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기원전 6세기 아테네서 첫 공직 선거… 제비뽑기로 선출해
입력 : 2022.06.01 03:30
참정권(參政權)
제비뽑기로 공직자 선출한 아테네
역사 속 첫 공직 선거는 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아테네에서 열렸어요. 아테네는 그리스 아티카 평원 중심부에 있었는데, 초기에는 상당한 비용을 들여 이곳의 방위(防衛)를 전담하고 있던 귀족들이 운영했어요. 하지만 기원전 7세기 동방의 맹주로 불린 페르시아 제국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민주정 체제로 바뀌게 됩니다. 중무장을 한 귀족과 평민이 함께 군사 대형을 이뤄 싸우다 보니, 평민들이 스스로를 귀족과 대등한 지위로 인식하고 귀족 중심의 신분 질서에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한 거예요.
이에 정치인이던 클레이스테네스는 기원전 6세기 말 아테네의 행정 제도를 개편하고 '데모스'라 불리는 170여 개의 행정구를 편성했어요. 당시 아테네의 정치·사회 기구는 민회(民會·시민 총회)와 500인의 평의회, 민중 법원, 행정직 등 네 부분으로 구성돼 있었는데, 클레이스테네스는 데모스 시민이면 누구든 이런 기구의 의원이나 관리로 일할 자격을 줬지요.
이때 아테네가 선택한 공직자 선출 방법은 '추첨제', 즉 제비뽑기였어요. 행정직 중 군사와 재정 분야 후보만 전문가로 뽑고, 나머지 공직은 모두 제비뽑기로 선출한 거예요. 선출된 사람의 임기는 1년이었고 한번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이 재임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요. 최대한 많은 시민을 정무에 참여시키고 평등을 구현하려고 노력했던 거예요.
초기 아테네의 공직자에게는 별도의 보수가 없었어요. 급여를 받지 않고 사회봉사를 하는 식이었죠. 클레이스테네스에 이어 아테네 전성기를 이끌었던 정치가이자 군인 페리클레스는 하층 시민이 생계 부담 없이 공무와 생업을 병행할 수 있도록 '수당제'를 도입했어요. 하지만 이런 민주정 체제 속에서도 외국인과 노예·여성에게는 끝내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았어요. 군역과 납세가 가능한 남성만 시민으로 규정하고, 그들에게만 참정권과 시민권을 줬기 때문이에요.
"모든 권력은 민중에게서 나온다"
누구나 한 표씩 평등하게 표를 행사하는 투표 형태는 18세기 프랑스혁명으로 공화정이 탄생하며 널리 퍼집니다. 정해진 후보가 선거운동을 하고, 투표일을 정해 투표소에서 지지하는 후보의 이름이 쓰인 종이를 투표함에 넣는 방식도 프랑스혁명 이후 일반화됐지요.
프랑스혁명을 이끌었던 이들은 "모든 권력은 민중에게서 나온다"고 선언했는데요. 이들은 자유로운 사회를 이루려면 정치적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고 보고 '1인 1표제'가 민중의 뜻을 가장 효과적으로 반영하는 방법이라고 믿었어요. 이들이 인권선언에 제시한 모든 공직의 선거제 원칙(제6조), 권력 분립에 입각한 대의제(제16조) 등은 실제 혁명기 헌법에 반영됐고 정치적 자유주의의 기본 원칙이 됐죠.
하지만 급진적인 혁명을 주도하며 가혹한 통치를 했던 로베스피에르 등이 반대파가 일으킨 쿠데타로 처형되고 난 뒤, 프랑스에서는 일정 정도의 세금을 납부할 수 있는 재산을 가진 사람에게만 선거권을 주는 '유산 선거제'가 시행됐어요. 민중의 참정권이 다시 제한된 거예요.
10여 년간 이어진 노동자 운동
이처럼 처음에는 시민혁명이 일어난 프랑스나 영국에서 독립한 미국 등도 시민들에게 제한적인 선거권을 부여했어요. 어느 정도 재산이 있는 백인 남성에게만 투표권을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이에 평등한 한 표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요.
1838년부터 1848년까지 영국에서 일어난 차티스트 운동은 영국의 노동자 계층이 참정권을 요구하고 나선 민중운동이에요.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노동자가 새로운 계층으로 부상합니다. 기계 도입 등으로 숙련노동이 단순노동으로 대체되면서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이 비슷해져 가는데요. 그러면서 노동자들 사이에 동질감을 바탕으로 한 계급의식이 생긴 거예요.
당시 영국은 선거 자격을 제한하며 신흥 산업자본가나 노동자 계층의 의회 진출을 막고 있었어요. 그런데 1830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7월 혁명의 영향으로 영국에서도 선거법 개정에 대한 요구가 격렬해졌어요. 결국 1832년 선거법 개정으로 토지를 가진 사람 외에 동산(動産·옮길 수 있는 재산) 소유자까지도 투표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이에 신흥 자본가가 의회에 진출할 길이 마련됐지만, 노동자에게는 여전히 선거권을 주지 않았죠. 당시 영국 총리였던 그레이 백작은 선거권을 달라는 요구에 누구나 자유롭게 부유층이 될 수 있다며 "스스로 부자가 되라"고 빈정댔다고 해요.
이에 노동자 계층이 요구 사항을 담아 '인민헌장(People's Charter)'을 만들고 독자적인 운동을 전개합니다. 여기에서 '차티스트'라는 이름이 붙었어요. 이들은 성년 남자의 보통선거, 인구 비례에 따른 평등한 선거구 설정 등을 요구하며 10여 년간 서명운동과 시위를 했어요. 하지만 이런 요구는 모두 거부됐어요.
이들의 요구는 1867년과 1884년 두 차례 선거법 개정을 하고 나서야 대부분 실현되는데요. 이때 공장에서 일하거나 농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도 선거권을 주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1870년 돼서야 흑인 남성 투표
흑인과 여성 등에게까지 선거권이 확대된 것은 더 이후의 일입니다. 납세 능력이 있는 만 21세 이상의 백인 남성만 투표할 수 있었던 미국에서는 1870년이 돼서야 흑인 남성도 투표할 수 있게 됐어요.
여성 참정권 확대 운동은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확산됐어요. 전장에 대거 투입된 남자들의 빈자리를 여자들이 채우면서 '여성은 가사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는 움직임이 생긴 거예요. 미국 여성들은 백악관 앞에서 몸을 쇠사슬로 묶으며 시위를 벌였고, 영국에서는 여성들이 유리창을 깨거나 방화를 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했습니다.
그러다 1893년 뉴질랜드가 현존하는 국가 중에서 가장 먼저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합니다. 영국에서는 1928년부터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고, 이어 프랑스(1944년), 이탈리아(1945년)에서도 여성이 투표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최근 사례로는 2015년 12월, 건국 이래 처음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이 투표장에서 한 표를 행사했어요.
[선거 유세의 변화]
영국의 총리를 지낸 윌리엄 글래드스턴(1809~1898)이 1878년부터 펼친 선거 유세가 최초의 현대적 선거운동으로 알려져 있어요. 미국의 제34대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1890~1969)는 1952년 처음으로 TV에 나와 선거운동을 하기도 했죠. 미국의 제44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2008년 소셜 미디어로 선거운동을 벌였답니다.
▲ 아테네 민주정 체제의 기틀을 확립한 클레이스테네스(왼쪽). 오른쪽 사진은 18세기 프랑스혁명을 주도한 로베스피에르. 그가 처형되고 참정권은 다시 제한됩니다. /위키피디아
▲ 프랑스혁명 당시의 인권선언. 혁명을 이끈 이들은‘1인 1표제’가 민중의 뜻을 가장 효과적으로 반영하는 방법이라고 믿었어요.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