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경제 석학 스티븐 로치 “기준금리 급히 올리고 연착륙? 바늘구멍만큼 확률 낮다”

최만섭 2022. 6. 3. 05:15

경제 석학 스티븐 로치 “기준금리 급히 올리고 연착륙? 바늘구멍만큼 확률 낮다”

입력 2022.06.03 03:00
 
 
 
 
 
스티븐 로치 미국 예일대 석좌교수는 지난 1일 본지와 화상인터뷰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너무 늦게 인플레이션에 대응을 시작해 가파르게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게 됐다. 결국 침체가 발생할 위험을 키운 것”이라고 했다. 사진은 로치 교수가 서울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서 과거에 토론하는 모습. /조선일보DB

“인플레이션 잡으려고 기준 금리를 빠르게 올리면서도 경제는 연착륙시킨다고요? 그건 연방준비제도의 희망일 뿐 가능성은 바늘구멍만큼 작습니다.”

스티븐 로치 미국 예일대 경영대 석좌교수는 “연준은 물가를 잡기 위해 시장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내년까지 이어지는 깊은 침체가 유발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8%대로 치솟으며 40여 년만의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로치 교수는 바로 그 40여 년 전 연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그는 연준이 너무 늦게 움직였다고 했다. “인플레이션이 계속 악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 너무 늦어서 다급해진 연준 등 모든 여건이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 동시 발생)을 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치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 1일 화상으로 진행했다.

“파월, 너무 오래 기다려 침체 위험 키웠다”

-스태그플레이션은 필연적이라고 보나.

“나는 2년 전쯤부터 1970년대와 비슷한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험을 경고했었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정치적 이유로) 인건비가 싼 해외 생산 시설을 자국으로 옮기고 공급망도 망가질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내가 예상치 못한 악재도 겹쳤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났다. 또 2020년 코로나 확산 이후 이후 멈췄던 경제 활동의 빠른 재개가 중앙은행 및 정부가 아직 돈을 풀고 있는 가운데 이뤄졌다. 엄청난 초저금리 환경을 연준이 용인하는 동안에 수요가 폭발했다. 인플레이션을 향해 질주하는 최적의 조합이 만들어진 것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연착륙이 가능하다’고 한다.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본다. 파월의 문제는 인플레이션의 심각성을 너무 늦게 인지했고 긴축까지 지나치게 긴 시간을 기다렸다는 것이다. 내가 연준에 근무할 때 아서 번스와 폴 볼커 두 명의 의장을 겪었다. 번스 의장은 물가 상승이 일시적이라고 했고, 식료품·에너지 가격 급등을 기준금리로 잡을 수는 없다고 하면서 손을 놓고 있었다. 파월 의장과 비슷하다. 이번에 연준은 물가가 8%를 넘어갈 정도로 치솟은 후에야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했다. 늦었기 때문에 기준금리를 급격하게 높일 수밖에 없다. 당연히 경기 침체 가능성은 매우 커졌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지난해까지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고 했다가 올해 들어 입장을 바꿔 기준금리를 빠른 속도로 올리고 있다. 스티븐 로치 예일대 석좌교수는 이런 파월이 1970년대 안이한 기준금리 정책으로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아서 번스 전 연준 의장을 연상케 한다고 했다. 사진은 파월 의장이 지난달 23일 두 번째 임기 취임식을 마친 후의 모습. /AFP 연합뉴스

-예상치 못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것은 아닌가.

“파월 의장이 그런 핑계를 대는데 무책임한 소리다.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훨씬 전부터 물가는 급등하고 있었다. 1월 물가 상승률이 이미 7.5%로 연준 목표치(2%)를 크게 넘어선 상태였다.”

-미국의 고용 시장이 견고해 연착륙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고용 시장이 탄탄하다고 무조건 좋아할 일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인플레이션 억제라는 목표만 놓고 본다면 좋은 뉴스가 아니다. 구인(求人)이 어려울 정도로 과열된 고용 시장은 오히려 악재다. 임금 인상 압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1970년대를 살아본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안다. 임금 인상과 물가 상승의 악순환은 연준의 악몽이다. 이런 물가 상승 흐름을 반대로 돌리기는 매우 어렵다. 볼커 의장이 이런 악순환을 멈추기 위해 기준금리를 파격적으로 인상하는 과정에서 침체가 발생했었다. 고용 시장이 좋다고 연준이 환호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연준 기준금리 인상, 시장 예상보다 가파를 것”

-연준이 금리를 얼마나 올려야 인플레이션이 잡힐까.

“기준금리 수준을 가늠할 때는 기준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실질 기준금리’를 주의 깊게 봐야 한다. 지금 물가 수준을 감안하면 미국의 실질 기준금리는 엄청난 마이너스(기준금리 연 1%-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8.3%=-7.3%) 영역에 있다. 마이너스 실질 기준금리로 인플레이션을 잡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연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다소 잦아든다 하더라도 연준이 금리로 인플레이션을 꺾으려면 연 5%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높여야 한다고 본다.”

 

그는 ‘파월 시대’의 실질 기준금리가 얼마나 낮은지를 수치를 들어 설명했다. 파월 임기 중 실질 기준금리는 평균 -1.95%를 기록 중이다. 코로나 전까지 저물가 환경이 이어졌지만 기준금리 또한 매우 낮았고, 지난 1년 동안 물가상승률이 치솟으며 실질 금리가 많이 내려간 영향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유증을 완화하기 위해 ‘제로 금리’를 시행해야 했던 시기에 연준 의장을 지낸 파월의 전임과 전전임인 재닛 옐런, 벤 버냉키 시절에도 실질 금리는 -0.9%, -0.7%로 지금보다 높았다. 파월의 연준이 이례적 ‘빅스텝’ 인상을 했다고 해도 실질 기준금리는 여전히 초저금리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드러낸다.

미국 기준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실질 기준금리 추이. 기준금리가 물가를 잡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이 수치가 '플러스' 영역에 있어야 한다. 최근 물가상승률이 급등하는 가운데 미 연방준비제도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실질 기준금리는 사상 최저 수준인 -7%대로 하락해 있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통화 정책이 효과를 보려면 연준은 얼마나 빠르게 금리를 올려야 하나.

“연준은 얼마 전 22년 만에 처음으로 기준금리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을 단행했다. 올해 남은 5번의 기회에서 빅스텝 인상을 2번 더 한다는 전망이 많다. 하지만, 이런 속도로는 부족하다. 결국 더 속도를 낼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終戰) 등으로 인플레이션이 갑자기 꺼질 가능성은 없나.

“물가 상승 압박 요인은 전쟁 말고도 여럿 있다. 일단 식품 가격이 위험하다. 미국 가뭄, 인도 폭염 같은 최근의 이상기후로 농작물 수확에 차질이 생겨 가을쯤 식료품 가격발(發) 추가 물가 상승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미·중 무역갈등과 코로나가 가속화한 탈(脫)세계화 움직임도 인플레이션을 악화시킬 요인이다.”

-이런 상황에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은 괜찮을까. 원화 가치는 큰 폭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한국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매우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글로벌 금융 불균형의 부작용에 신흥국 경제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달러 가치는 지난 한해 매우 강해졌는데 금리 인상 등 달러 가치가 더 강해질 요인은 여전히 많다. 한국 원화 가치는 다른 통화 대비 최근 하락 폭이 작았다. 지난 3개월 동안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는 약 9% 상승했는데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6% 하락하는 데 그쳤다. (비교적 덜 하락했다는 것은 더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최근 달러 강세가 다소 진정된 상태인데 만약 달러 가치가 다시 올라간다면 원화 가치 하락 압력이 더 세질 수도 있다. 환율 하락은 수출국엔 이득이 되기도 하지만 인플레이션 상황이라면 (수입품의 원화 기준 가격을 올려) 악재가 될 위험이 크다.”

☞스티븐 로치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에서 수석연구원,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중국과 아시아 전문가로 알려진 석학이다. 1970년대 미 연방준비제도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2010년부터 예일대 경영대 석좌 교수로 재직 중이다. 누리엘 루비니 미 뉴욕대 교수와 함께 경제 위기의 위험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비관론자로 꼽힌다. ‘G2 불균형’ ‘넥스트 아시아’ 등을 썼고 미·중 분쟁과 탈세계화를 다룬 책 ‘우연한 분쟁(Accidental Conflict)’이 곧 미국에서 출간된다.

 
조선일보 경제부 김신영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