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백영옥의 말과 글] [229] 지옥에 대하여

최만섭 2021. 12. 4. 08:42

[백영옥의 말과 글] [229] 지옥에 대하여

입력 2021.12.04 00:00
 
연상호 감독의 ‘지옥’은 몇 날 몇 시에 죽음을 예고한 천사의 말이 실제 백주 대낮, 지옥의 사자들에 의해 시연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흥미로운 건 이 황당한 설정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죄를 지었으니 지옥에 가야 한다’는 인과론에 우리가 100퍼센트 공감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딱히 큰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지옥에 가는 사람이 생기면서부터다. 지은 죄가 없는데 지옥에 가야 한다면 사람은 어떻게 될까. 음주 운전 차량에 남편을 잃었을 때, 어린 딸이 말기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우리는 생각한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시간이 지나고 비극이 선명해지면 더 복잡한 질문이 우리를 파고든다. 대체 이런 일이 왜 ‘내게’ 생겼을까? 단언컨대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이보다 두려운 질문은 없을 것이다.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 설치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옥' 체험존에서 시민이 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오랜 시간 종교는 이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을 들려주었다. 원죄나 신의 섭리 같은 말로 말이다. 인간은 ‘의미’ 없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답을 찾고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 하지만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의 답은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다. 한쪽 팔을 사고로 잃은 여성을 보았다. 몸의 비대칭으로 인해 극심해진 척추 측만증 때문에 살기 위해 선택한 건 피트니스였다. 세계 대회를 휩쓸며 우승 트로피를 거머쥘 때마다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난 비극에 의미를 부여했다. 자신의 ‘비극’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로 말이다. ‘외상 후 성장’이라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세상이 항상 정의롭고 공평한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한 신부님이 말했다. 나쁜 사람이 복을 받고, 착한 사람이 불행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삶이 그렇다는 것을 인정해야 나만의 행복을, 다행을 찾을 수 있다고 말이다. 인생이 원래 불공평한 것이라 인정하면 그때 ‘내 인생’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면 진짜 지옥은 어떤 모습일까. 단테의 신곡 ‘지옥의 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희망을 일절 꿈꿀 수 없는 곳, 그곳이 지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