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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기의 사이언스토리] 종이 빨대가 플라스틱 빨대보다 ‘친환경’이라는 착각

최만섭 2022. 1. 17. 08:08

 

[민태기의 사이언스토리] 종이 빨대가 플라스틱 빨대보다 ‘친환경’이라는 착각

입력 2022.01.17 03:00
 
 
 
 
 

2015년 미국 대학원생 크리스틴 피그너(Christine Figgener)는 바다거북의 코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빼내는 영상을 촬영했다. 이 영상이 던진 충격은 엄청났다. 플라스틱 빨대 퇴출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2018년 타임지는 그녀를 차세대 지도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바다거북 영상이 환경오염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이후 대안으로 제시된 종이 빨대는 오히려 논란이 되었다. 종이는 친환경적이지 않을뿐더러, 탄소 중립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산업혁명과 기술 발전이 환경 파괴와 기후변화의 주범이라는 인식을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과거가 반드시 친환경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픽=김하경

흔히 기후변화의 가장 큰 원인으로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를 먼저 떠올리기 쉽지만, 문제는 훨씬 복잡하다. 오랫동안 지구온난화 문제를 다루고 있는 유엔 산하 기구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온실가스 배출을 분야별로 정리해서 발표했다. 역시 발전 부문이 25%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둘째는 24%나 차지하는 농업과 임업이다. 이 분야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발전소 못지않은 것은 주로 축산업에서 비롯한 것으로, 무려 15%에 이른다. 가축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이 항공기와 선박을 포함한 기차와 자동차 등 수송기관 모두를 합한 14%보다 큰 것이다.

산업혁명은 증기기관이 말을 대체하며 시작되었다. 말은 인류가 기른 가축 중에서 중요한 동력 수단이지만, 엄청난 양의 사료가 필요해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이러한 사실을 간파한 초기 증기기관 제작자들은 말 몇 마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마력(馬力·horse power)’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엔진의 성능을 표시했다. 이처럼 석탄을 연료로 하는 증기기관이 널리 쓰인 것은 경제적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말은 교통수단으로 여전히 중요했기에 말의 숫자는 계속 늘어갔다. 문제는 말이 배출하는 엄청난 양의 분뇨였다. 19세기 런던과 뉴욕 같은 대도시에서 마차를 끄는 말 수만 마리가 매일 배출하는 수천에 달하는 배설물은 골칫거리였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자동차였다. 자동차가 마차를 대체하자 거리는 깨끗해지고 배설물로 인한 미세 먼지와 전염병이 감소했다. 자동차는 위생 문제만 해결한 것이 아니었다. 말은 생각보다 빨리 지치기 때문에 수시로 교대해 주어야 한다. 이 때문에 조선 시대에는 12㎞마다 역참(驛站)을 배치했다. 지금도 사용하는 ‘역(驛)’은 원래 지친 말[馬]의 교대 장소였고, 역참 사이의 거리 12㎞가 얼마나 멀었던지 ‘한참을 간다’는 표현이 여기서 유래했다. 서양에서도 말의 교체 문제로 마차 한 대당 말 12마리가 필요했다. 말 한 마리가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연간 0.5이므로 마차 한 대는 6을 배출하는 셈이다. 승용차의 온실가스 배출이 연간 2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자동차는 온실가스도 줄인 것이다. 이처럼 내연기관은 한때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꽤 효과적이었다.

 

플라스틱 역시 마찬가지다. 최초의 플라스틱은 코끼리 상아로 만들던 당구공을 대체하려 만들어졌다. 코끼리 한 마리에서 만들 수 있는 당구공은 고작 8알이었다. 플라스틱은 코끼리 멸종을 우려한 업계의 제안으로 1869년 미국 엔지니어 존 웨슬리 하이엇이 만든 발명품이다. 비닐봉지 역시 환경보호 목적으로 1959년 스웨덴의 스텐 구스타프 툴린이 개발했다. 포장지로 많이 쓰이던 종이를 대체하기 위해서였다. 종이는 목재에서 만들어지고, 종이 사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산림 훼손이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한때 인도네시아가 중국, 미국에 이어 세계 3위의 탄소 배출국이었고, 아직도 우리나라보다 탄소 배출이 많은 이유는 산림 파괴 때문이다.

다시 빨대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종이는 생산 과정에서 환경을 훼손하며 다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할 뿐 아니라 사용 후 처리 과정도 쉽지 않다. 종이는 플라스틱보다 잘 분해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종이 역시 분해되려면 쓰레기 매립 등의 힘든 과정이 필요하다. 게다가 미생물이 종이를 분해하면 이산화탄소보다 28배나 온실효과가 큰 메탄이 발생한다. 특히 플라스틱 빨대의 대안으로 제시된 종이 빨대는 재활용조차 거의 불가능하므로 소각되어야 한다. 이 때문에 종이 빨대가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은 플라스틱 빨대의 3배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따라서 종이가 플라스틱보다 친환경적이라고 생각하긴 힘들다. 핵심은 플라스틱 폐기물이 바다로 흘러가지 않게 하는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종이든 플라스틱이든 일회용품을 줄여야 한다.

요컨대 산업 발전과 기술 발달이 반드시 환경 파괴나 지구온난화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류 문명은 늘 닥친 위기를 과학으로 풀어나갔다. 가축을 화석연료로 대체한 것도, 플라스틱과 비닐봉지를 개발한 것도 모두 큰 틀에서는 환경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1마력은 대략 0.75킬로와트이니, 말 한 마리가 1시간 동안 일하는 에너지 0.75킬로와트시(kWh)를 현재는 불과 100원 정도의 비용으로 사용한다. 웬만한 자동차 1대가 100마력이 넘으니, 우리는 말 100마리를 몰고 다닌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기술 발전이 없었다면 온실효과는 더욱 심각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기후 위기 역시 과학이 풀어가야 할 숙제다. 기후와 환경오염에 대한 경고만큼이나 이제는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학적인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