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산모퉁이 돌고 나니] 돈주머니가 투명해야 개혁이다

최만섭 2021. 11. 12. 04:54

[산모퉁이 돌고 나니] 돈주머니가 투명해야 개혁이다

이주연 산마루교회 목사
입력 2021.11.12 03:00
 
 
 
 
 

매해 이 맘 때가 되면 기독교에서는 종교개혁을 기념한다. 여전히 500여년 전 교황의 면죄부 판매를 들춰내기도 한다. 천주교에서는 아직도 루터가 신부 시절에 살았던 방의 위층에서 신부들이 “그놈 밟아버렸어야 했는데” 하며 발을 구른다고 한다. 이 모든 일이 오늘 이 시대에 무슨 유익이 있겠나! 오늘날 개신교 일각에서는 종교개혁 실패론까지 등장한다. 사실 종교개혁이라는 낱말처럼 종교를 개혁해서 온전한 개혁이 되겠나! 자기와 자기 신앙을 개혁할 일이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추구했던 것도 궁극엔 참 신앙의 회복이었다. 지난달에 장로님들 수백 명이 모인 수련회에 주제강연을 하러 갔다. 30분을 넘게 기다렸는데도 끝나지 않기에 무엇을 하나 했다. 알고 보니, 관절 허리 아픈데 먹는 약장사였다.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 장바닥으로 만들었다고 한마디 하고 그냥 와버렸다. 다행히 그날 저녁 임원들이 눈물로 회개하였다 한다.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십자가 부활을 믿는 신앙인들이 무병장수만 꿈꾸면 될 일인가, 십자가와 영생과 천국의 비전을 가져야지!

/일러스트=이철원

일전에 한 기자가 내게 도전적인 질문을 해왔다. “목사가 타락하지 않고 개혁적인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음이 흐르는 대로 답을 했다. “큰 교회를 이루어도 목사의 통장이 불어나지 않으면 되겠죠.” 루터는 “쌈지(돈주머니)가 회개하기 전까지는 회개가 아니다”라고 했다.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는 젊어서도 30파운드로 살았고, 감리교를 세운 이후에도 30파운드로 살았다. 그가 떠났을 때에 남은 것은 성경과 숟가락과 주전자, 낡은 코트 한 벌과 운구비뿐이었다. 십자가를 통해 받은 사랑을 온전히 나눈 것이다.

내겐 잊을 수 없이 빛이 되어주신 선생님이 계시다. 선생님께선 2000년 2월에 떠나시면서 당신의 장례비 350만 원만 남기셨다. 교수 시절 가난한 학생들을 돕느라 가불하셔서 월급봉투에 동전 몇 푼뿐이었던 일도 흔했다. 나도 이번 가을엔 공교롭게 종교개혁 주간도 겹친 때에, 마음을 정리했다. 내 장례비만 남기자. 목사로 평생 교회나 집에서 대접을 받고 살았으니, 장례비까지 신세를 지지 말 일이다. 자녀들에겐 유산도 남기지 않겠다 했는데, 짐이 되어서야 되겠나! 현재로선 모아야 할 형편인지도 모르겠으나, 인생 정리는 거의 끝낸 셈이다. 오래전에 내 탐욕의 고통 때문에, 땅 한 평도 소유하지 않고 살겠다고 모든 것을 정리했고, 이젠 사랑을 위하여 정리하였다.

 

종교개혁의 후예인 일부 청교도들에겐 특별한 가정의 유산이 있다. 그것은 자녀들에게 회계장부를 남기는 것이다. 회계장부로 부모의 신앙을 전하는 것이다. “얼마나 정직하게 땀 흘려 일했는가, 얼마나 축복을 받았는가, 얼마나 십일조를 주께 드렸는가, 얼마나 남들을 도왔는가! 얼마나 절약하며 경건하게 살았는가!” 회계장부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의 회계장부엔 매 장마다 십자가를 그려서 넣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랑의 십자가를 이렇게 남긴 것이다.

 

나의 십자가는 무엇일까? 나병환자를 선교하는 선교사는 나병환자가 되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 십자가다. 다미앵 신부가 그러하였다. “나도 이제 나병이 들었으니 여러분과 같아졌다”고 주께 감사하였다. 박해의 시대를 사는 성도들은 순교가 십자가였고, 참 성도가 되는 길이었다. 입가에 웃음을 남기고 떠난 이도 있었다. 일제 치하의 주기철 목사도 우상숭배 신사참배를 반대하며 그리하였다. 공산당 빨치산들이 교회를 핍박할 때에, 가난한 자들과 차별받던 여성들의 어머니 문준경 전도사가 신안 바닷가에서 그들을 지키려고 사랑의 피를 흘렸다. 또한 수도자는 예수처럼 세상에 머리 둘 곳 없어도 주의 뜻과 사랑 안에서 평화와 자유와 거룩함을 누리며 사는 것이다. 노숙인을 선교하는 목사는 노숙인처럼 되는 것이 십자가이고 기쁜 일이다. 내게 주신 십자가는 노숙인도 함께하는 십자가 사랑의 수도자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엊그제, 갑작스런 추위에 서울역에서 노숙하는 이들을 위한 방한복을 준비하고 있는 중에, 장문의 편지가 왔다. 내게 급히 노숙인 몇 사람 묵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기에 묵을 자리가 없다 한 일로 보낸 편지이다. 요지는 이 목사는 10평이라도 되는 집에서 따뜻하게 살지만, 당신은 임대주택에서 노숙인들 데리고 전기장판 깔고 산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 없이 글재주 부려서 노숙인 팔이 하지 말라는 것이다. 감사하고 맞는 말씀! 서울역에서 방한복을 나누어 주고, 평창의 공동체로 돌아와, 내가 쓰던 숙소를 급한 대로 내주기로 했다. 본래 수도자 반이 시작되면 그들이 쓰기로 했던 것이었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