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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완이 만난 사람] “강소기업들과 함께 전력 다하면 세계시장 10% 차지할 수 있을 것… 누리호 성공 본 청소년들이 미래 우주강국 이뤄주길”

최만섭 2022. 6. 27. 05:11

[이영완이 만난 사람] “강소기업들과 함께 전력 다하면 세계시장 10% 차지할 수 있을 것… 누리호 성공 본 청소년들이 미래 우주강국 이뤄주길”

누리호·달탐사선 개발 주도, 이상률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

입력 2022.06.27 03:00
 
 
 
 
 
이상률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은 지난 24일 본지 인터뷰에서 “국내에서 누리호 기술이 민간에 이전되고 우주 스타트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민간 주도의 뉴스페이스 시대에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지난 21일 오후 4시 우리나라가 독자 개발한 한국형 우주 발사체 누리호가 화염을 내뿜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누리호는 목표 궤도인 700㎞에 성능 검증 위성을 진입시켰고, 22일 오전 3시 2분 위성과 지상국의 양방향 교신도 성공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실용 인공위성을 자력 발사할 수 있는 세계 7번째 국가가 됐다.

누리호는 1.5t급 실용 위성을 지구 상공 600~800㎞ 궤도에 올릴 수 있도록 한 3단 발사체다. 항우연 주도로 2010년 3월부터 1조9572억원을 들여 독자 개발했다. 2013년 발사한 첫 우리나라 우주발사체인 나로호는 러시아제 1단을 썼지만 누리호 1단은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한 75t급인 액체연료 엔진 4기로 구성됐다.

이상률 항우연 원장은 지난 24일 서울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처음 연구소에서 우주발사체를 개발하다가 유학 후 위성 개발로 돌아서는 바람에, 그동안 발사체 개발하느라 고생하는 동료들에게 마음에 빚이 있었는데 이제 좀 편해진 느낌”이라며 “누리호 성공으로 세계 7번째로 위성 자력 발사 국가 반열에 올라섰다는 건 맞는 말이지만 6등(인도)과의 격차가 엄청 큰 7등이라는 점에서 가야 할 길이 멀다”고 했다.

6등과 엄청난 격차 있는 7등 올라”

-세계 7번째 수준은 어느 정도로 봐야 하는가.

누리호는 고도 700㎞에 1.5t 무게, 좀 개량하면 2t 가까운 무게의 위성을 쏠 수 있다. 그 정도로 꽤 괜찮은 발사체인 건 맞지만 외국과 위성 발사 수주 경쟁을 벌이거나 달 탐사에 나서기에는 아직 부족한 게 많다. 6등 바로 뒤에 붙은 7등이 아니라 6등에 한참 뒤처진 7등이 맞는 표현이다.

-앞으로 누리호 일정은 어떻게 되나.

한국형 발사체 고도화 사업이라는 형태로 2027년까지 누리호를 네 번 더 발사한다. 앞으로는 민간이 누리호 제작과 발사를 주도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올해 하반기 내년 3차 발사를 위한 체계종합기업을 선정한다. 체계종합기업으로 선정된 기업은 항우연이 보유한 기술을 이전받는다. 3차 발사 때부터 발사 운용, 4차 발사 때는 제작부터 민간이 주도하고 항우연은 기술 지원을 맡는다.

-누리호 4회 추가 발사에는 어떤 위성이 실리나.

1차는 더미(가짜) 위성만 실었고 이번 2차에는 성능 검증 위성과 더미를 실었다. 이제는 가급적 더미는 싣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 더미 대신 무엇을 실을지 내부적으로 준비를 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단순한 위성이 아니라 우주 궤도에서 기동을 하는 비행체, 즉 우주 비행기도 생각할 수 있다. 고도화 사업 기간에는 힘들어도 연구를 병행하다 보면 민간이 나중에 누리호로 그런 우주 비행기를 발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는 8월 발사되는 한국 달 궤도선(KPLO)의 상상도. 이상률 항우연 원장은 달 궤도선의 새로운 비행경로를 제시해 연료 부족 문제를 해결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2030년대 달 착륙선 발사도 누리호가 하나.

지금 누리호도 고체 로켓을 추가하면 무게 700kg대의 달 탐사선은 발사할 수 있다. 하지만 지구 저궤도 위성 발사에 한정되지 않고 더 높은 고도의 정지궤도 통신위성도 쏘고 달 탐사도 할 수 있도록 추진력을 더 키운 새로운 발사체로 진화해야 한다. 내년부터 오는 2031년까지 총 1조9330억원이 투자되는 차세대 발사체 개발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가 진행 중이다. 차세대 발사체는 100t급 엔진 5기와 10t 엔진 2기를 탑재한 2단 발사체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차세대 로켓은 1.8t 무게의 달 탐사선을 쏠 수 있다.

-누리호 후속 발사체도 계속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하나.

나로우주센터는 발사 방향 때문에 고도 3만6000㎞까지 올라가는 정지궤도위성은 못 쏜다. 우리가 정지궤도위성을 쏠 수 있는 방법은 다른 발사장을 확보하는 방법밖에 없다. 제주도 남단 아니면 선박 형태의 해상 발사장이 필요하다.

소형 위성·발사체 주목받는 뉴 스페이스

-누리호 개발에 300여 기업이 참여한 것을 보면 이제 우리나라도 민간 주도의 이른바 뉴 스페이스(new space)로 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국내 기업들이 개발하는 발사체를 보면 지금까지 우주발사체보다 훨씬 크기가 작다. 왜 그런가.

핵심적인 질문이다. 하지만 원리는 간단하다. 발사체 임무는 위성을 쏘는 것이다. 프랑스가 처음 만든 스파이 위성은 몇t 무게에 해상도가 10m(지상의 가로세로 10m를 위성 영상에서 한 점으로 인식)였다. 그런데 지금 미국의 블랙 스카이가 개발한 위성은 무게 65kg에 불과한데 해상도가 50cm이다. 과거 집집마다 장롱에 커다란 카메라를 모셔두고 귀하게 다뤘지만 지금은 각자 스마트폰으로 과거 카메라보다 더 높은 해상도의 사진을 찍는 것과 마찬가지다.

 

-위성이 작아지니 소형 발사체 시장도 큰다는 말인가.

그렇다. 이번에 나로호의 성능 검증 위성에 실려간 큐브 위성들도 무게가 수kg으로 과거엔 교육용으로만 썼지만 지금은 전자 장비의 발전 덕분에 과거 대형 위성이 하던 일도 한다. 이들이 대형 발사체라는 쾌적하고 럭셔리한 버스에 대형 위성과 같이 타고 갈 수도 있지만 발사 일정을 잡기 쉽지 않다. 이제는 소형 위성을 원하는 때 바로 수송해주는 전용차가 생긴 셈이다. 미국의 우주 기업 아스트라는 컨테이너에서 일주일 만에 준비가 가능한 소형 발사체를 개발했다.

우주 기술로 기업의 기술 한계 극복해야

-우주가 우리나라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나.

과거 반도체나 자동차, 조선은 우리가 집중 투자해서 가격 우위로 선진국을 따라잡았지만 우주는 다품종 소량 생산이라 그런 전략이 통하지 않는다. 또 나라가 휘청거릴 정도로 우주에 대규모 투자를 할 수도 없다. 그래서 과거엔 아무리 쫓아가도 거리가 좁혀지기는커녕 더 벌어지는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소형 위성·발사체가 나오면서 대형 회사의 독점 구조가 깨지고 있다. 세계 우주 시장에서 지금은 우리나라가 1%도 차지하지 못하지만 앞으로는 3%, 5%, 10%까지는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업들이 우주에서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말인가.

당장 수익보다 장기적 이익을 노릴 수 있다. 우리나라에 강소 중소기업이 많다. 이들 기업이 극한 환경인 우주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다면 기술의 수준을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다. 극한 우주 기술 개발에 성공하면 세계 시장에서 기술 기업으로서 이미지도 크게 높일 수 있다. 누리호 개발에 참여한 300여 기업도 분명 이렇게 접근했을 것이다.

우주청이 전략 세우고 연구 기능 강화

-우리나라도 지금까지 우주개발과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다.

우주개발에는 항상 정부가 만든 계획이라는 지침서가 있었다. 이제는 다르다. 우주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우주 시장도 바뀌는데 한 길만 보고 갈 필요는 없다. 항우연도 이전처럼 발사체, 항공, 위성 분리하지 말고 통합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우주 비행기는 항공 분야와 위성, 발사체 연구원들이 다 모여 연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미국의 나사(NASA·항공우주국) 같은 정부 조직이 필요하지 않나. 대통령도 누리호 발사 성공 직후 우주청 신설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지금은 우주청의 위치만 두고 논란이 벌어지는데 사실은 내용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 나사는 정부 조직이지만 독일의 항공우주센터(DLR)나 일본의 항공우주연구개발기구(JAXA)는 민간 조직에 가깝다. 각자 역할도 조금씩 다르다. 우리 실정에 맞는 우주청을 만들어 우주 정책과 전략, 예산 확보를 맡게 해야 한다.

-그렇다면 누가 누리호 같은 발사체를 개발하나.

항우연이 우주 관련 모든 기술을 개발할 수 없다. 위성만 해도 전자통신연구원(ETRI)과 카이스트 인공위성센터도 연구한다. 표준과학연구원이나 기계연구원, 원자력연구원에서도 우주 기술을 개발한다. 고체로켓은 국방과학연구소가 개발했다. 우주청은 이들을 억지로 헤쳐 모여 식으로 모으기보다 각자 독자 연구를 하면서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 우주개발 이끌 누리호 키즈

-뉴 스페이스를 이끄는 억만장자인 제프 베이조스는 어릴 때 아폴로 우주선 발사를 보고 우주에 대한 꿈을 키웠다고 한다. 누리호도 그런 역할을 할까.

누리호 개발에 참여한 한 젊은 연구원은 고등학생 때 나로호 발사를 직접 보며 우주 개발자의 꿈을 키웠다고 했다. 이번 누리호 발사를 본 청소년이 나중에 새로운 발사체를 개발할지도 모른다. 인간의 지식이 아무리 발전해도 우주는 다 알지 못할 것이다. 44년 전에 발사한 보이저호가 이제 겨우 태양계를 벗어났다. 할 일이 무궁무진하고 늘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니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1997년 이후 줄곧 과학 분야만 취재하고, 국내 유일 과학기자 기명칼럼인 ‘이영완의 사이언스카페’에서 자연과 역사, 문화를 과학으로 풀어내길 좋아하는 이야기꾼, 이영완 과학전문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