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강경희 칼럼] 착한 집주인, 못된 집주인, 착할 뻔한 못된 집주인

최만섭 2022. 7. 4. 08:27

 

[강경희 칼럼] 착한 집주인, 못된 집주인, 착할 뻔한 못된 집주인

상생 임대인으로 상생 되겠나
미봉책 불과할 뿐
정부는 부동산 해결사 못돼
여야 협치로 부동산 세제, 제도 손질하고
부동산 정치는 종식해야

입력 2022.07.04 03:20
 
 
 
 
 

윤석열 정부가 첫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6·21 대책 가운데 특히 문의가 쏟아진 것이 ‘상생(相生) 임대인’ 제도다. 새롭게 선보인 정책은 아니다. 2년 전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임대차 2법을 강행해 임대시장을 흔들었다. 기존 세입자한테 2년 더 살 권리를 주고(계약갱신청구권제) 임대료 인상도 5%로 제한하니(전월세상한제) 신규 세입자들이 껑충 뛴 가격을 부담해야 했다. 2년마다 시세가 반영되던 시장이 4년 주기의 경직된 시장으로 바뀌니 미래 가격과 시간 비용이 과하게 선(先)반영된 탓이다. 작년 말 문재인 정부에서 말 많고 탈 많던 임대차 2법의 보완책으로 상생 임대인 제도를 내놨는데 요건이 까다로워 별 주목을 못 받다 새 정부에서 요건을 완화하니 관심이 높아졌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강남·송파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뉴스1

상생 임대인은 ‘더불어 사는’ 착한 집주인이라는 뜻이다. 임대료를 시세대로 다 받지 않고 5% 이내로 올리고 몇 가지 요건을 갖추면 해당된다. 1주택자 비과세에 필요한 ‘2년 실거주’ 요건을 면해주는 혜택이 주어진다. 임대료를 시세대로 올려받으면 상생 안 하는 못된 집주인으로 귀결되는 고약한 논리 구조를 갖고 있긴 하나 그래도 정책이 효과를 내기만 한다면야 시행 못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상생 임대인의 길이 좁고 알쏭달쏭해 효과는 미지수다. 가령 전셋값이 올라갈 이유가 없는 곳인데도 갖고 있는 집마다 5% 올려받은 다주택자는 정부 공인 착한 집주인이다. 반면 상생 집주인 되겠다고 5% 이내로 올렸는데 세입자 사정으로 일찍 나가버려 기한 요건을 못 채우면 상생 임대인 탈락이다. “나 착한 집주인 맞냐”고 문의가 쏟아지니 정부는 인정, 불인정 도표를 올려놨다.

사람은 욕망, 이기심, 질투, 양심, 절제, 연민이 뒤엉킨 존재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욕망과 이기심을 죄악시하지 않고 자유로운 이익 추구와 사유재산의 소유를 인정한다. 다만 그 이기심이 타인의 권리와 재산을 침해하지 않는 수준으로 절제해서 발휘돼야 한다. ‘착한’ ‘상생’ 같은 선의의 단어를 내세운다고 착한 정책이 되는 건 아니다. 진짜 착한 제도, 착한 정책은 시장의 투명성이 높아 정보의 비대칭성이 적어야 하며, 누구나 쉽게 지킬 수 있도록 명료하고 원칙도 분명해야 한다. 그러면 선량한 시민이 는다. 정부 잣대와 정책이 복잡하고 자의적이며 수시로 바뀌어서 끊임없이 계산기 두들기고 요리조리 허점을 피해야만 이득 보는 구조라면 아무리 선의의 정책인 것처럼 포장해도 꼼수와 이기심이 더 난무한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시장에서 불신받고 참패한 이유도 이런 기본 원칙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개입해 생태계 교란자가 됐기 때문이다. 착한 정부인 양했는데 고약한 결과를 낳았다. 집 사면 투기꾼, 전세 끼고 집 사면 갭 투기꾼으로 몰았다. 지금 당장 들어가서 살 집만 사라며 대출을 막았다. 양도세 부과 기준이 너무 복잡해져 세무사도 두 손 들었다. 임대시장도 마찬가지다. 10억 세입자는 약자이고 3억 집주인은 강자인가. 내 집 세 주고 남의 집 세 들어 사는 집주인이자 세입자도 얼마나 많나. 이런 곳에 정의의 사도인 양 등장해서 세입자를 보호한답시고 법도를 휘두르다 임대료를 급등시키고 되레 세입자 부담을 늘려놨다. 뒤늦게 집주인에게 어정쩡한 당근책을 내밀고 상생 임대인으로 인정해 주겠다고 했다.

문 정부 부동산 정책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윤 정부는 땜질 대책을 물려받아 ‘착한 집주인’ ‘착할 뻔하다 상생 못한 집주인’ 등으로 여러 갈래가 나뉘는 복잡다단한 미봉책을 내놨다. 거대 야당 반대로 임대차 2법의 대수술은 당장 힘들고, 어떻게든 임대시장 대책은 내놓아야 하니 만든 고육지책이겠으나 급하다고 바늘 허리에 실 꿰는 식으로 대책을 내다가는 문 정부의 전철을 밟는다. 꼬일 대로 꼬인 부동산 제도만 더 복잡하게 만들고 효과는 별로 못 내며 시장의 신뢰를 잃게 된다.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은 정부가 마구 개입해 규제의 냉·온탕을 거듭하다가 이념 세제까지 가미돼 국민이 현기증 나도록 상하좌우 흔들려왔다. 협치가 필요한 국정 과제가 한둘이 아니지만 국민의 주거 안정과 직결된 만큼 부동산 세제, 제도부터 제발 여야가 머리 맞대고 이 엉망진창을 지속가능, 예측가능하게 손질해주기 바란다. 무엇보다 정부가 전지전능한 부동산 해결사가 못 된다는 사실부터 자인해야 할 것이다. 1주택자는 괴롭히지 말고, 젊은이가 형편껏 대출받아 집 사고 두고두고 갚을 수 있게 부동산 금융을 선진화하며, 부동산의 많은 부분을 시장에 맡기고, 정부는 주거 취약층 보호에 주력하겠다는 등의 큰 원칙만 세워도 문제의 절반은 풀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