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나눠달라’는 현대차 전주공장 간부, 울산 노조원이 폭행
현대차 울산4공장 노조원들이 교섭 온 전주공장 노조간부 때려
입력 2021.10.04 03:00
생산 물량이 모자라 공장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 물량을 나눠주는 문제를 놓고 현대차 울산공장 노조원들이 같은 민노총 소속인 전주공장 노조 간부를 폭행하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달 30일 현대차 울산4공장 노조원들로부터 폭행당한 전주 공장 노조 A의장이 들것에 실려가고 있다. /독자제공
3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30일 현대차 울산공장 본관 앞에서 울산4공장 노조와 전주공장 노조(전주위원회)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날 노사가 모인 가운데 열릴 예정인 고용안정위원회에 참석하려던 전주공장 노조를 울산4공장 노조가 막다 물리적 충돌이 빚어졌다. 이 과정에서 전주공장 노조의 대표인 A의장이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갔다. 전주공장 노조는 “(울산4공장 노조가) 본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지역위원회 지도자 동지를 집단 린치했다”며 ‘집단 폭행’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울산4공장의 생산 물량 중 일부를 전주공장에 넘겨주는 방안이 논의될 예정이었지만 개최가 무산됐다.
김포 택배 대리점 소장 사망 사건, 화물연대의 화물차 기사 폭행 사건 등 최근 불거진 민노총의 폭력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외부 사람들에 대해 주로 이뤄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감을 나눠달라’는 같은 노조원을 대상으로 폭력을 행사했다. 노동계 관계자는 “밥그릇 앞에서 동료도 없이 자기만 살겠다는 이기적 행태가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폭행당한 전주공장 노조 “현대차 노조는 죽었다”
의장 폭행에 대해 전주공장 노조는 “물량 나눠주는 것에 동의를 못 하겠다고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사람이 전주에서 간 동지를 폭행하는 이런 끔찍한 일은 노동조합 역사상 없을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전주공장 노조가 배포한 것으로 알려진 게시물에는 ‘근조(謹弔)’ 표시와 함께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지 못하면 노동조합은 수명을 다한 것이다. 현대차 노동조합은 이제 죽었다”라고도 썼다. 남양연구소, 아산공장, 정비, 판매, 모비스 등 울산공장 외 다른 사업장 노조도 전주공장 노조와 함께 울산4공장 노조에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현대차 노조 내부의 갈등에는 공장 간 물량 배분 문제가 있다. 현대차는 울산·전주·아산 등에 공장이 있는데 공장별로 생산 차종이 정해져 있다. 1995년 세워진 전주공장은 버스나 대형 밴 같은 상용차를 주로 생산한다. 최대 생산 능력은 10만5000대 수준이지만 현대차의 상용차 판매 부진에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 지난해에는 생산량이 3만6000대까지 줄었다. 이로 인해 일부 직원은 기아차 공장 등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고, 휴업도 하고 있다. 직원들의 임금이 40% 이상 줄었다는 말도 나온다. 향후 전망도 밝지 않다. 울산4공장은 상황이 정반대다. 주력 생산 모델인 대형 SUV ‘팰리세이드’와 1t 트럭 ‘포터’ 모두 주문량을 생산량이 못 따라가고 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모습.
이번 고용안정위원회는 전주공장 생산 물량 이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열렸다. 지난 8월 26일을 시작으로 9월 17일까지 이미 3차례 회의가 열렸다. 현대차 측은 울산4공장에서 생산하는 스타렉스의 후속 모델인 ‘스타리아’의 생산량 3만6000대 중 약 8000대를 전주공장으로 옮기자고 제안했었다고 한다. 울산4공장이 스타리아 8000대를 전주공장에 넘기면 그만큼 팰리세이드를 더 생산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런데 돌연 4차 회의가 열리려던 지난달 30일 울산4공장 노조가 ‘스타리아는 안 된다’며 물리력을 행사해 이를 막았다. 울산4공장 노조 입장에선 스타리아를 전주공장에 내주면 일감을 빼앗기는 것이 되고, 또 다양한 차종을 보유하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대신 울산4공장 노조는 ‘차라리 팰리세이드를 가져가라’고 했다. 팰리세이드는 미국에서도 주문이 몰리고 있는데, 현대차는 미국 현지 생산을 계속 검토 중이다. 한국 공장과 달리 미국 현지 공장은 생산 능력이 아직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울산4공장 노조 입장에선 자신들이 전주공장으로 넘기겠다는 팰리세이드 물량이 어차피 회사가 미국에서 생산을 검토하는 물량이기 때문에 현재의 일감을 당장 빼앗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울산 4공장 노조 주장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스타리아는 전주공장에 100억원을 들여 설비를 늘리면 7개월 뒤부터 생산이 가능하지만 팰리세이드는 3000억원을 들여야 26개월 뒤부터 겨우 생산할 수 있다. 전주공장 노조도 ‘26개월 뒤면 이미 조합원들 다 떠나고 의미가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두고 현대차의 구조적 문제가 드러났다는 평가가 많다. 현대차는 노조와의 단체협약에 따라 고용안정위원회를 통해 노조 동의를 받지 않으면 생산 물량을 조정할 수 없다. 도요타·GM·폴크스바겐 등 다른 글로벌 자동차 기업에는 없는 제도다. 노조 허락 없이는 생산 물량 배분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현대차는 지난 1996년 아산공장을 이후로 25년간 국내에는 공장 증설을 하지 않고 있다. 또 2019년 이후 생산직 신규 채용을 전면 중단한 상태다.
노조 반발에는 친환경차로의 전환에 따른 불안감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존의 내연기관차 시장이 전기차나 수소차 위주로 개편되면서, 일감이 줄어들고 노조원들의 고용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노조 입장에선 전기차 전환 때문에라도 지금의 물량을 최대한 붙잡아야 하는데다, 올해 연말 노조 선거까지 걸려 있어 물량 나눠주기를 못 하는 것”이라고 했다.
곽래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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