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엔 몽둥이 같은 공권력, 민노총 앞에선 이쑤시개 신세”
[김승범이 만난 사람] ‘민노총 출범 산파’ 김준용 국민노동조합 사무총장
입력 2021.09.06 03:00
김준용(63) 국민노동조합 사무총장을 만난 것은 지난 3일이었다. 민노총 택배노조 노조원들의 집단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택배 대리점주 이모씨의 발인 다음 날이었다. 그는 “민노총은 ‘해고는 살인’이라고 하는데 아이 셋을 둔 가장의 일터를 없애는 것도 모자라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면 이거야말로 진짜 살인 아닌가”라고 말했다.
김준용 국민노조 사무총장이 2021년 9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민노조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김 사무총장은 민노총이 출범하는 데 주요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그가 사무차장으로 일했던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민노총의 전신이다. 그는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4년 구로공단에 있는 대우어패럴에서 노조를 설립하고 위원장으로 활동하다 1985년 노동쟁의조정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그의 구속은 1980년대 노동운동의 상징적 사건인 ‘구로동맹파업’의 도화선이 됐다. 1년 옥살이 후 그는 전국 단위 노조 설립에 참여했다. 한때 그에게 민노총은 열정 그 자체였다.
김 사무총장은 “민노총은 법 위에 군림해 대통령조차도 그 눈치를 보고 있지만, 나에게는 민노총에 대해 한마디 할 책임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택배기사는 사업자 신분... 노조 권리 논란
-이번 사건은 기존 민노총의 횡포보다 정도가 심하다는 건가.
“이번 죽음은 빙산의 일각이다. 민노총이 공권력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생각이 다르면 동료 노동자라도 일자리를 빼앗는 모습은 이미 겉으로 많이 드러났다. 이번 일은 평범한 우리 이웃이라도 민노총의 이해관계에 반하면 누구든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민노총이 횡포를 부린 이후 반성하는 일이 없다는 점이다.”
-택배노조가 고인에 대한 일부 조합원의 괴롭힘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사죄한 게 아니다. 택배노조는 자체 조사 결과라면서 죽음의 책임이 원청(CJ대한통운)에 있다고 했다. 유서에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가 분명하게 나와 있는데도 자신들 책임이 아니라는 거다. 택배노조는 또 고인에게 빚이 수억원 있다고도 했다. 고인의 발인 날에 할 말인가. 택배노조가 그나마 잘못을 일부 시인한 것은 사실을 도저히 숨길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평소처럼 아무 일 없었다고 잡아뗐을 것이다.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택배노조’의 성격이다. 택배기사들은 법적으로 사업자 신분이다. 다른 기사를 고용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이들에게 노조 활동을 할 권리를 주는 게 맞느냐는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민노총이 제1 노조가 된 것은 공감하는 근로자가 많다는 얘기 아닌가.
“투쟁하면 정부가 굴복하고 뭐라도 쥐여준다. 조합원 입장에서는 얻는 게 있다. 민노총처럼 세게 나올수록 챙기는 것도 많다. 민노총은 현 정권의 ‘개국 공신’이다. 민노총은 표를 주고 정권의 운동권 세력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특권을 제공하면서 카르텔을 맺었다. 자영업자들은 매출 감소를 감수하면서 방역에 동참하고 있는데 민노총은 수천 명이 모이는 집회를 연다. 자영업자에게는 몽둥이 같은 존재인 공권력이 민노총 앞에서는 아무 힘도 못 쓰는 이쑤시개 신세다.”
김준용 국민노조 사무총장이 2021년 9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민노조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말 잘 듣는 다음 정권 앉히는 게 목표”
-민노총은 양경수 위원장이 구속되자 “정부의 전쟁 선포”라며 반발했다.
“내가 1985년 6월 구속됐을 때는, 출근하는데 회사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복 경찰이 어디로 가는지 알려주지도 않고 끌고 갔다. 가보니 금천경찰서(옛 남부경찰서)였다. 지금 경찰은 민노총에 언제 간다고 일정을 알려주고 민노총은 구속영장 집행을 거부했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민노총은 노동 탄압이라고 하는데 대규모 불법 집회를 강행한 데 대한 법 집행이 무슨 탄압이라는 건가. 법 위에 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것인가. 다른 한편으로, 민노총 입장에서 볼 때 현 정부는 쓰임새가 다 돼 간다. 민노총은 세를 과시하고 내년 대선에서 지금보다 자기들 말을 더 잘 듣는 정권을 앉히는 게 첫째 정치적 과제다.”
-민노총은 10월 한국 사회 대전환을 위해 총파업을 하겠다고 한다.
“민노총은 ‘사회 대전환’이라고 하지만 이를 ‘대한민국 정체성 공격’으로 읽어야 한다. 민노총은 총파업 의제로 국방 예산 삭감, 기간산업·주택 50% 국유화, 한미 군사 동맹 해체 같은 걸 들고 있는데, 이게 노동자의 권리 향상이나 근로 조건 개선과 무슨 상관이 있나. 이념 투쟁이다. 양경수 위원장이 내란 선동으로 대한민국 뒤집기를 시도하다 유죄판결을 받은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과 같은 경기동부연합 출신이라는 건 노동계에 익히 알려져 있다. 진경호 전국택배노조 위원장은 김일성 일가가 묻혀 있는 북한 평양의 혁명열사릉을 찾아 참배까지 했다.”
-최근 한 토론회에서 민노총에 대해 ‘양아치 같은 노동 귀족’이라고 했는데.
“민노총 조합원은 전체 근로자의 4%밖에 안 된다(근로자 중 전체 노조 가입률은 12%). 상당수가 대기업·공기업 등에서 일한다. 민노총 조합원은 도시 근로자 평균 임금(299만원)의 두 배 이상을 받는다. 청년 알바생들은 투잡도 모자라 스리잡까지 뛰어도 1년에 1800만원 벌기가 어렵다. 민노총이 대한민국 근로자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나. 그들은 약자 행세를 하며 혜택은 다 누린다. 목표는 기득권 유지다. 중소 협력업체 직원처럼 힘없는 근로자의 권리 보호는 안중에도 없다. 내가 아는 한 건설 일용직 노동자는 7월 민노총 집회에 동원됐다. 집회에 가지 않으면 일자리 배정에서 불이익을 당한다며 휴일인데도 집회 현장에 갔다.”
1985년 6월 24일 서울 구로2공단 대우어패럴 근로자들이 이틀 전 구속된 김준용 노조위원장 등 노조원 3명의 석방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조선일보 DB
◇”노동 개혁은 일자리를 늘리는 길”
-변절자라는 말을 듣지는 않나.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으로서 노조를 비판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세상은 달라졌다. 노동운동도 바뀌어야 한다. 광복이 됐는데 독립운동을 외치고, 민주화 이후에도 민주화 운동을 한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내가 예전에 노동운동을 할 때에는 못 배우고 힘없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노조를 만들었다. 지금은 어떤가. 거대 노조는 힘 있는 사람, 사회적 강자, 고임금에 고용 보호를 받는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기 위한 방패가 됐다. 기존 노동계 관행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거대 노조에 염증을 내는 국민이 늘고 있다.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가 노조를 결성하고 기존 투쟁 노선에 반기를 드는 것은 공정함을 중시하는 MZ세대가, 이권을 노조원 일부가 가져가는 방식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씩 바꿔나갈 수 있다.”
국민노조는 2018년 설립됐다. 기존 노조처럼 사측과 임금 협상 같은 활동을 하지는 않는다. 김 사무총장은 “시대 변화에 맞춰 노동 개혁을 실현하고 힘센 노조의 부당 노동 행위를 당하지 않도록 약자를 보호하는 등 ‘초기업 노동운동’을 추구하고 있다”며 “조합 가입 요건에 취업 여부나 직종 같은 제한을 두지 않는다”고 했다. 현재 회비를 내는 회원은 4000여 명으로 연령대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고 한다. 김 사무총장은 “회비를 내지는 않더라도 국민노조 뜻에 동참하는 사람이 10만명 정도”라고 말했다.
-거대 노조는 ‘노동 개혁은 해고’라며 반대하는데.
“정부가 내걸었던 일자리 상황판은 어디 있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저임금이 40% 넘게 올랐다. 자영업자들은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어 직원들을 내보냈다.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은 일용직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좌절하고 있다. 주 52시간제를 무리하게 추진한 결과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퇴근 후 알바를 하며 ‘저녁 굶는 삶’을 갖게 됐다. 노동 개혁에 대해 노조는 ‘해고’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 정부가 각 분야에서 ‘개혁’을 외치는데 노동 개혁에 대해서는 ‘노’ 자도 꺼내지 않는 것은 기득권 노조 세력 끌어안기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 개혁이 해고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노동 개혁은 오히려 일자리를 늘리는 길이다.”
-어떻게 노동 개혁을 하자는 건가.
“현재 근로기준법은 1953년 만든 기본 틀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116조항이 2700만 근로자의 삶을 좌우하고 있다. 제조업 시대에 만들어져 이제 박물관에 가야 할 ‘굴뚝법’으로 현재 노동 현장을 조정하고 규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4차산업 시대를 맞아 기존 노동 시간·장소, 일하는 방식이 해체되고 있다. 정시 출퇴근에 기반하고 있는 현행 노동법 체계를 바꿔 근로 조건을 다양하게 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또 근로자의 자유로운 노동시장 이동을 보장해야 한다. 지금은 기업이 한번 사람을 뽑으면 쉽게 내보낼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을 덜 뽑는다. 노동시장 유연성이 커지면 고용도 늘 것이다. 최저임금 산정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양대 노총 이해관계만 반영되는 현행 방식을 바꿔 영세 상인이나 아르바이트생 등 직접적으로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계층의 처지를 반영해야 한다. 지금 노동 개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장 스물일곱 내 아들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의지만 있다면, 노동 개혁은 노조를 설득할 수 있는 진보 정부가 더 잘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정부는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남은 시간도 없다.”
☞김준용
1958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학교를 다니다 열여덟 되던 1975년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상경(上京)했다. 그해 평화시장 봉제 공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며 노동운동에 첫발을 내디뎠다. 1984년 대우어패럴 노조를 설립하고 위원장에 올랐다. 이듬해 6월 노동쟁의조정법 위반으로 구속돼 1년간 수형 생활을 했다. 그 후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와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사무차장을 맡아 민노총이 설립되는 데 역할을 했다. 이후 중앙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 서울지하철노조 정책자문위원,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촉위원 등을 지냈다. 현재 국민노조 사무총장으로 있다.
김승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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