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부자들의 과외선생님’ 잡아라… 귀하신 몸, PB 쟁탈전… 입소문나면 연봉 40억

최만섭 2022. 1. 21. 05:45

‘부자들의 과외선생님’ 잡아라… 귀하신 몸, PB 쟁탈전… 입소문나면 연봉 40억

143조 굴린다, PB들의 전쟁

입력 2022.01.21 03:00
 
 
 

 

100조원이 넘는 PB(Private Banker·프라이빗 뱅커) 시장을 잡으려는 은행·증권사들의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이나 AI(인공지능) 주식투자앱 등 핀테크 기업의 성장으로 고객 기반을 위협받는 은행·증권사들이 자신들의 강점인 ‘자산 관리’로 우량 고객 붙잡기에 나선 것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의 경우 PB 고객이 맡긴 돈이 최근 5년 새 32% 늘면서 작년 6월 143조원을 넘어섰다.

은행권, PB 문턱 낮추고 고객 유치 경쟁

국내 금융권의 PB 서비스는 1995년 하나은행이 처음 시작했다. 전문 자격증을 갖춘 PB들이 금융 투자뿐 아니라 세무와 부동산, 상속 등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과거엔 금융 자산 10억~20억원 이상인 고객만 PB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지만, 최근 문턱이 낮아지고 있다. KB국민은행이 2020년, 최소 자산 기준을 5억원에서 3억원으로 2억원 낮췄고, 우리은행에선 펀드나 ELT(주가연계신탁) 등 금융 상품에 가입한 고객이면 보유 자산과 무관하게 PB센터를 이용할 수 있다.

‘수퍼 리치(super rich)’로 불리는 초고액 자산가를 위한 프리미엄 PB 서비스도 확대되고 있다. 금융 자산 1000억원 이상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삼성증권의 투자클럽(’패밀리 오피스’)에는 1년 반 만에 60가족이 가입했다. 30억원 이상 초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하는 4대 은행의 프리미엄 PB 센터는 서울에만 14곳 있는데 빠르게 늘고 있는 추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디지털 전환을 해나가되 핀테크 기업과 차별화되는 자산 관리 경쟁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미래 성장 동력”이라고 했다. 현재 4대 시중은행 소속 PB는 703명으로 최근 2년 만에 22% 늘었다. 은행권 PB는 평균 연봉이 1억5000만~2억원 안팎이지만, 증권사의 경우 개인 실적에 따라 연 40억원 이상을 받기도 한다.

날고 기는 요즘 투자자 눈높이 맞추기 힘들어져

고액 자산가를 유치하기 위한 전략은 바뀌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PB 고객 대부분이 50대 이상이었고, 고객과 끈끈한 친밀감을 유지하는 것이 유능한 PB의 덕목이었다. 본사에서도 고급 명절 선물이나 자녀 간 맞선, 입시 컨설팅 등 부가 서비스로 고객 ‘관리’를 지원했다.

하지만 요즘 고객들은 철저히 전문성을 따진다. 은행·증권사 PB센터를 둘러보고 쇼핑하듯 PB를 고르고, 성과가 나지 않으면 금방 다른 PB 센터로 떠나는 ‘체리피커’가 많다. 차별화된 능력을 보여주지 않으면 선택받기 어려워진 것이다. 서울 강남의 한 PB는 “벤처기업 상장(IPO)이나 가상화폐 투자 등으로 큰돈을 번 ‘영 앤 리치(young & rich·젊은 부자)’가 많다”며 “이들은 웬만한 최신 거래 동향을 꿰뚫고 있기 때문에 평소 들어보지 못한 고급 정보를 원한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는 블록체인, 2차전지, AI 정도의 투자 키워드로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는 “베트남에 있는 이커머스 업계 비상장 주식 정도는 추천해야 솔깃해한다”고 했다.

 

◇과열 조짐까지 보이는 PB 스카우트 전쟁

유능한 PB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도 뜨겁다. 우량 고객이 많았던 한국씨티은행이 작년 10월 소매 부문 철수 결정을 내려 스타 PB들이 ‘대방출’되자 스카우트 전쟁이 벌어졌다. 지난해 완전 민영화에 성공한 우리은행이 가장 적극적이었다. 씨티은행 출신 스타 PB 22명을 스카우트해 이 중 13명을 초고액 자산가 대상 특화 점포인 서울 역삼TCE시그니처센터에 배치했다. 우리은행의 에이스 PB 5명도 함께 보냈다. 씨티 PB가 관리해온 ‘큰손’ 고객을 유치하고 동시에 글로벌 우량 은행인 씨티의 선진 자산 관리 문화를 벤치마킹하기 위해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VIP가 안정감을 느끼도록 상담실 탁자는 모서리가 둥근 걸로 한다든지, 가구 규격이나 배치는 어때야 한다든지 등 씨티은행의 글로벌 프로토콜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했다. KB국민은행은 15명, 하나은행은 3명, SC제일은행은 15명을 각각 영입했다.

증권사들도 스카우트 경쟁에 뛰어들었다. 신한금융투자는 씨티은행 출신 PB 30명을 영입해 30억 이상 고액 자산가 PB 서비스에 특화된 청담·광화문금융센터를 신규 개설했다. 한국씨티은행 PB센터 중 최대 규모였던 청담센터 염정주 센터장과, 씨티은행에 딱 3명밖에 없던 자산 관리 최고 전문가(마스터 PB) 중 2명을 영입하기도 했다. 이 밖에 삼성증권이 두 자릿수, KB증권이 4명을 스카우트한 것으로 알려졌다.

PB(Private Banker)

Private Banker(프라이빗 뱅커)의 줄인 말. 고액 자산가 고객을 상대로 금융 투자 및 세무, 상속, 법률 등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 전문가를 말한다. 지금은 은행권에만 700명 넘는 PB가 활동하고 있다.

 
 
조선일보 경제부 김은정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