하는 입법 독재도 횡행한다. 작년 2월 말 당시 여당이 전격 통과시킨 ‘가덕도특별법’이 그렇다. 부산시장 보궐 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국책사업으로 진행 중이던 김해공장 확장안을 폐지하고, 2016년 동남권 신공항 후보지 평가에서 최저점을 받은 곳으로 돌연 바꾼 것이다.

신공항 건설이 추진 중인 부산 강서구 가덕도와 부산항 신항/연합뉴스
가덕도 신공항

국회는 공청회 등을 생략하고 한 달여 만에 ‘검수완박법’을, 아동학대 처벌법인 ‘정인이법’은 6일 만에 각각 전광석화처럼 처리했다. 그러나 2011년 말 정부가 발의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11년째 썩히고 있다. 최대 30만명 고용 효과가 예상되는 이 법의 불발로 우리나라 서비스산업 경쟁력은 OECD 38국 중 28위로 떨어졌다. 정치인들이 경제 현실에는 눈감고 ‘표(票) 얻기’에만 매달린 결과이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는 “한국 국회의원들은 현장과 동떨어진 채 상임위원장 배분, 사개특위 같은 자기들만의 다툼에 빠져 있다”며 “이들이 경제 활성화에 나서도록 언론과 시민단체가 국회의원에 대한 상시(常時) 감시·평가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안 줄이고 경제에 해악 끼친 의원들 공개해야”

“국회가 규제 악법을 홍수처럼 쏟아내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정부의 규제 개혁 노력은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

상법 전문가인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지금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 지지층과 표를 얻을 목적으로 법안을 마구잡이로 찍어내고 있다. 입법은 국회의원들의 오락거리가 됐다”고 했다.

최준선 교수 제공

그는 “자기 돈 한 푼도 들이지 않은 채 국회의원들은 국민과 기업에 덤터기를 씌우는 입법 놀음에 빠져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 국회에서 탄생하는 법안은 규제 대상이 아니던 것을 새로 규제하거나, 국민 재산을 강제로 빼앗아 나눠주는 것, 기존의 규제·처벌을 더 강화하는 것 등 세 유형뿐이다. 사전(事前) 품질관리와 사후(事後) 규제 영향 평가를 전혀 받지 않는 무소불위 국회의 폭주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최 교수는 “일본에서는 법안을 철저하게 검증해 국회의원들이 엉터리로 법을 만들었다가는 다음 선거에서 떨어진다”며 “그러나 한국 국회는 포퓰리즘적 법률을 마구잡이로 만들고 통제·검증 없이 통과시킨다”고 했다.

그는 “한국 국회의 잘못된 행태를 고치려면 의원 입법 범람을 조장하는 ‘행정규제기본법’ 3조1항을 개정해 법안 수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이 조항은 의원입법에 대해 자체 심사, 공청회, 입법예고 같은 의견 수렴 절차를 모두 건너뛸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최 교수는 “시민단체 주도로 ‘의원 입법 평가기관’을 만들어 법안 숫자가 아니라 ‘경제 살리기에 가장 기여한 의원’ ‘가장 해악을 끼친 의원’ 순위와 명단을 공개해 망신주기를 하는 등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선일보에서 홍콩특파원, 디지털뉴스부장, 산업1부장, 오피니언 에디터, 선임기자로 일했고 조선비즈에서 대표이사(CEO)로 근무했습니다. 저서 : <뉴욕타임스의 디지털 혁명>(2021), <세상을 바꾼 7인의 자기혁신 노트>(2020),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의회>(2000)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