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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친과 칼부림도 벌였다…10대 래퍼 지인 9명 죽인 '악마약'

최만섭 2022. 6. 27. 05:31

남친과 칼부림도 벌였다…10대 래퍼 지인 9명 죽인 '악마약'

중앙일보

입력 2022.06.27 05:00

업데이트 2022.06.27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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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몸 시림. 식욕 저하. 구토. 오한. 피부 바로 밑에서 벌레가 기어 다니는 느낌. 열흘 넘게 화장실에 갈 수 없는 변비. 발작. 심정지 4번….”

2019년 19세였던 래퍼 사츠키(본명 김은지)가 아편(Opioid)계열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에 중독되면서 지난해 7월까지 겪었다는 금단현상이다.

2022년 6월 23일 래퍼 사츠키(본명 김은지)가 서울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민중 기자

[10代 마약공화국②] 10대 때 펜타닐 중독…래퍼 사츠키 인터뷰

펜타닐은 10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마약류 중 하나다. 펜타닐은 주사약뿐만 아니라 패치 등 다양한 형태로 의사의 처방이 있으면 구입이 가능한 의약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향정신성의약품 펜터민(암페타민)이 주성분인 식욕억제제 디에타민과 더불어 지난해 검거된 10대 마약류 사범을 역대 최대인 450명에 이르게 한 주요 원인으로도 지목된다.

사츠키는 지난 23일 서울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통해 “펜타닐의 금단현상은 한마디로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는 ‘좀비’가 되는 건데 다시 펜타닐을 하면 거짓말처럼 괜찮아진다”라며 “하지만 괜찮은 건 잠시, 곧 지옥 같은 고통이 찾아온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펜타닐은 사탄, 악마”라고 했다.

펜타닐 중독의 고통은 그만의 몫이 아니었다. 사츠키는 평소 돈독했던 어머니에게 “내 약 어디 있냐”라며 화를 내다 욕을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함께 펜타닐을 했던 래퍼 남자친구와 다투다가 칼부림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실제 사츠키의 왼팔에는 흉기에 베인 듯한 흉터가 20곳가량 남아 있다. 그는 인터뷰 중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적 있다”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2019년은 서울 지역 힙합 래퍼와 주변인들 사이에서 펜타닐이 빠르게 유행한 시기다. 사츠키는 “래퍼 중에서 유명할수록 펜타닐을 안 한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라며 “당시 래퍼들 사이에서 마약은 하나의 문화로 인식됐다”라고 말했다.

“펜타닐 한 래퍼, 대부분 죽거나 교도소…내 주변서만 9명 사망”

사츠키는 “펜타닐은 꾸준히 하면 2년 안에 죽는 약 같다”라며 “한 달 만에 죽는 친구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의 주변에서만 9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사츠키는 “난 펜타닐을 한 1세대 래퍼인 셈인데, 사실상 나 혼자 사회에 살아남았다”라며 “나머지는 죽거나 교도소에 가 있다”라고 했다.

“래퍼 친구가 펜타닐을 하다 얼굴이 노래지고 입술이 퍼렇게 변하며 쓰러진 적 있어요. 제가 119를 불렀고 다행히 깨어났습니다. 그날 ‘오늘은 펜타닐 하지 마’라고 했는데, 친구는 그 말을 듣지 않고 바로 펜타닐을 했다가 죽어버렸어요.”

2020년 7월 펜타닐 복용 직후 서울 마포구 오피스텔에서 친구를 살해하고 시신을 인천에 유기한 사건도 사츠키의 지인들이 관련됐다고 한다. 사츠키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아는 사람이고, 다 내 공연에 왔었다”라고 말했다.

사츠키는 자신에게 처음 펜타닐을 권했다는 A 래퍼를 원망한다. A 래퍼는 “마약이 아니고 합법적인 진통제인데, 생리통과 마음의 고통을 없애주는 거다”라며 펜타닐 복용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그 말에 사츠키가 펜타닐 연기를 한 모금 마셨고, 돌아온 대답은 “잘 가”였다고 한다.

현행법상 합성 아편으로 불리는 펜타닐은 엄연히 ‘마약’이고 특히 중독성이 가장 강한 마약으로 분류된다. 그 세기는 다른 마약인 헤로인의 최대 100배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완전치사량이 2㎎에 불과해 살상 목적의 독극물로도 쓰인다. 말기 암 환자 등이 의사의 처방 아래 극소량을 초강력 진통 목적으로 복용할 때만 합법이다.

미국에서 2017년 이미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펜타닐 오남용에 따른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2018년 12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에서 중국산 펜타닐 생산·유통을 규제해달라고 요구했을 정도다. 그러나 질병통제센터(CDC)에 따르면 미국내 펜타닐 과다복용 사망자는 2015년 3만 3091명에서 2020년 6만 9710명으로 계속 급증했다.

사츠키는 중독 당시 펜타닐을 구하기 위해 병원을 찾아가 아픈 척 연기를 했다고 한다. 그는 “중독자 사이에선 ‘어느 병원이 뚫린다’는 소문이 다 났다”라며 “아프다고 하면서 펜타닐 달라고 하면 필요한 만큼 그대로 줬다”라고 말했다. 일부 의사가 경각심 없이 진료를 하다 마약 중독자에게 속거나 꾀병인 걸 알면서도 돈벌이를 위해 마약을 처방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다.

한 번 마약에 중독되면 자연스럽게 다른 마약류에도 손을 대게 된다. 사츠키도 대마, LSD, 디에타민 등으로 범위를 넓혔다고 한다. 그는 “디에타민 10정을 한 번에 먹고 5일 동안 못 잔 적 있다”라고 했다.

사츠키는 지난해 7월 종교에 귀의하면서 극적으로 마약을 끊게 됐다고 한다. 그는 한 주에 세 번꼴로 중독재활센터에 나와 교육, 심리상담을 받고 다른 중독자 등과 모임도 갖는다. 사츠키는 “다음 달이면 마약을 끊은 지 1년이 되는데 내가 회복되고 가족과 다시 친밀해진 지금이 너무 좋다”라며 “절대로 마약 했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마약퇴치운동본부 측은 하지만 “마약 중독자가 사츠키처럼 약을 끊는 데 성공하는 비율은 1000명 중 한두 명 꼴로 희박하다”라고 지적했다. 사츠키도 현재의 재활 치료를 소홀히 하면 다시 마약에 손을 대게 될 위험이 있다. 과거 펜타닐 등을 복용했다가 유튜브 등을 통해 단약(斷藥)을 선언했던 유명 래퍼가 최근 다시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목격담도 나오고 있다.

사츠키는 10대 청소년들이 자신과 같은 실수를 절대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학교에서 10대들에게 마약 예방교육을 충실히 해줘야 한다고 제안한다. 사츠키는 “학교 다닐 때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마약에 대해 알려주는 시간이 있었다면 마약을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10대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요청에 사츠키는 “마약은 멋 있는 것도 아니고 자랑할 것도 아니고 사람이 죽는 것”이라며 “단 한 번만으로도 끝나는 거니 절대 하지 말아야 하고 마약을 하면 어떨지 궁금해하지도 말아야 한다”라고 밝혔다.

미국 1센트 동전(지름 19.05㎜)과 치사량의 펜타닐(2㎎) 비교. 미국 마약단속청(DEA)

작년 적발 고교생 50여명, 지금도 금단현상…“필로폰 발전도”

경찰은 2019년 서울 지역 래퍼들을 중심으로 펜타닐이 유행하기 시작해 전국으로 퍼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5월 부산·경남의 고등학생 등 50여 명이 펜타닐을 불법 처방받아 복용하거나 되판 혐의로 경남경찰청에 적발된 게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해당 10대 대부분은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기관으로 지정된 국립부곡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데, 상당수가 지금까지도 복통이나 설사 등 금단현상에 시달리는 것으로 전해진다. 심한 경우 며칠 동안 일어나지 못 하고 기어 다니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병원의 장옥진 약물중독소장은 “펜타닐을 완전히 못 끊고 다시 했다가 끊었다 반복하는 친구도 있고, 필로폰이나 합성대마 등 ‘하드 드럭’으로 경험을 확대하는 친구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이렇게 오래 제 옆에 있을 줄 몰랐다”라고 덧붙였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펜타닐 처방 건수는 113만 5797건, 환자 수는 37만 5782명으로 집계됐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